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오늘 아침 지하철 가판대에서 우연히 경향신문 머릿기사를 보고 바로 구입했습니다. 물론 저는 김예슬씨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예슬씨가 감행한 용기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삶의 지표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압니다. 왠일인지 지하철 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출근시간이라 사람들이 빼곡 차있었는데 말이죠. 이제껏 고려대학교를 자퇴한 사람들, 자기 행로를 바꾼 사람들은 이따금 있었지만 그걸 사건화시키고 선언한 것은 예슬씨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삶 앞에 지쳐서 헥헥대고 있던 저는, 예슬씨로 인해 다시 용기를 얻었으며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예슬씨말대로 저 거대한 탑은 아직 끄떡 없습니다. 삶은 고되며 매섭지요. 그러나 이 두려운 이탈이 단순한 '회피'나 '도망'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저는 제 삶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기업의 하청업체, 직업소개서, 자격증 따는 곳이 되어버린 대학이라면, 차라리 그 엄청난 돈을 갖다바치느니 문예아카데미나 훌륭한 강좌들에 다니며 스스로 공부하고 단련하는 게 더 나을겁니다. 세상의 거센 풍파 속에서 진정한 스승들을 만나는 게 더 현명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입니다.왜 이 엘리트주의적 망령 안에서 우리끼리 자족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경쟁의 수렁 안에 몰아넣는 삶을 살아야합니까? 또 왜 그런 마조히즘적 단련을 통해 스스로 <체제의 새디스트>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까? 예슬씨의 선택과 '선언'은 고려대학교 안의 여러 학우들에게 두려운 선택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개인의 삶의 어떤 선택의 순간을 스스로 드러내어 '선언'하고 '사건화'시키는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에는 팔레스타인인도, 노예도, 여성도, 유대인도, 로마인도 따로 없다고 말하며 율법을 거부하고, 예수의 부활하심을 선언했던 것처럼 말입니다.여러분은 소심하게 응원을 보내고 말 것입니까, 아니면 모종의 실천을 강행하실 겁니까? 다 같이 자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모순덩어리 각본 앞에 계속 복종하실 겁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저는 그냥 묻고 싶은 것입니다. 결국 그 질문을 회피한 자들은 386세대처럼 "힘 센 형님들"(김반장)이 보시기에 그리 밉지 않을 정도로 곱상하게 늙을 것이며, 회피하지 않는 자들은 새로운 세대의 삶을 살 것입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대자보를 읽은 우리들의 의무이자, 예슬씨가 우리들에게 안겨준 과제이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이것은 저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자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후배였던 예슬씨의 선택에 삶의 용기를 얻어 너무나 고마움을 느끼는 경영대생이'었'던 ㅇㅇㅇ 드림.
이 대자보의 수신인은 누구인가?김예슬 학우의 대자보가 학교 내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고, 그 뿐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응원과 지지를 밝히는 이들도 있고, 조롱과 분노의 반응도 보인다. 개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학교를 자퇴하든 말든 네 뜻은 알겠는데, 근데 도대체 왜 대자보를 붙인거냐?" 이 의문 뒤에 붙는 문장은 (슬프게도)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2)"혹시 대자보를 이슈화시켜서 스타가 되고 싶은 의도에서 그런 것이 아닌가?"이미 (2)와 같은 저열한 증상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와 결합하여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가운데 ─ 이글루스나 네이버 기사 댓글만 보아도 이처럼 남의 일에 쓸데없이 열심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 나는 우선 많은 사람들이 (1)과 같은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김예슬 학우의 이 대자보는 분명히 어떤 수신인을 가정한 것이며, 따라서 그 수신인이 아니라면 (1)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또한 (2)와 같은 음모론에 혹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김예슬 학우가 '재입학 드립'과 '운동권 드립'으로 가득한 인터넷 쓰레기장의 비열한 중상들을 예견하지 못했을까?정말로 그가 '닳고 닳은 운동권'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이미 '운동권'이라 낙인 찍힌 이들에 대한 돌 던지기가 수년간 계속 되었던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김예슬 학우가 자신에 대한 공격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용감하게 대자보를 붙인 것이, 다름 아닌 침묵하는 수신인들을 '호출'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다른 학우들의 혹시 모를 비웃음과 무시를 감내하면서, 불특정 다수의 수신인들 중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자보를 읽으면서 "이름만 남은 브로커가 된 대학"과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에 대한 크나큰 분노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예슬 학우처럼 "길을 잃을 것이고 상처받을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분노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곱씹을 수밖에 없는 나, 그리고 '우리들'이야말로 이 대자보의 수신인이다.