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과 나
2010년 3월 19일 오후 5시 30분
고려대학 서관(문과대학) 215호
강유원 (인문학자, 서평가)
오늘 강연을 하게 된 강유원입니다. 저에 대해 소개할 것은 없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나”, 이것에 대해 몇 가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1980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올해가 2010년이니까 제가 대학에 입학한 지 30년 되는 해입니다. 이 30년 동안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고, 바뀌지 않은 게 무엇인지, 제가 살아온 세상과 여러분과 제가 앞으로 같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부터 20, 30년 정도를 더 살았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한두 마디 문장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제가 오늘 여기 오는 길에 보니까 펼침막이 붙어 있어요. “너의 젊음을 고대에 걸어라, 고대는 너에게 세계를 걸겠다.” 멋진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고대’가 내 정체성을 이루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일까요? 나 외부에 있는 어떤 기관이나 조직이나 친구나 단체나 이런 것들을 거론하지 않고 ‘나 한 사람’만을 가지고서 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50살쯤 되었을 때, 가령 ‘고려대학교 졸업한 누구입니다’, 또는 ‘어느 회사 다니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을 무엇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문과를 다니는 학생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저와 이렇게 문답을 나눕니다. 중국어를 왜 하느냐 물으니, 일단 언어니까 한답니다. 근데 이 언어를 도구삼아 경제학을 부전공 한다고 합니다. 그럼 경제학은 왜 합니까? 나중에 시험을 볼 거고, 시험에 합격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럼 그것이 아마 학생의 인생을 한 20년 지배할 겁니다. 그런데 그 자격증이 쓸모없는 시대가 오면, 자기를 어떤 속성으로 채울 것인가, 이게 되게 고민스럽습니다. 먹고 살자면 그런 걸 해야 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엔 세상에서 나한테 요구하는 이른바 ‘스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스펙은 세상이 달라지면 쓸모가 없어집니다. 버려지는 겁니다. 버려졌을 때 가질 수 있는 스펙, 이게 나의 진짜 스펙입니다. 이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걸 오늘의 결론으로 미리 여러분들에게 말해두고, 제가 30년 전에 대학에 들어가던 시절을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철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 되는 게 싫어서 취직 못해도 욕먹지 않으려고 철학과에 갔습니다. 그런데 1980년에는 공부라는 걸 할 수가 없었어요. 요즘에는 학교에 은행이 들어오고 피자헛이 들어오고 스타벅스가 들어오잖아요? 예전에는 전경이 들어왔어요. 제가 동국대학교 다녔는데 거기 불상 앞에 가면 문과대학 건물이 있습니다. 군대 갔다 와서 85년에 복학을 했는데, 데모를 하다가 학생들이 그 안으로 쫓겨 들어오면 전경들이 건물 안에까지 들어와서 최루탄을 쐈어요. 그때는 학교 안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왔다면 지금은 자본이 밀려들어옵니다. 자본은 달콤합니다, 최루탄은 눈물이 나지만. 이게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최루탄이, 전경이 밀고 들어왔다면 지금은 우리가 늘 한시도 벗어날 수 없는 자본의 실마리들이 학교 안으로 이렇게 들어온다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말초신경에 직접적으로 닿아오는 소비문화들이 학교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었던 때의 모습과 다릅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예전하고 많이 달라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경계선이 뚜렷했어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이고,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문제이고 어떤 게 문제가 아닌가 하는 전선이 뚜렷했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얘기가 아니라, 여러분은 고민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음을 말해두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뭐가 바뀌었다 그럴 때, 저는 이걸 ‘자본주의의 전면화’라고 생각을 해요.
