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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장화,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김태정 | 범국민교육연대* 사무처장 | http://eduright.net/
* ‘신자유주의 반대, 교육시장화 저지, 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이하 범국민교육연대)는 한국사회의 진보적 노동조합·시민·사회단체들이 결합한 명실상부한 교육운동진영의 상설적인 연대체로 2003년에 출범하여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들어가며
‘교육불평등’은 한국사회구조의 대표적인 문제점 중 하나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에는 적어도 교육의 기회만큼은 균등하게 부여된다는 신화가 광범위하게 존재하였다. 60-70년대 박정희의 무려 20여년간의 독재가 용인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비록 못사는 시골출신이라도 공부만 잘하면 출세할 수 있다”는 통념 때문이었고, 이는 어느 정도 진실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더 이상 교육기회의 균등성이라는 신화는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한국은 고졸자의 약 82%가 대학을 진학하는 사회다. 그러나 실업자가 4백만명이라는 지표가 말해주듯 대학졸업 후에도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또한 교육비용의 민간부담은 계속 확대되어 1년 등록금이 1천만원인 시대에 돌입하였으며, 비싼 교육비용의 부담으로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비관자살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공립대 법인화와 사립대 구조조정을 예정하고 있다. 여기에 성균관대나 중앙대의 경우처럼 대자본이 직접 대학을 소유 및 운영하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대학의 시장화, 기업화는 가속되고 있다. 천문학적인 대학적립금 규모에서 확인되듯 대학운영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경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처하기 위해, 그동안 대학등록금 문제와 관련하여 교수단체와 대학생단체 등에서는 등록금후불제 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금 내야할 돈을 몇년 뒤에 내는 것’에 불과하며 결코 교육비민중전가의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사립대의 경우 대학운영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학평의회 설치 등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학이 기업처럼 사적으로 소유되고 지배되는 구조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한국의 대학시장화는 현재 대학교육을 받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교육의 문제는 초중등교육과정을 왜곡시키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는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에 대한 대중의 권리가 제약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개혁은 전사회적인 요구와 의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학시장화의 역사와 그 결과로서의 대학서열체제의 문제점을 다룬 후, 마지막으로 대학시장화의 대안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자 한다.
대학시장화의 역사와 대학서열체제
대학의 설립과 발전은 자본주의의 태동과 그 궤를 같이해 왔으며, 자본가를 비롯한 지배집단의 요구를 반영하였다. 이하 내용은 윤종희(2005), 「법인자본주의와 대중교육의 역사」, 『대중교육 역사 이론 쟁점』에 근거하였다. 그렇기에 대학의 시장화는 사회구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에서 생산의 기술적 토대가 노동자의 숙련도에서 기계로 이전되면서 숙련노동자 대신 규율된 반半숙련노동자가 중요해진다. 이를 통해 생산에 필요한 핵심적인 기술과 노하우는 숙련노동자로부터 박탈되어 자본의 관리구조에 통합된다. 그 결과 생산의 핵심적인 기술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와 거대한 기업조직을 경영하는 관리자 등과 같은 노동자계층, 즉 지식노동자가 등장한다. 고등교육을 통해 육성된 지식노동자들은 육체노동자들보다 고임금을 받기 때문에, 이제 노동자들에게 중등이상의 학교교육은 개인적인 계층상승의 통로로 인식된다. 그리고 노동자의 지위와 임금이 이때부터 ‘숙련’보다는 ‘학력’에 의해 규정되면서 노동자 내부에 새로운 위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위계질서의 재편과 지식노동자들을 길러내기 위한 자본의 필요가 바로 고등교육을 대중화하는 동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자본은 대학을 대중화시킴으로써 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요구에 맞게 대학을 재편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미국 대학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대학은 연구기능을 강조하는 독일식 모델에서 출발했지만, 독일이 주로 국가관료양성을 목표로 한 데 비해 미국은 자연과학, 경영학, 사회과학 등에 집중하였다. 또 법학과 의학 등 과거의 전문직 양성 분야를 흡수하면서 이른바 종합대학 체계를 도입하였다. 대학의 팽창은 자본의 요구와 일치하였고 이는 학과의 팽창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대학은 1962년 당시 교직원 수만 4만명이고 강좌가 1만개였다. 10만을 넘은 학생 중 3만은 대학원생이었고, 학과 또한 산업사회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였다. 235종의 교과목을 지닌 공학계열의 경우 심지어 드라이클리닝 공학이 있을 정도였으며, 교육학은 218종이나 되어 자동차 운전이나 안전교육도 교과목에 들어갔다. 