나는 고려대학교에 학적을 둔 5년 동안 단 한번도 "대학과 자본의 거대한 탑"에 돌을 던져본 적이 없다. 내가 입학한 06년도는 보건대 투표권 문제와 '교직원에 대한 학싱들의 감금, 혹은 대치', 그리고 연이어 발생한 출교 사태로 봄부터 학교가 시끄러웠다. 학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이 터지자마자 '운동권 학생들'에게 출교 징계 처분을 내렸고, 여기에 반발하여 본관 앞 천막 투쟁이 시작되면서 학교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심정적으로 출교 처분에 반대했지만, 그리고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 문제로 오랜 시간 토론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천막에 앉아있던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운동권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일견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론은 나쁘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로 운동권에 거리를 두고 비판적 논평자의 역할에만 머물렀다.국가와 자본의 사관학교가 되어버린 학교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정작 일선에서 어떻게든 학교와 전선을 형성하는 운동권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었다. 급진 이론과 사회 비판 서적을 공부하면서, 또 술자리에서 이러저러한 담론을 소비하면서 정작 나 자신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자각은 하지 못했다. 설사 결심하더라도 그것은 '졸업 후'와 같은 먼훗날의 일이지, 지금 당장 나에게 주어진 과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나는 수업을 들어야 하고, 또 친구를 만나야 하지. 또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은 대자보 붙이고 피켓 들고 민주광장에서 깃발 흔드는 운동권들의 자족적인 행위가 아니라 더 크고 어려운 것, 내 모든 역량을 다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미래를 향한 이론적 무기를 가다듬어야 해…"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당장 행동하고 실천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또 귀찮아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기합리화이며, 자위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실천해야 할지 '몰랐고', 또 설사 그것을 안다 하더라도 행동에 옮기기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자기 자신의 무지와 비겁을 솔직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는 이렇게 비겁한 내 모습을 여과없이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김예슬 학우의 글은 단지 '대학과 기업과 국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대학과 기업과 국가'를 '너무나 쉽게 비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국가를 비판하면서, 자본을 비판하면서, 대학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비판하는 우리들은 정작 어떤 싸움을 펼치고 있나?이는 자발적으로 퇴교를 선언한 김예슬 학우처럼 함께 집단 자퇴를 결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김예슬 학우 본인도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지금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겠나…'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가 학내에서'도' 할 수 있는 행동과 실천의 의지들 역시 너무나 쉽게 '어쩔 수 없이' 꺾어버리고 있지 않느냐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토록 약하디 약한 내가 홀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 하나만으로는 두렵고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아닌 '우리'라면 그 무게를 덜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조용히 응원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숨죽이고 있는 개개인이 모여 서로 생각을 나누고, 어떤 것이 되었건 '판'을 벌리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닌, 바로 이 글을 읽는 나와 당신의 일이다.분명 얘는 또 쓸데 없이 이런 글을 왜 쓰나,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여기까지 읽지도 않은 채 스크롤의 압박을 느끼며 지나친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침묵하고 있던 수신인들과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다시 말해, 지금 학내 어디에서건,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를 읽고서 '조용하지만,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다른 학우들의 발언을 요청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동안 목소리 한번 높여보지 못하고 대자보 한번 붙여보지 못했지만, 침묵 속에서도 분노했고 다른 이의 자보를 보며 가슴을 데웠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또 다른 학우들의 글이 정대후문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사학과 06학번 ㅇㅇㅇ