대학이란 것도 한국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영향력의 자장권 안에 들어가요. 대학에 있는 사람들도 당연히 그 자장권 아래로 들어가지요. 1980년대, 또 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어디까지가 자본이 지배하는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자본과는 무관한 영역인가의 경계선이 뚜렷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선이 희미하게 지워져 있어요. ‘자본주의의 전면화’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삶에 삭 파고들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파고들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핵심적인 부분이에요.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적어도 1800년대 이후부터 지금 2000년대에 이르는 이 200년 가까이에 걸친 자본주의 시스템의 전개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큰 흐름으로 봅시다. 여기 세계가 있어요.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말에서처럼,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 세계 안에 동아시아가 그보다 작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 동아시아 안에 한국이 요만큼, 점 하나로 있습니다. 이게 뭔 얘기인가 하면, 전 세계의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흘러가다가 한번 요동을 치면 그게 동아시아로 흘러들어오고, 동아시아에서 요동친 것이 그제야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얘깁니다. 즉,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와 함께 움직여가기는 하지만, 결국 세 번째 물결을 맞게 되어 있다는 얘깁니다.
이걸 역사적으로 단순하게 한번 따져봅시다. 흔히 자본주의의 출발점에서 거론되곤 하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떠올려 봅시다. 사람들은 대영제국 같은 나라들을 자본주의 시스템의 선도국가Agent States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선도국가가 되려면 반드시 두 가지를 갖추고 있어야 돼요. 하나, 돈이 무진장 많아야 돼요. 둘째로, 군사력이 강해야 해요. 이게 자본주의 선도국가의 기본적인 요건이에요. 대영제국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다, 그랬잖아요? 대영제국 여기저기에 영국의 해군들이 진출해 있었다는 얘기에요. 그러려면 돈이 많아야 되는데 이 돈은 어디서 벌어요? 식민지에서 벌죠. 이 식민지는 어떻게 얻죠? 무력으로, 군사력으로 얻잖아요. 이렇게 맞물린단 말이에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대영제국이 1800년대 말에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선도국가가 되었을 때의 모습이에요.
1870년대에 전세계적인 공황이 일어납니다. 공황이 일어나자, 각 나라들은 더 이상 자유무역을 하지 않고 쇄국주의, 보호무역주의를 지향하게 돼요. 보호무역주의를 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이 안 돌아가잖아요? 그랬을 때 영국은 끊임없이 돈을 퍼부으며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해요. 그 돈을 어디서 얻어왔느냐? 중국에서 아편을 팔아서 벌었습니다. 아편까지 동원해서 벌다 벌다 안되니까, 보호무역주의를 하다 하다 안되니까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땅따먹기 시합으로 들어가서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어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영제국에 이어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나라가 자본주의 선도국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70년대까지를 ‘전후자본주의 황금시대’라고 합니다. 이때가 바로 미합중국의 세계패권이 다져진 시기에요.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미국은 점점 제조업 기반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융이라든가 서비스라든가 정보기술 같은 것만을 남기고 나머지 산업들을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즉 홍콩, 싱가폴, 대만, 한국 이런 데로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곧바로 넘겨주기 시작한 건 아닙니다. 한국의 경우 너무나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일본에서 돈을 대서 넘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서 존경하는 인물 1, 2위를 다투는 ‘위대한 박정희 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이처럼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척도가 있습니다. 도시거주인구비율이 50%가 되느냐 안 되느냐입니다. 여러분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 있잖아요? 우리가 쉽게 ‘이웃나라 일본’이란 말을 쓰는데, 그 일본에서는 도시거주인구비율이 1930년대에 50%를 넘어섰습니다. 일본 인구가 1억이에요. 5천만이 도시에서 살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은 1930년대에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에 가담한 나라라 할 수 있는 겁니다. 한국은 1970년대 들어서야 도시거주인구비율이 50%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본격적인 산업화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겁니다.