이광주, 『대학사』, 1997. 자연과학의 경우에도 자본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재편되었다. 예를 들어 중화학공업의 팽창으로 나타나는 2차 산업혁명은 화학이나 물리·전기·전자 등의 전문지식을 요구했고, 이에 자본은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여 대학을 자본이 원하는 지식생산기관으로 변형시켰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필요성이 80년대 이후 대학의 급격한 팽창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중등교육에서의 실업계와 인문계의 구분이 사라지고 인문계로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과거의 중등교육이 담당했던 노동자계급의 분할은 이제 대학에서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사립대학과 명문주립대학과 같은 엘리트대학이 최상위에 있고, 그 밑으로 기타 주립대학, 초급대학, 통신대학으로 위계화된다. 그리고 이 위계화는 철저히 성적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1970년대 초반 대불황이 시작되고 1980년대 들어와 신보수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긴축정책으로 대학팽창이 일시적으로 정체되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등교육은 다시 확대된다. 이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OECD 국가에서 25-34세의 연령층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구의 비율은 1990년 20%에서 2001년 30%로 증가하였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은 30%에서 39%로, 영국은 19%에서 29%로, 프랑스는 20%에서 34%로, 캐나다는 32%에서 51%로 그리고 한국의 경우 1995년에서 2001년까지 29%에서 40%로 증가하였다.
이처럼 미국의 대학이 변천해온 특징들, 특히 대학교육의 대중화 현상은 타국으로 이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지배계급들이 미국의 사례를 대학재편의 모델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대학시장화의 역사적 경향성은 한국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1946년 3월 ‘무허가학교폐쇄령’과 7월 ‘국립서울종합대학교안’을 발표하였다. ‘무허가학교폐쇄령’으로 해방국면에 나타났던 수많은 자생적인 교육기관들이 폐쇄되었다. 한편 ‘국립서울종합대학교안’으로 경성제국대학과 9개의 관립, 공립, 사립 전문학교가 통합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교수들의 영향력은 배제되었고, 통제권은 친미적 성향의 교육관료들에게 주어졌다. 또한 해방정국에서 토지개혁으로 인한 토지의 상실을 우려한 대지주들이 사립대학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부를 이전하였다. 그 결과 사립대학이 전체대학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57년에 이르면 70%로 증가하였다.
이어 박정희 군사정부는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정책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자본축적의 필요에 맞게 대학교육을 정비하였다. 교원노조를 금지하고 사립대학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교수재임용제와 교수에 의한 학생지도제 도입, 학도호국단 재설치를 추진하며 강사들의 교원지위를 박탈시킨다.
80년대에 한국사회는 산업구조조정을 겪었으며 극소전자혁명이 일어나 중화학공업 중심적이었던 산업전반이 새롭게 재편되었다. 생산공정의 복잡성은 글 읽을 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복잡한 정보에 대한 가공 능력을 요구한다. 이에 신군부정권은 대학정원의 30%를 추가적으로 모집할 수 있는 졸업정원제를 도입한다. 그 결과 대학진학률은 1970년 10%에서 198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 30%로 급증한다. 중등교육도 변화하는데, 반(半)숙련 육체노동자의 양성을 위한 실업계중고등학교는 축소되고 인문계 중고등학교가 확대되어, 중등교육은 대학진학을 위한 인문계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1980년대 후반에 3저호황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이 종결되면서 고등교육은 다시 확대되는데, 97년에 일정한 여건만 갖추면 대학설립을 허용하는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되면서 대학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제 노동자들은 대학에서 앞서 말한 능력을 취득하지 않고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자본의 요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은 지식과 정보의 접근에 대한 권한을 차등화하고자 한다. 이는 대학과 학문의 위계서열화로 나타난다. 학문과 대학서열체제는 학력에 따른 임금과 사회적 지위의 격차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모든 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임에도 각각의 노동에 위계를 설정하고, 정신노동이 육체노동보다 우위의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피지배계급에 설파하는 것은 지배계급에게는 중요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즉, 타인의 노동의 결과를 가지고 부와 특권을 향유하는 계급에게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시키는데 있어서 대학서열체제는 매우 필수적인 장치이다.