원래 밤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모니터를 보면서 손톱만 잘근잘근 씹다가 겨우 용기를 내 키보드를 두드린다.대학에 입학한 뒤,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스펙을 쌓는답시고 앉아 있는 이들을 비웃었었다.그들을 비웃으면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마 술을 마셨을 거다. 술을 마시지 않았던 시간에는 숙취로 괴로워하며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다가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시험기간이었을 것이고, 시험공부를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어느새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겠지. 그런 과정이 두어 차례 반복되다가 군대를 갔다 왔고, 다시 똑같은 과정이 두어번 반복됐다. 아, 가끔씩 책도 읽었다.이런 내가, 자의든 타의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보낼 자격이 있는 것일까.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나태한 시간을 보내왔던, 단 한번도 치열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적이 없었던 주제에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하고 비웃는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나는 어디에 내놓아도 참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그런데 요 며칠 사이 나는 두번이나 크게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보고 느낀 것이 그 첫 번째고, 두 번째는 그 다음날 만신창이가 된 사진 속의 대자보를 보게 된 것이다.앞으로 내가 스스로를 대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저 어떤 이(들) 역시 대학생이 맞을까. 그것보다 우리 시대의 대학생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 발을 내딛는' 김예슬씨의 앞길이 순탄하기를 비겁하게 뒤에서나마 응원할 것이다.Jack
할일부터 하고 보자는 이들에게잠깐이지만 시민단체에서 상근간사로 일했고 누구보다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지만, 근래 일어나고 있는 몇몇 용감한 행동들을 보노라면, 마치 내가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페이비언(a Fabianist)이라도 된 기분이다. 그 중에서도 '고려대 자퇴녀'라는 이름으로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환기시킨 김예슬씨의 경우는, '내 나름의 노력'들이 단지 '알리바이'에 불과하다는 일침을 놓으며 나의 소소한 일상에 개입하고 있다.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마 김예슬씨 대자보에 계란을 투척한 이들이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운동권 학생 하나가 자퇴한 게 뭐가 그리 대수냐면서! 이해한다. 분명 어떤 일을 침소봉대하며 떠들어대는 행위는 여간해선 멀리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 사안이 결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취향은 존중해야 하는 것'이기에 숟가락을 입에 쑤셔 넣는 식으로 강요하진 않겠다. 그런 식의 강압, 이를테면 대자보를 찢어버리는 그런 짓은 인류가 팬티를 두르게 된 그 순간부터 일찌감치 버렸어야 할 부끄러운 행동이다.그런 사람들 말고, 예슬 씨가 보여준 '과격한' 행동보다는 우선 자기 앞가림부터 착실히 하고 차근차근 힘을 모아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이들에게 말가호자 한다. 당신들의 방법은 틀린 게 아니다. 나도 사안에 따라서는 그렇게 한다. 허나 그것은 단지 '하나의 전략'일 뿐임을 기억해 달라. 징검다리를 건너려는데 돌다리를 걷는 방법을 고집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튼튼한 돌다리처럼 연결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땐 자기 보폭에 따라 걸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듬성듬성 단계가 끊겨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쪽 징검다리에서 저쪽 징검다리로 건너가기 위해선 그 거리만큼의 간격을 한번에 도약해야 할 뿐이지, 당신이 한번에 10cm씩 느릿느릿 걷고 싶다고 그 징검다리가 당신을 위해 간격을 좁혀주는 게 아니다. 한번에 100cm를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는 99.9cm마저 실패로 간주된다. 다행히 비록 발을 헛디뎌도 가랑이에 물만 젖으면 다행이겠지만, 그 아래가 낭떠러지라면 어찌할 텐가?길게 말할 거도 없고, 온건한 현실주의를 말하고 싶으신 분들께 이런 제안을 하겠다. 그냥 솔직해지시라. 자신에겐 한번에 100cm를 도약할 능력이 엎다고 인정하시라. 대학과 이 사회의 '폭력'에 맞선 김예슬 씨가 앞으로 견뎌야 할 종류의 '현실'과 마주하고 싶진 않다고 고백하시라. 감히 어린 녀석이 '현실'을 모른다며 훈계하려 들지 마시라. 물론 지금이 징검다리 상황인지 돌다리 상황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김예슬 씨의 행동이 진정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인지도 아리송하다. '현실'은 그토록 복잡다단하기에, 아마 이 두가지가 섞여 있다고 보고 그때그때 필요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못난 것들, 그것도 못하냐?"