1970년대 이후 30년 동안 자본주의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온 한국은 1998년에 IMF 구제금융 사태가 나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수정합니다. 즉, 한국 안에 제조업 공장을 만들지 않죠. 지금 애니콜 휴대전화가 1년에 1억대 넘게 만들어집니다. 그 휴대폰의 20% 정도만이 한국에서 만들어집니다. 나머지는 전 세계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삼성은 한국의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이죠. 지금 한국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도 그 상황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 아이스크림 가게 베스킨 라빈스 있잖아요? 예전에는 이걸 먹을 수 있는 걸 상상도 못했어요. 이게 외국에 있는 브랜드잖아요. 한국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걸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각자가 입고 있는 옷을 생각해봅시다. 전에 미국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중국제 물건 없이 살기” 외출 자체가 안 되죠. 아이폰을 보면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그 다음에 “Made in China”, 이렇게 되어 있어요. 우리 손 안에 벌써 3개국이 들어와 있는 겁니다. 한국에 사는 강유원이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되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아이폰을 손에 쥐고 있는 거죠. 지금 내 손 안에 세계가 들어가 있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래요. 이게 정말로 놀랍고도 좋은 세상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아직 잘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가면 갈수록 이 체제가 구조적으로 인간을 배제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어떤 특정한 ‘스펙’을 갖추었을 때 그 사람이 사회 속에서 그 스펙을 발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엊그제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읽기와 쓰기 강의를 하는데, ‘왜 이걸 들으러 오느냐’를 첫 시간에 써서 내라고 했어요. 어떤 분이 이렇게 썼어요. “58년 개띠다. 20년 동안 직장생활 하다 퇴직했다.” 58년 개띠면 여러분 중에 부모님이 58년 개띠인 분이 있을 수 있어요. 50대 초반. 그런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서 왔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생명은 길어요. 50대 초반에 퇴직하고 30년을 더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20대에서 40대까지 20년의 한 덩어리를 살고, 40대에서 70대까지 30년의 한 덩어리를 살아요. 50대까지 회사에 다닐 수도 있지만 대개 40대 초반에 퇴직을 해서 70대까지 살게 되는데, 그만큼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사실은 갑갑한 문제에요. 그런데 우리는 구조적으로 인간을 배제하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그나마 길어야 20년 정도 짧아야 십여 년 정도를 지내기 위해 여기 대학에서 5-6년 정도를 준비합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시스템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열명 중 두세명밖에 안됩니다. 청년실업률이 엄청나게 올라갔죠. 모든 일자리가 ‘알바화’되고 있다고 그럽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밥을 먹으려는 사람은 많고 그 밥을 담고 있는 밥그릇은 적습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인간이 만들어낸 이 시스템이 이제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태로,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굴러가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기에 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인간도 뭉개고 가는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체제내화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체제내화된 사람은 어떻게 되어야 해요? 강인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날마다 공병호의 책을 읽으면서 오늘 하루도 새롭게! 아이폰 사가지고 정보관리 무지하게 하고, ‘자기경영 아카데미’ 이런 데 다니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이 시스템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날마다 ‘자기로부터의 혁명’, ‘새로 맞이하는 아침’, 25분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이런 책 읽어야 합니다. 이런 책 읽고 자기계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진짜 열심히 성실하게 삽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 주차장에 제일 먼저 차 대놓고서 “잘하자 얍!”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회사에 가면 진짜 많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구조적으로 인간이 배제되는 이 시스템 속에서도 나는 배제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그 안에 맞춰 넣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은 인맥관리도 하죠, 자기가 나온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다 챙기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전혀 다른 세계가 있어요. 제가 그 세계에서 생활을 안 해봤으면 이렇게 말씀을 못 드리는데 그렇게 삽니다. 그렇게 해서 50살이 딱 되었을 때 자기 사업체를 갖는 게 이 자기계발주의자들의 목표예요.