서열체제를 통해 사회전체 혹은 개별기업에서 관리자의 지위에 오른 계층 혹은 중간계층들은 그 지위를 유지하려고 혹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 지위를 대물림하려고, 학력에 따른 임금과 사회적 지위의 차이 그리고 이를 재생산하는 대학서열체제를 옹호하거나 묵인한다. 중간계급의 경우 승진이나 임금 결정에 최종학력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중간계급에서 교육에 대한 보상이 가장 크게 이루어지고 있다. 프티부르주아지의 경우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교육수준이 월소득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지는 않지만,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좋은 직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신광영,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2004. 그리고 관리자의 지위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유지하거나 고임금을 받는 노동계급의 일부분은 자신의 자녀만큼은 관리자의 지위로 상승시키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교육비에 쏟아 부으면서 그 체제에 편입되고자 한다.
그보다 못한 지위에 있는 다수의 존재들 즉, 사회적 생산을 담지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제반의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지만 이 서열체제의 하위에 있는 다수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들의 일부는 계층상승의 기회를 꿈꾸며 악무한적惡無限的 경쟁의 들러리로, 또 다른 일부는 진입을 위한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절망하고 포기하며 ‘잘못된 세상’이 아닌 ‘못난 자신’을 저주하고 원망하며 자신을 묶는 굴레는 운명으로 여기고 체념한다.
한국사회에서 학력의 차이는 노동자 내부에서도 소득격차를 만드는 주요한 요인으로 확인되고 있다. 노동자가구의 학력별 연간소득의 변화를 보면 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1996년 이른바 외환위기가 이러한 변화의 분기점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직노동자가구의 경우, 1991-96년에는 가구주의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연간소득의 격차가 커졌으나, 그 이후에는 격차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생산직 노동자가구의 경우 1991-96년에는 가구주의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연간소득의 격차가 줄어들었지만, 1996년 이후 오히려 그 격차가 늘어났다. 교육비의 지출변화의 경우에도 사무직이 생산직보다는 더 지출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1996-2000년간의 통계의 경우 사무직은 3배정도의 보충사교육비가 증가했으나 생산직은 약 2배에 미쳤다. 이진동, 「노동력 재생산구조의 변화」, 『한국노동계급의 형성: 1987-2003』, 2006. 나아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교육비용 지불능력의 차이가 곧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다시 직업, 수입수준 및 주거 형태 등에 따른 계층구조의 분화 양태에 거의 비례하여 현상화하고 있다. 일부 분석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계급계층은 최상층(기업소유자, 최고경영자, 고소득전문가, 60평이상 주택소유) 5%, 상층(전문직 40평이상 주택소유) 15%, 중산층(사무, 판매, 기능, 서비스직 일부 25평이상 주택소유) 15%, 중하층(사무, 판매, 기능, 서비스직 일부 국민주택이하 소유) 15%, 하층(육체근로, 단순노무, 주택 비소유) 25% 최하층(단순노무, 근로능력상실, 기초생활보장제 수급대상) 15%으로 분류된다. 김문조, 『한국사회의 양극화』, 2008. 이렇게 대학서열체제는 입시경쟁을 유발하는 원인이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지배계급의 계급지배의 도구로, 특히 학력에 따른 직업군의 고착화와 임금과 사회적 격차를 재구조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부르디외 등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사회에서 학력은 제도화된 ‘문화자본’이다. 학력과 학위는 그 자체로 권위와 권력을 갖으며 자본과 지위를 취득하는데 중요한 조건이 된다. 학력은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한 필수조건일 뿐만 아니라 인맥과 사교의 충분조건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경우 대학의 팽창과 그에 못 미치는 노동시장으로 인해 이른바 학력인플레를 겪고 있으며, 이 학력인플레가 다시 학력자본 안에서 서열에 따른 권력의 장을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즉, 한국의 경우 학력자본은 학위 그 자체가 아니라 학위의 서열 즉 특정의 대학에 의해 재생산되는 구조이며, 이는 다시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이동연, 「한국인의 일상과 문화 아비투스」, 『문화과학 61』, 2010.