라며, 조롱하지 않겠다. 징검다리 사이에 또 다른 징검다리를 놓는 한이 있더라도 모두ㅗ들 함께 가는 방법을 찾아보자. 단 '현실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되려 용감하게 그 돌을 놓으려는 이들을 비웃지는 말라. 그들이 실패하면 그 순간 우리들도 앞줄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다가 물에 빠져죽어야 하는 레밍스 쥐가 될 뿐이다. 우리가 어쩌다 이 꼴이 되었을까?누가 더 강하지 두고 볼 일이라고 예슬씨는 말했지만, 그는 이미 강하고 우리는 그의 덕을 보고 있다. 화이팅이란 표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화이팅이다. 그대의 행동이 꼭 결실을 맺는 '방향'으로 나도 내 할 일을 하고 있겠다. 연대? 힘들고 어렵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행동? 솔직히 부담스럽지만 등한시하진 않겠다. 비록 이 모든 것들이 자기만족에서 비롯된 알리바이에 그친다 할지라도,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예외적으로 잘될 거라고 믿는' 그런 자기착각에서 벗어나는 길이길 바라는 바이다. 이 정도 부족함은 예슬 씨가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맺는다이름 : ㅇㅇㅇ
경영학을 거부하라나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영학을 거부한다. '경영/경제'를 공부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교 내에 존재하는 '경영학'을, 그 '경영학'이 만들어내는 부수적인 사회악들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생각 없이 '경영학'을 부전공하는 행위와 '경영학'을 옹호하는 수많은 '말'들을 거부한다.내가 대학교 1학년일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대학교에 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이것이다. "특별히 잘하는 거 없으면 '경영'해", "경영학 관련 전공 아니면 나중에 입사원서도 못 써",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경영학 해", "선배들도 나중에는 다 경영학으로 바꾸더라".사실 경영학 말고 하고 싶은 것이 있었음에도 나는 '경영학'을 제2전공으로 선택했다. 학과정원의 90%이상이 경영관련 학과를 제2전공으로 하고 있었다. 다른 학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공이 경영관련 학과가 아니면, 제2전공은 경영관련 학과로 한다'가 정석처럼 받아들여졌다. 거기에 더해 '경영학 배우지 않으면 취업에 불리하다니까' 등의 출처 없는 말들이 떠돌아다녔다. 선배의 말을 들어봐도 인터넷 게시판에 진로상담을 해봐도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대학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경영학 관련 수업은 자리가 없어서 듣지 못했다. 교수님의 싸인을 받아 어떻게든 경영학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로 경영대 강의실은 북적거렸다."경영학 하든 말든 뭔 상관인데?"혹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개인의 선택가지고 왜 뭐라 하느냐', '취업 못하면 당신이 책임져 줄거냐'하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경영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취업에 더 유리한 것일까?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경영학'을 배우고 있다는 학생들이 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삼성을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삼성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대기업을 선택한다. 졸업한 선배는 '○○기업에 들어간 선배'로 불리고, 졸업하지 못한/않은 선배들은 터부시 된다. 취업하지 못한 선배들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를 바라면서도 내심 경쟁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내가 '경영학 제2전공자'였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나는 독서를 했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주식/펀드관련 서적을 읽었다. 소설이나 시를 읽는 것은 시간낭비 돈낭비였다. 나는 신문을 읽었다. 대학교수는 학생들에게 경제신문을 정기구독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매일같이 한경(한국경제신문)과 매경(매일경제)을 읽었다. 나는 펀드에 가입했다. 복리의 마술이 나에게도 펼쳐지길 바랐다. 쓸데없는 파업과 강성노조가 싫었다. 나는 뉴스를 보았다. MBN 주식코너를 자주 봤다. 경기부흥에 관련된 소식에 솔깃했다. 경제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들이 싫었다.나는 그저 보통의 '경영학을 제2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나는 친기업적 학생이 되어있었다. 경영학 수업의 주된 내용은 기업의 경영사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경영 전략을 분석하고, 응용하고, 현실에 '적용'시켰다. 그러면서 나는 교수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신이 기업의 임직원임을 가정하여" 상황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대기업의 새로운 광고에 눈길이 가고 이번 마케팅 전략은 무엇일까 궁금해했다. 삼성/LG/SK/현대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어느새 '대기업 프렌들리'한 인간이 된 것이다.