지금 자본주의 시스템은 어떨까요? 아까 1970년대까지가 전후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말했죠. 이 시기가 지난 다음인 1995년에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습니다. 이때 자본주의 시스템이 한번 바뀌었어요.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체제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관한 상세한 지식이 궁금한 분들은 데이비드 하비가 쓴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이란 책을 참조하세요. 정말로 중요한 책입니다. 이건 전공 불문하고 읽고 졸업해야 하는 책입니다. 안정적인 생산체제와 평생고용을 보장받는 노동자, 이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이른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점차 무너져갑니다. 대신 전 지구적으로 분산된 유연적 축적체제가 20년 정도의 조정기를 거쳐 95년의 WTO 체제로 귀결되었고, 금융자본주의가 반짝반짝하게 빛을 냅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이른바 ‘닷컴’이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어요. 터졌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벤처기업들이 붕괴된 바 있죠.
그때부터 지금,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즉 자본주의 시스템의 전개과정에서 지금은 어떤 시기에 들어와 있을까요? 작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지금부터 최소한 15년에서 20년 정도가 다시 앞서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자체의 조정기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얘기는, 그 전까지는 멀쩡하던 직업이 한 순간에 없어진다는 의미에요. 그걸 잠재적 실업이라 그럽니다. 그게 인류 역사에서 가장 대규모로 폭력적으로 일어났던 시기가 언제냐면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무렵입니다.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이란 책이 있습니다. 파놉티콘은 감옥의 일종이죠, 감옥을 왜 만들려 했을까요? 제레미 벤담 동생이 사무엘 벤담인데 두 형제가 무지하게 잔머리가 좋아요. 시대를 읽는 눈이 빨라, 자기계발이 되어 있는 놈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왜 파놉티콘을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했느냐면, 장사가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감옥장사라는 말이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왜 장사가 되느냐? 당시 잉글랜드에 차고 넘친 게 빈민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감옥을 기업처럼 운영하면, 빈민들을 수용해서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아주 많은 생산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벤담의 아이디어가 나온 건 빈민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구의 50%가 도시에 거주하게 되면 산업화가 된다고 했습니다. 인구의 50%가 도시에서 거주한다 할 때, 모두가 번들번들한 데서 거주할 수는 없잖아요. 산업구조가 농촌중심의 사회에서 공업중심의 사회로 급속도로 변화해갈 때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빈민이 되어 그 사회에 있었던 겁니다. 그들을 처치하는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어요. 여러분들 잘 아는 맬서스 있죠, 인구론을 쓴. 그의 이야기 역시 빈민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나온 거에요. 벤담이 감옥을 짓고 그걸 이용해 사업을 하자고 했다면. 맬서스는 죽도록 내버려두자, 그게 자연의 이치다. 라고 했던 겁니다. 맬서스 직업이 뭐였는지 아세요? 목사였습니다. 죽도록 내버려두는 게 하느님의 뜻이고 자연의 이치라고 말했어요. 어찌 그리 가혹한 얘기를! 가혹한 얘기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 생각하는 과학적인 생각이었던 겁니다. 헌데 지금 민영교도소가 생기고 있습니다. 소망교회에서 ‘소망교도소’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지금 감옥 장사가 된다는 얘기거든요. 제가 너무 암울한 얘기만 하는 거 같지만 사실이 그러합니다. 앞으로 이 체제가 전환되면서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전 지구적으로 그것이 어떤 형태로 굴러가게 될지는 지금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세상에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을 다니면서 세상에 필요한 스펙을 쌓아올리는 것은 쌓은 지 2년도 안 되어서 무의미한 것으로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는 앞으로의 일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책이나 읽고 공부나 하라고 말하겠습니다. 여기 고려대학을 다니는 학생도 있고 연세대학 다니는 학생도 있습니다. 어느 대학 다니는 학생이든 간에, 자기가 지금 입학하고 다니고 졸업할 학교를 잊어야 해요.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물론 관가에 나아가고 공무원으로 나아가고 출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최소한 구청장 후보라도 나갈 사람은 날마다 그걸 챙겨야 할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잊어야 합니다. 제가 올해 대학의 철학과에 입학한 제 아이한테 그랬습니다. “잊어라.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잊어라. 그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냥 이 학교를 다니는 누구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 철학이라고 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학문 세계의 훌륭한 시민이 될 것을 맹세해라. 그게 중요하다. 물론 네가 훌륭한 학자가 될지 안 될지 그건 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 4년 다닐 동안에는 네가 다니는 대학이 어딘지를 잊고, 철학과를 다녔으니까 철학이라고 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훌륭한 학문세계의 시민이 되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내가 말을 했어요.