대학시장화의 대안 1: 고등교육을 만인의 것으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학교육의 대중화는 곧 자본의 요구였다. 그런데 이는 자본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대중들의 지적인 능력이 집단적으로 고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중세에 종이의 발명과 보급이 소수 성직자에게 독점되었던 지식을 사람들에게 개방하게 된 결과를 낳았듯이, 과학 기술의 발달은 지식과 정보가 지배계급의 것으로 일방적으로 독점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고등학교 졸업자의 약 82% 이상이 대학진학을 한다는 사실은 대학교육이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에 따른 전문노동인력 양성이라는 자본의 요구에 종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교육이 더는 소수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 지식이 더 이상 소수 지식인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지식인 혹은 전문가집단의 권위 또한 더는 절대적이지 않다. 근대 이후 대학에 대한 자본의 요구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문가에 대한 신뢰는 이미 오래전부터 허물어져 왔다. 지식이 객관세계의 투명한 반영일 수 없으며, 또 그 지식의 생산작업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맥락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 중립성 또한 회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에 대한 회의는 ‘집단지성’ 개념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함의하는 것은 결국 지식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본과 그 이데올로그들은 지식, 특히 축적된 지식을 사유화하고자 하였다. 허나, 과연 지식은 개인들의 노력의 산물로 사유화될 수 있는 것인가? 지식의 발전이라는 것은 그것이 늘 획득되고, 분배되며, 접근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지식이 사적인 아닌 사회적으로 축적되고 저장된 지식들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 또 이러한 지식들을 영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전승(교육)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닌가? 일찍이 맑스가 말했듯이 모든 지식은 “(인류의) 연합된 지성”이 아닌가? 볼프강 프리츠 하욱, 「일반지성과 대중의 지성」, 『진보평론 28』, 2006.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자들은 ‘인적자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교육은 인적자본에 대한 일종의 투자행위’가 된다. 그러나 개인의 교육 즉 ‘나의 인적자본’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허구다. 분업화된 사회에서 교육은 다른 모든 사람의 교육 없이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누군가가 알고 있는 지식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운 지식이다. 모든 사람이 교사이자 동시에 학생이다. 이 때문에 교육과 지식은 본질적으로 아주 탁월한 공적재산이다. 엘마 알트파터, 『자본주의의 종말』, 2005.
이런 관점들을 차용해 본다면 대학교육은 지식을 매개로 하여 특권을 재생산하는 지배 엘리트의 양성과정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열린 보편교육으로 설정될 수 있다. 또 실제로도 대학교육은 대중교육이 되었으며, 이를 다시 소수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중교육이자 보편교육으로서의 대학교육은 직업을 얻기 위한 교육의 성격 외에도 인류(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보편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과정과 그것을 발전시키는 탐구활동을 갖는다. 여기엔 자본에 종속된 대학이 아니라 학문공동체로서의 대학 본연의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이 내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와 같이 대학교육과정이 학문활동이 아닌 노동시장에서 더 나은 스펙을 얻기 위한 학위 사고팔기 공간으로 변질된 대학교육과정에 대한 정상화를 유도하게 될 것이다.