이미 '경영학'을 선택한 학생들은 판을 뒤집을 생각을 하기 힘들다. '학점/토익/자격증/어학연수/봉사활동/공모전수상'의 관문을 무사히 거쳐 '취업'이라는 최후의 열매를 맛보는 것이 대학생활의 목표가 된다. '경영학'을 배움과 동시에 대학생활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자소서에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이런 수많은 '대학생'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영학'을 선택함과 동시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경영학의 늪'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나는 이 '경영학의 늪'에 빠져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말하고 싶다. 경영학을 거부하라. "진짜 하고 싶은 게 있으면서도 위급할 때 발 빼려고, 힘들면 갈아타려고, 중간은 가겠지 하는 생각에, 남들 다 하는 거니까, 경영학 선택해서 공부"하지 말자. '경영학'을 공부 안하면 취업에 불리할 수도 있다. '경영학'을 공부 안하면 남들보다 돈을 적게 벌 수도 있다. 하지만 '경영학'을 공부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가? 김예슬의 입을 빌려 말한다. "누가 더 잘 살지는 두고 볼 일이다"2010년 3월 15일ㅇㅇㅇ
물음표가 죽었다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같이 선 옛날의 출발선상에서"운동회 달리기의 등수는 공책의 권수를 결정했지만 이번 달리기는 더 길다. 그런 만큼 상도 훨씬 오래갈 것이다. 결과에 따라 영원한 원산지 표시가 찍힐 것이다."공부하기 전마다 이마를 씻는 버릇이 생긴다.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학문과 자유와 꿈이요? 대체 언제적 이야기죠? 학점과 스펙과 고시만이 우리의 구원이에요. 취직하려면 남보다 뛰어나야 해요. 밟고 일어서지 못하면 깔리고 말아요. 인생은 상대평가니까요."어디로 갈 것인가?"애써서 생각할 필요 없어요. 옳은 결론은 단 하나니까요. 돈.그래도 답답할 땐 클럽 가서 털어버리고 한번 흔들면 후련해져요. 원래 다 그렇잖아요?"여태껏 양보 받은 기회들이 덧없다.죽어버렸다.떼지 말아 주세요. 3월 23일까지 자진 철거하겠습니다.노어노문학과 06학번 ㅇㅇㅇ
1.그들의 거대한 성대를 보며나는 진공청소기를 떠올린다잿더미와 유리조각이 섞인 스콜그 속에서 나무들은 스크럼을 짠다2."노스탤지어는 힘없는 자들의 무기이다."장 주네는 파리 빈민구제국 작은 의료원에서 태어났다. 노벨문학상도 걷어찼던 사르트르가 그야말로 위대한 작가라 칭송했지만, 정작 주네는 사르트르가 기벽을 가졌다며 비웃었다. 절도, 부랑, 탈영 같은 죄목을 주렁주렁 달고 종신형까지 선고 받아봤지만 여자와 아이들, 흑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를 사랑했다.3.당신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건그들은 빈 양피지를 들고 당신을 찾을 것이다결코 그랬던 적도 없고 원하지도 않았던 모습으로당신을 기록하기 위해벌레들로 하여금 당신의 이름을 좀먹게 하고모든 것을 아마득한 먼 일로 만들기 위해4.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당신은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공모(共謨)다.* 재작년, 촛불 정국의 흥분이 가라앉아갈 즈음에 끄적였던 건데 제목을 못 붙이고 있었습니다. 졸시이지만 제 지지 의사를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네요.인용의 문구가 오늘 아침 토익학원 가는 길에 문득 떠오른 후 뇌리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문구와 김예슬 씨의 선언을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았습니다. 김예슬씨의 선택은 가계(household)의 일원으로서의 위치를 고려하였을 때 사실상 관철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고 누구나 그 불가능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선택을 실제로 함으로써, 오늘날에 학생들이 잃어버린 윤리성 회복의 계기를 김예슬씨는 제시했습니다. 김예슬씨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니체는 어디에선가 그와 같은 적의들이 결국은 부채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밝혀 보인 바 있지요. 그런 채무 관계는 비난을 통해서는 결코 청산되지 않습니다. 일단 채무 관계를 알아버린 이상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고 명확한 답을 내길 요구 받습니다. 결국 비난으로써 선언이 열어젖힌 윤리의 지평이 반증되고 있는 것입니다.저는 사실 이런 선언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전혀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날 깨닫기로 / 내가 꾸는 모든 꿈 중에 이루어진 것은 / 그저 악몽들뿐. / 이제 나는 악몽도 꾸지 않네 / 모든 최악의 상황은 내가 / 꿈꿀 수 있는 범주를 훨씬 넘어서네" 저는 이렇게 쓰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대학 사회가 붕괴하며 결락된 기능들에 대한 요구가 표면화─첨예화할 가능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으면서도 그 가능성 자체를 의지로써 거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다른 방식으로 윤리적 선택을 기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기'보다 더 나은 것을 꿈꾸고 요구할 책무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대학 생활은 수개월에 불과하지만 김예슬씨가 보여준 선택은 저를 제가 방기한 책무로 다시금 돌려세웠습니다. 저는 이제 이 졸시를 김예슬씨에게 헌정합니다.중앙대학교 경영학과 5학년 ㅇㅇㅇ3월 23일날 자진 철거합니다.
그녀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 이유
김예슬 씨의 대자보가 붙은지 며칠이 지났다. 단지 며칠 지났을 뿐인데 벌써 많은 학우들이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나 역시 그 지지와 응원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동시에 벌써 김예슬 씨 본인에 대한 인터넷 상의 근거 없는 비난들과, 대자보에 대한 악의적인 훼손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김예슬 씨 개인의 선택에 대해 각자 의견이 갈리겠지만,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비뚤어진 방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몇몇 학우들에 대해 나는 그들이 고려대라는 이름 자체에 불명예스러운 존재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이런 슬픈 단면들은 우리 학교 학생사회의 공론장이 얼마나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단순히 한 학생의 개인적인 선택에 불과한 것을 굳이 사건화시키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녀가 자신의 선택을 사건화시킴으로써 학생사회 내부에서 묻혀 있던 목소리들을 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대자보를 지지할 수 있는 백만 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는 또 다른 백만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전자의 편에서, 그녀가 그 어떤 운동가들도 어떤 식자들도 감히 하지 못한 일을 했다고 "선언"하겠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녀의 글이 우리에게 불편한 지점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정대후문에 서 있는 학우 여러분들 각자의 지지여부를 떠나, 그녀의 선언이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나 역시 그녀의 글이 불편하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일부가 말하듯 그녀의 글이 단순히 운동권 쇼이기 때문이 아니고, 혹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보통 학우들에게 그녀가 가당찮은 우월감을 표했기 때문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아무런 이유조차 되지 못한다. 그녀가 나와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우리가 정면으로 응시하길 거부해왔던 무수한 유령들, 그 책임감들을 환기했기 때문이다. 자퇴선언의 주체로서 그녀는 용기 있는 한 개인이다. 그러나 그 용기 있는 개인을 통해 "말하게"된 것은 대자보를 쓸 기회가 없었던, 자신을 대변할 변변한 단체 하나 없는 익명의 젊은이들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맨몸으로 세대모순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익명의 삶들 말이다. 이 "책임감" 앞에서 이제 문제는 더 이상 김예슬씨라는 한 학우의 결단이 아니다. 그녀의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되든, 부모 동의서를 구실로 학교가 그녀의 자퇴서를 받아주든 않든, 그녀가 글을 통해 드러낸 선언은 이제 그러한 개인적 진로를 "이미" 떠났다. 그리고 이제 학생사회 내부의 논쟁의 장이 비로소 열리게 되었다. 그까짓 악플 몇 개를 단다고, 혹은 대자보 몇장을 찢는다고, 이제 시작된 논쟁의 장이 닫힐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녀의 글이 궁극적으로 드러낸 것은 비뚤어진 사회에 대한 투쟁의 의지도, 그녀가 "적"으로 호명한 국가와 기업 그리고 학교당국에 대한 저주도 아니다. 그녀의 글이 정확히 드러낸 것은 "우리" 안의 모순과 간극이다. 운동권이든 아니든 누구나 치솟는 등록금 때문에, 정치인들과 무력한 학생회에 대해 한두마디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처럼 용기 있게 "스스로"의 책임을 환기하는 사람은 지금껏 없었다. 그녀는 자기 이름 석자를 걸고 학생사회 내부의 근본적인 무능력에 처음으로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가했다. 이것은 지금껏 어떤 운동가나 단체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학교에 대한, 혹은 사회에 대한 투쟁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학생대중 자신의 위치에 대한 논쟁적인 문제제기 없이는 더 이상 그것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은 학생대중 그 자신의 이름으에 의해서 제기되어야 한다. 이제껏 평범한 학부생들이 각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학생사회에 치열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방식으로 학생사회에 대한 "개입"들이 이뤄지고야 말 것이다.
06학번 새내기 때 출교사태를 겪으며 나는 혼자이며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운동노선과 단체들도 나에게 용기를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평소의 문제의식들을 속으로만 곱씹던 나와 당신들은, 이제 그녀의 글 앞에 용기를 얻었으며, 이제 어느 누구도 혼자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정대후문에 서 있는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언젠가 그녀의 대자보도 텅 빈자리를 남길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학생사회 안에 남겨두고자 했던 그 "빈 자리"는 앞으로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할 것이다. 혹시나 아직도 그녀의 선언에 심리적인 거부감을 느낄 자들을 위해 말하건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만일 젊음이 당신을 부른다면 그곳에서도 열심히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를 하기 바란다." 이 점에 관해서는 괜한 자격지심을 느낄 이유가 없다. 글나 그녀가 남긴 동공을 이 학생사회 안에서 그 누구도 결코 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퇴를 선언함으로써 학생사회의 적나라한 동공을 드러냈지만, 그리고 그것이 잠깐뿐이나마 우리를 허전하게 만들었지만, 그 동공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나갈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이때 나는 그녀의 말을 가슴에 묻겠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보자"
경제학과 06학번 ㅇㅇㅇ