또한 보편교육으로서의 대학교육은 만인에게 문호가 개방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교육과정에서 교양교육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등교육의 보편적인 목표라 할 수 있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능력의 함양’에 더욱 근접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럼으로써 대학은 학문공동체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
대학시장화 대안 2: 대학의 사회화
대학이 보편교육이 된다는 것은 대학이 특정 집단의 이해와 이윤추구의 도구로 작동하는 것을 중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 공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2007년 일반대를 기준으로 국공립 25개교, 사립 150개교가 있는 한국사회는 가히 사립대학들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사립대학들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누적교비회계가 5조 4,461억원으로 10년 전에 비해 4조원의 적립금을 더 갖고 있는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대학 등록금의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일 대학에 대한 국가재정 지원을 확대하여 대학재정 운영을 현재의 중등교육처럼 국민들의 세금으로 대체한다고 하여도, 그 소유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결국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등록금을 가지고 토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짓고 그것을 사적으로 전취하는 이 기형적인 소유·지배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대학개혁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사적인 소유·지배구조 자체가 대학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저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의 사회화’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사이의 불일치가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모순을 확대하듯이, 대학교육은 이미 사회적 필요에 의한 보편교육이 되었는데 대학은 사적으로 소유되고 지배되고 있는 모순된 현실, 이것이 대학교육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대학의 사회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요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대학의 사회화는 여타부문의 사회화의 일환이며, 이는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검증된 사회적 요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생산양식의 역사적 발전에 있어 객관적 과정으로서의 사회화는 자본의 측면에 관한 것이며, 자본주의적 가치증식의 우위 하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생산자 또한 주체적으로 사회화되며, 자본의 대항극으로 훈련된다. 그리하여 자본이 설정한 목표로의 종속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대항운동의 발전된 표현은 특정기업과 부문의 사회화 그리고 마침내는 전체 경제의 사회화의 요구로 나아간다. 따라서 사회화는 생산력발전과 사회적 조절네트의 특정한 역사적 상태 위에서 경제활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목표규정성이 지양되는 의식적 행위를 특징짓는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목표규정성에 대신해서 안전한 일자리와 보다 나은 노동조건, 충분한 소득과 사회적 안전 그리고 환경 및 자원 친화적인 교류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도모하게 된다. 외르크 후프슈미트, 「국가소유와 민주적 국가 - 진보적인 사회화구상의 전망을 위하여」, 『사회화와 공공부문의 정치경제학』, 2003.
이런 관점을 차용한다면 대학에 대한 자본주의적 목표규정성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을 통한 이윤의 창출이나 자본순응적인 노동력 양성 대신, 누구에게나 개방된 보편교육으로 대학교육, 이를 위한 대학교육의 무상화와 대학 소유구조의 사회화와 그리고 대학운영의 민주화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학의 사회화가 가능하기나 한 것이냐는 문제제기가 존재할 것이며,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일상적인 개혁투쟁이 보다 중요하다거나, 혹은 그 역편향으로 진보적인 세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후에야 그게 비로소 가능한 것 아니냐는 주장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핵심은 자본주의 하에서 이루어지는 ‘제한된 사회화’와 ‘전면적인 사회화’의 변증법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만일 현실자본주의하에서 사회화를 통한 근본적 대안전략의 제기와 이 전략의 실현을 위한 대중들의 투쟁과 조직화가 없다면, 자본주의 하에서의 일상적인 개혁과 생존권투쟁은 결코 사회화와 국가권력의 장악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화는 독점자본주의 국가를 상정하더라도 그 국가의 민주화 속에서 한발 한발 실행되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이 정책을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승리하고 그럼으로써 국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권력장악과 함께 전면화되는 변증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김성구, 「한국에서 사회화와 이행의 경제전략」, 『사회화와 공공부문의 정치경제학』, 2003.