<김예슬 선언> 앞에 교수님들의 양심을 묻습니다.존경하는 교수님들께 묻습니다. 왜 침묵하십니까? 언제까지 침묵하려 하십니까? <김예슬 선언>에 저는 심장을 찔렸습니다. 김예슬씨가 대학을 거부한 직후 많은 대학생들은, 수백만 네티즌들은 잠못이루며 토론하고 슬퍼하고 분노했습니다. 대자보 옆에 장미꽃을 달아준 학생, 아이들과 대자보 전문을 함께 읽다 끝내 울어버렸다는 선생님과 중학생들, 미안하다는 학부모들의 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충격적 사건이었습니다.김예슬 선언은 9시 뉴스와 TV, 일간지에 보도되었고, 포털 메인에까지 올랐습니다. 저는 이제 대학, 교육, 청년실업 얘기만 나와도 본능적으로 이 선언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대학, 기업, 국가, 기성세대의 "큰 탓"을 물으면서도, 잘못된 체제의 유지자였던 자신의 "작은 탓"을 물으며 "말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한대로 살아내겠다"던 그녀의 용기를.우리 사회가 이런 거울 하나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자유·정의·진리', '진·선·미'. '의에 죽고 참에 살자' 등 건립이념은 버린 채 '大學'을 취업학원으로 전락시킨 각 대학 총장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그들에겐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논하며 숨통을 틔워주던 진보지식인과 교수님들조차 거의 모두가 침묵했습니다. 몇몇분들은 "눈물 날 정도로 기뻤"다. "뒤늦은 성년식을 축하한다"며 좋은 소리를 하면서도 정작 교수직인 자신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말로는 좋은 세상을 외치면서 자신의 존재로 좋은 세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존경받는 교수님이라는 직위는, 월급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언제까지 청년실업이라는 이름표로 고통받는 청년들을 외면하실 겁니까?수많은 교수님들이 시장만능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인문학의 위기'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김예슬 선언'에는 왜 침묵하십니까? 죽어있는 '학문'이 아닌 살아있는 '삶'을 보여주십시오. 저는 기다립니다. <오늘 나는 교수직을 그만둡니다, 아니 거부합니다>라는 양심있는 교수님들의 선언을. 설령 김예슬씨처럼 대학 기득권을 던지지는 못하더라도, 지지건 비판이건 진리라고 생각하는대로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진리라고 믿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십시오. 저 또한 이대로 대학 모순이 묻혀버리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겠습니다."학문의 유일한 목적은인간 현존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 있다"- 브레히트ㅇㅇㅇ
여덟시 삼십분쯤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옷 갈아입을 틈도 없이 연회장으로 향했다. 모 시청의 행사를 위해 연회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우리 팀장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욕을 먹었다. 정장을 입고 있어야하는데 왜 사복을 입고 있느냐는 거였다. 한참을 깨지고 파아란 유니폼 윗도리를 입었다.비가 왔다. 시청에서는 다른 건물에서 뷔페를 하겠다고 했다. 다른 건물의 식당에서 뷔페를 하기 위해서는 원형 테이블을 옮겨놓아야만 했다. 지름이 사람 키보다도 큰 원형 테이블을 나르기 시작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비를 막을 수 있는 게 없는지라, 비를 맞으며 테이블을 날라야했다. 일손이 부족하기에 혼자 테이블을 나르는 주이었다. 계속해서 강풍이 불었다. 걷기가 힘들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몇 개의 테이블을 나르고 있는데 엄청난 강풍이 불었다. 테이블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바람이었다. 휘청대며 몇 발을 내딛다, 테이블과 함께 바람에 날아갔다. 날아가는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혔다. 테이블은 삼십 미터쯤을 날아갔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몇 분 기절했던 모양이었다. 먼저 테이블을 옮기고 있던 상사는, 쓰러진 내게 오는 게 아니라 박살나버린 테이블을 주우러 갔다. 생면부지의 청년이 나를 부축했다. 상사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온 한마디는, 테이블이 나라가다 주차된 차에 부딪히지 않아 다행이라는 거였다.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머리가 울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일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스무 개에 달하는 테이블을 다 옮겼다.급한 일을 끝내고 회사 의무실로 향했다. 의무실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상사는 어디선가 반창고 하나를 구해다줬다. 허옇게 살이 패인 상처에 붙이기엔 턱없이 작았다. 반창고를 붙이고 아직도 피가 멎지 않은 옆구리를 붙잡고, 발을 절면서 일했다. 직원들이 다들 걱정했다. 애써 태연한 척 괜찮다며 일을 했다. 다행히도 시청 쪽 사람이 상비약을 구해다줬고, 다친 지 삼십여 분 만에 응급치료를 했다.저녁이 되자 대학생들이 몰려왔다. 단체행사가 많은 기간이라 천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콘도로 꾸역꾸역 밀려왔다. 모 대학의 학생회장이 작은 연회장에서 회의를 진행해야하는데 빔 프로젝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로젝터를 연결하러 갔더니, 대학교수로 보이는 사람들이 세미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에 RGB 케이블을 연결하다, 옆에 놓인 서류를 봤다. 회의 주제는 미대의 고교공모전 결과발표였다. 연회장 안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예술대 교수인 듯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예고를 가기 위해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 대회나 도 대회를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다. 학생회 부회장이 공부는 뒷전인 채 그림만 그린다고 구박하던 선생들이 기억났다. 이내 스크린에는 노트북 화면이 펼쳐졌고 나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나는 예고가 아닌 외고에 진학했었다.사무실로 들어가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한 여대생이 앉아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빠라고 부르는데 누군지 통 기억나질 않았다. 여대생은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초중학생 때 보고 몇 해를 본 적이 없었는데 얼굴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친구에게 성형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눈에는 없던 쌍꺼풀이 생겨나있었다. 즐겁게 보내라고 말하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해가 저물었고 비는 그쳤다. 그러나 아픔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옆구리가 아려왔다. 무릎이며 팔꿈치 성한 데가 없었다. 차마 병원에 가보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직원이라고는 연회장을 담당하는 상사와 비정규직인 나밖에는 없었다. 다른 직원들은 퇴근한 뒤였다. 사무실 앞 복도에는 학생들이 넘쳐났다. 행사 진행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들려왔다.담배를 피러 나갔다. 줄담배 피는 습관을 전역 후에 고쳤거늘, 연달아 담배를 태웠다. 