한편 대학을 사회화한다는 것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사립대들을 점진적 혹은 급진적으로 국공립대로 전환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일거에 국공립화가 어렵다면 부실사학을 우선적으로 국공립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으며, 국공립대 네트워크안과 같이 네트워크 체계로 편입시키면서 국공립대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유형식의 변화가 곧 사회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발리바르는 단순한 법률적 소유관계의 변화에 불과한 국유화를 사회화로 오인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동시에 사적자본과 공적자본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이 같은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제적 소유의 법적 전화의 실천적 중요성을 동시에 인정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 법적 제형태의 작용 그것이 바로 자본의 집적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중략) 지배적 이데올로기에서의 국가의 모든 정의는 ‘공’(공적 이익, 공적 제도, 공적 소유)와 ‘사’의 구별에 의거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조아 사회의 조직된 상부구조로서의 국가의 기능 가운데 법적으로 ‘사적인’인 제도(가족, 종교, 학교, 조합)를 포함시킬 필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순히 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공적 제기구의 기능의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공적자본의 운동과 사적자본의 운동과 다르지 않다.” 에티엔 발리바르, 『역사유물론연구』,푸른산, 1989. 형식적으로는 국공립대라고 할지라도 국가권력의 성격이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면 대학의 기업화 시장화는 그 형식만 바뀐 채 진행될 수 있으며,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담론하에서 총자본의 이해에 얼마든지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시장화의 대안 3: 저항주체의 형성과 사회운동과의 결합
대학시장화를 중단하고 대학을 사회구성원의 보편적인 교육기관으로 재정립하는 대학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대학 바깥의 전반적인 사회구조 개혁이 함께 추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대학개혁이 사회혁명 혹은 그에 준하는 사회적 격변의 산물이라는 의미이며, 최종적으로는 국가권력에 의한 행정적 조치를 수반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대학개혁은 국가권력의 성격을 변화시켜 발생하는 강력한 개입을 포함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비단 대학 개혁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요법이 경제를 재구조화하고 국가예산과 기구들을 재편하기 위한 강력한 국가개입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충격요법은 항의와 부정의 독단이라는 사나운 외침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충격요법에 뒤이은 국내시장에 대한 실질적 신규투자와 신용의 신속하고 단호한 행동은 이체를 지탱할 충분한 지지 이상을 창출할 수 있다.” 제임스 페트라스·헨리 벨트마이어, 『세계화의 가면을 벗겨라』, 메이데이, 2008.
동시에 위로부터의 국가의 개입만으로는 개혁적 조치가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대학자치는 대중의 실질적인 참여 속에서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대학개혁은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통해 국가권력의 성격을 변화시키며 이루어지는 강력한 개혁적 조치로 가능하다. 대학개혁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면, 대학교육 및 운영에 대한 대중의 실질적인 참여확대가 가능해질 것이며 이를 통해서 대학을 사회적 공적교육기관으로 재정립하는, ‘대학자치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경로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대학개혁에 대한 요구가 사회구조의 개혁에 대한 요구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고졸자의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명문대 출신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 엄청난 교육비용의 부담, 초등학생시절부터 대입준비를 시키는 악무한적惡無限的 경쟁교육 등으로 인한 대중들의 고통과 불만은 사회적 임계지점을 향하고 있다.
과거의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주화혁명은 군부정권의 권위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통제방식에 대한 대중적인 반발이었다. 반면 지금은 부의 대물림도구로 작동하며 소수만의 기득권 재생산을 위해 다수를 배제하는 사회구조적 모순, 즉 자본의 독재에 대한 반란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운동 등 목적의식적인 운동과 결합되지 않는 한 그 가능성은 가능성으로만 그칠 뿐이다.
한편 대학개혁은 그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하며 여타의 사회개혁 조치가 동반될 때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 평준화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대학졸업장에 따라 취업 및 승진에서의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나아가 ‘학력 간 임금격차’를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의 일자리에서부터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법안의 마련 등 사회적인 제재조치가 요구된다. 또 학력격차에 따른 사회적 임금격차를 다른 방식으로도 상쇄시킬 수 있다. 즉, 수입의 상당부문을 침식하는 교육, 의료, 주택 등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만 접근하면 대학개혁의 주체는 바로 대학구성원이어야 할 것이다. 법인화와 구조조정으로 일차적으로 고통받게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태는 매우 열악하며, 상호 연대수준 또한 매우 분절적이다. 대학생들은 오랜 입시경쟁 속에서 경쟁을 내면화한 존재이며, 매우 파편화되어 있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학노동자들과 대학교수 진영에서도 나타난다. 그 결과 그들은 자본의 분할통제에 포섭되고 있다. 물론 개별단위로의 구조조정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조합적 혹은 경제적 이해에 근거하여 생존권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그조차도 개별단위의 투쟁으로 스스로 제한하거나 일정한 타협으로 귀결될 공산이 매우 클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 대학시장화의 중단 혹은 대학개혁은 주체의 부재로 한낱 공상이 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지금 수준에서는 대학시장화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은 형성되고 있지 못하지만 그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김예슬 선언’과 같이, 악무한적인 경쟁시스템과 대학의 노골적인 기업화 시장화에 대한 경고가 대학 안에서부터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한편, ‘비정규교수노조’와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 등이 끈질기게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대학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비정규교수 및 연구자들의 처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이들의 싸움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저항과 노력들을 더욱 확장하는 것이 요구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대학개혁을 가장 절실히 요구하는 이들은 단지 현재의 대학구성원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학서열체제로 대학의 기업화 시장화로 고통받는 사회구성원의 절대다수 역시 대학개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는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를 정당화하고 재구조화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이 대학개혁의 주체로 나서는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을 것이며, 일정한 과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와 사회적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온 노동자 민중들이 대학개혁을 포함한 교육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육받을 기회가 박탈되고 자신들이 점차 소수를 위한 들러리가 되고 있음을 집단적으로 확인하면서, 또 교육은 보편적 권리임을 각인하면서 그들의 정치의식은 진전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대학시장화에 맞설 수 있는 주체는 여전히 대학생인 동시에 노동자민중의 일부인 대학생들일 것이다. 대학생들은 소수의 자본가계급이나 고위지배층 출신의 자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노동자 민중의 자녀들이다.