휴대전화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스물 셋의 나이로 삼수를 하는 불알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끼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구를 치는 중이라 했다. 군에 가기 전에 실컷 놀아두려는가보다 싶어 다음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콘도에서 세달 남짓 같은 방을 썼던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울컥, 울음이 터져나왔다. 불 꺼진 스키장 슬로프를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고 울고 또 울었다. 힘내라고, 힘내라고. 힘내라는 형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쓰레기통 옆에 쭈구리고 앉아 눈물을 닦았다. 크게 소리쳐 외쳤다. 씨팔 나도 대학가고 싶다. 돈 걱정에 벌벌대더라도 대학가고 싶다. 엠티도 가고 싶고 또래 친구들도 사귀어보고 싶고 디자인 공부도 하고 싶다. 남들 다 하듯이 사라보고 싶다.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는, 음악소리와 함께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자동문이 열리며 한 아저씨가 들어서다,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화장실에서 눈물자욱을 지우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연장수당조차 없는 회사에서 한달 백십 만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이미 열두 시간에 가까워졌다. 퇴근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학생단체의 행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나 새벽에 나와 연회장에 테이블을 깔아야겠다는, 상사의 앓는 소리가 들린다.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스물세 살의 비정규직 노동자다.이천십년 삼월 십오일.회사 사무실에서.ㅇㅇㅇ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지난 3월 10일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가 붙은 이후로, 대자보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고 있다.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불편하다", "이것은 드립에 불과하다", "퇴교하긴 하는 것이냐" 등 다양한 의견이 인터넷과 다른 학우들의 또 다른 대자보를 통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입학 이래로 한 개인의 대자보에, 아니 그 어떤 대자보에도 이렇게 폭발적인 관심이 일어났던 경우는 없었다. 이 정도면 하나의 대자보 '자체'에서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뽑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사회적인 문제가 주된 동기이지만 '자발적 퇴교'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택이다.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퇴교 의사를 밝힌 대자보의 목적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결국 김예슬 학우는 학교를 완전히 떠날 것이고 앞서 몇몇 분들이 대자보를 통해 이야기해주신 맥락과 같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물음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일단 답을 내리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이야기해보자.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가 붙은 지 벌써 5일이 지났다. 대자보도 훼손된 뒤, 사라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김예슬 학우의 절차적 퇴교도 마무리될 것이고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도 우리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갈 것이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김예슬 학우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기보다는, 우리가 김예슬 학우가 남기고 간 것들을 잊음으로써 또 다른 김예슬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렵다."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선행해서, 약 일주일간 이루어진 소통의 경험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기억을 과거 속에 남겨두지 말고 끊임없이 우리 앞에 되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김예슬 학우가 보여준 용기, 그리고 수많은 학우들의 생각과 글을 바탕으로 '무엇을 해나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기억'을 위해서 '대자보 릴레이'와 대자보를 관리하는 집단 구성을 제안하고 싶다. 지금은 홀로 추상적인 구상으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지만, '대학생'이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들을 대자보를 중심으로 한 공개적인 소통으로 계속 이어나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자보를 관리, 보존, 기록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집단이 구성되어, 소통의 장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대자보에 대한 동기와 용기가 부족할 수 있지만, 대자보의 체계적인 기록과 보존이 이루어지고, 대자보를 통해 학우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박원익 학우의 대자보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대자보 하나 붙이지 못했던 익명의 학우들이 공론의 장에 뛰어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에 대한 입장과는 관계없이, 귀한 시간을 쪼개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대자보를 쓰고 있다. 약 일주일 간 이어진 소통의 경험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김예슬 학우가 우리에게 준 '불편함'의 경험과 대자보를 중심으로 형성된 소통의 공간은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김예슬 학우가 무슨 대단한 존재인양 기억하고 기리자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어렵게 열린 공론의 장, 특히 대자보가 중심이 되는 소통의 장을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이야기다.김예슬 학우의 용기와 일주일 간 이루어졌던, 아니 앞으로 더 오래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소통의 경험이 추억 속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김예슬 학우는 학교를 떠나지만, 우리는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2010년 3월 15일ㅇㅇㅇ3월 23일 자진철거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