학생의 수업 행위 자체가 사회적 노동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대학교육의 대중화과정에서 확인하였듯이 자본은 학교교육, 특히 보편화된 대학교육을 통해 대규모로 또 안정적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받는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예비노동자이자 ‘사회적 노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노동과 노동자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그는 전통적인 (공장 혹은 작업장) 노동자의 개념대신 사회적 노동자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여기에는 가사노동과 수업노동이 포함된다. “노동 자체가 전 사회에 걸쳐 확산되어 있다. 왜냐하면 생산이 공장내에서뿐만 아니라 공장 밖에서도 수행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착취는 더 이상 임금형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착취는 더 이상 단순한 생산자의 착취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생산자 공동체의 착취로 구성되어 있다. 발전된 자본주의는 직접적으로 노동의 협동과정 자체를 착취한다. 자본은 어느 곳에나 침투되어 있고, 어디에서도 조직력과 명령력 성취, 그리고 가치의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생산은 사실상 사회적이며 또한 이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그것의 본질은 전적으로 사회적인 생산 네트워크에 스며들었다. … 생산직 노동자들은 착취의 무자비함 때문에 입은 상처를 없애기 위해, 점점 지적 노동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주기를 조절한다. 그들은 가장 다양한 생산적 잠재성을 집결시키고 발전시키는 내부에서 사회적 분수령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낡은 노동행위를 배격한다. 그들은 협조주의의 낡은 관습과 규칙을 던져버린다.” 안토니오 네그리, 『전복의 정치학』, 1991.로 자본이 원하는 노동력을 갖추기 위한 강제적인 노동 즉 수업노동을 수행한다. 때문에 1968년 혁명 당시 구래의 대학을 두고 “지배계급의 요구에 영합한다”고 공격한 서베를린의 독일사회주의학생연합(SDS)는 “학습이 생산적인 노동이며, 학생들은 (임금을) 지불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프랑스 학생연합(UNEF)와 공유하는 요구였고 이탈리아 학생들도 이를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투쟁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자본의 반응은 위기관리를 통해서 사회적 지배를 통해 노동을 재강화하는 것, 즉 국가에 의해 임금노동 연계와 사회에 대한 부불잉여노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노동자’ 곧 ‘대중노동자’를 자본의 사회적 재생산 국면 즉 재생산 속에 확장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싸움은 ‘부불노동’, ‘가사노동, 교육, 자본주의적 사교형태, 임금 없이 노동관계를 띠는 모든 것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안토니오 네그리, 『맑스를 넘어선 맑스』, 1994. 만일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대학인들이 대학개혁을 자신의 중심적 의제로 설정하고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면 향후의 지형은 변화될 것이다.
한편 대학시장화에 맞서 대학개혁을 요구하고 투쟁하는 주체가 기존의 대학주체는 물론 노동자 민중들로까지 확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중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접행동’을 조직하는 것이 요구된다.
법으로는 교육기회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사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의 독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를 바꾸어야 한다. “대학교육이 보편교육이 되었다면 국가와 사회가 이를 무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행동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고혈로 수조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토지와 건물을 사적으로 집적하고 있는 사립대학을 사회 전체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행동해야 한다. 대학의 교육이 보편교육이라면 “대학운영 또한 사적 이익집단에 의해 전횡되어서는 안되며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되고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실천은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적인 참여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허구적인 교육기회의 균등성을 실제적인 교육평등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대중의 직접행동은 기존의 민주적인 제도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역할 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창조할 수도 있다. 역사는 지배 체제에 대한 저항과 항의로부터 새로운 정치 경제적 제도가 생겨나는 경우를 흔히 보여주었다. “급진 민주주의는 폭력·비폭력 저항운동이나 반란과 연관을 맺어 왔다. 실제로 소비에트나 민간 협의체의 혁명적 전통은 일정한 단계에서 무장투쟁을 수반했으며, 아나키스트들의 중요한 집단적 실험이 스페인내전 당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무장투쟁은 대중 민주주의의 서곡이었거나 아니면 새로운 사회를 수호 또는 추진하려는 단기적 수단이었다. 만일 무장투쟁이 장기화되면 물리적 심리적 파괴성 때문에, 그리고 군사적으로 강한 세력의 지배 경향 때문에 정치 경제적 조직의 건설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게릴라 세력은 중국에서처럼 해방국에서 새로운 정치 경제적 실험의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규율이 엄한 게릴라 집단일수록 참여민주주의 원칙과는 상반되는 중앙집권화된 명령체계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참여민주주의를 고무하는데 필요한 핵심 요소는 대중의 대규모 자력화 의식과 해방감이다. 따라서 아렌트가 비폭력과 민중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권력사이에 필수적인 연계가 있다고 한 것은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다.” 에이프릴 카터, 『직접행동』, 교양인, 2007.
대중의 직접행동은 운동의 방식에서도 새로운 전형을 창출해야 한다. 그것은 제도화되고 관료화된 기존의 운동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관성화된 구래의 운동주체만으로는 대학개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개혁이 단지 대학 내 주체의 몫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대학개혁이 사회전체적인 구조개혁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 등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68혁명 당시 프랑스에서 등장한 행동위원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조합조직이나 소집단과는 달리, 보다 많은 대중들을 포괄하면서도 혁명적 행동에 매진할 보다 유연한 조직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학교, 대학, 공장, 기업, 병원, 지역 공동체 등에서 수많은 행동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5월 말이 되면 파리의 대학들에서만 400여개의 행동위원회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당시 행동위원회는 대중들에게 혁명이란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퍼뜨리는 데 주력했다. “행동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특징을 지녔다. 첫째, 행동위원회의 건설 및 해체 그리고 행동위원회의 참여는 자발성에 기초했다. 특권과 권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둘째, 행동위원회는 자율성에 근거했다. 이는 외부집단 특히 국가로부터의 독립성, 자치(자주관리)를 뜻했다. 셋째, 행동위원회는 직접민주주의를 자신의 운영원리로 삼았다. 위원은 매일 교체되었으며 이를 통해 대표의 기능은 권력자가 아니라 중개자로 제한되었다. 모든 결정은 총회에서의 만장일치에 따라 이루어졌다. 여기서 관료주의가 등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손호종, 「68혁명과 학생운동」, 『마르크스주의 연구 10호』, 2008.
주지해야 할 것은, 이러한 급진적인 운동은 물리적 시간의 양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대학시장화를 중단시키고 대학개혁이 실제적인 대중적인 요구와 행동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운동주체의 형성과 운동의 지속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한국사회 대학의 모순, 특히 대학시장화와 대학서열체제는 한국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적 모순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안에서의 생산은 사회적임에 비해 생산수단은 사적으로 소유됨으로써 갈등 및 모순이 일어나며 스스로 한계에 직면한다. 이와 같이 대학 또한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보편 교육이 되었음에도 그 소유와 운영은 사적이라는 점이 대학교육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이제 대학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시대적 요구이자 화두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대학인들이 교육운동진영은 물론 민중운동진영과 함께 대학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실천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