또 여러분들은 지금 대학 1학년생이 되었건 2학년이건 3학년이건 모든 분야에 대해서 책을 읽어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야 되느냐, 닥치는 대로 읽으면 안돼요. 많이 읽는 건 절대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각 영역에서의 표준도서를 반드시 읽어야 됩니다. 표준도서가 뭐냐, 아까 말했던 것처럼 벤담의 『파놉티콘』 같은 것이 표준도서입니다. 고전이라고 알려진 책들을 이해하든 못하든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게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 읽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 세대에서는 특별한 기술 하나만 있으면 평생 먹고 산다고 했어요. 그래서 공과대학에 많이들 갔고 거기서 익힌 기술 가지고 다들 먹고 살았어요. 그런데 그 시대가 끝나버린 겁니다.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가 “철학 공부를 평생 하고 싶다, 그런데 먹고 사는 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먹고 살게 된다.” 사람들은 그걸 거꾸로 생각하죠, ‘먹고 사는 걸 갖춘 다음에 공부를 해야 된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먹고 살게 됩니다. 왜? 공부를 하다 보면 말이죠, 쓸데없는 욕심이 줄어듭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은 쓸데 없는 인간을 안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돈이 안 들어갑니다. 자신이 직업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 해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 다 공부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내가 하루에 눈 뜨고 살고 있는 시간이 열두 시간, 열네 시간, 열여덟 시간이라고 할 때, 그 중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몇 시간이나 하고 사느냐, 이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다른 걸 해도 좋습니다. 변호사를 해도 좋고 행정고시를 봐서 공무원이 되어도 좋아요. 그렇게 해서 자기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뿌듯함을 느낄 수만 있다면 좋습니다. 그러니까 이 강연의 제목 “세상과 나”에서 ‘나’를 따져보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온전히 나의 주인인가? 내가 온전히 나의 주인일 수만 있다면 뭘 해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20대건 30대건 지금부터 15년에서 20년 정도의 인생을 딱 살았을 때, 내가 온전히 나의 주인일 수 있었는가, 이것을 한번 돌이켜볼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아 뭐, 그래도 다 살다 보면 그런 반성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우울하게 말씀드리냐 하면,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개미핥기라는 짐승 알아요? 개미핥기는 개미를 잘 먹기 위해서 자기 주둥이와 혀를 특수하게 발전시켰죠. 그런데 우리 인간 중에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고기를 잘 먹기 위해서 어금니를 발전시키는 놈이 있어요? 없죠? 채소를 잘 소화시키기 위해서 위를 하나 더 만드는 사람 있어요? 어, 난 이번에 소처럼 되새김질 하려고 웨엑 해서 또 새겨넣고 이러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안 되죠. 인간은 어떤 존재에요? 인간은 기본적인 것만 갖추고 태어납니다. 그렇죠? 인간은 기본적인 것만 갖추고 태어나서, 신체를 특수화하는 대신 머리를 써서 도구를 만들고 특정한 상황에 적응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이룩되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인간은 상황에 너무나 적응을 잘 한다는 거예요. 즉, 웬만한 상황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인간이 제일 독합니다. 동물들은 약간의 스트레스만 받아도 죽죠. 인간은 죽지 않습니다. 무지하게 독합니다. 그게 뭘 말하느냐, 사람은 그만큼 잘 변한다는 말입니다. 즉, 20대 때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어떤 구조 속에서 10년만 있게 되면 까마득히 그 구조와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할 때는 자기 개인생활도 갖고, 좋아하는 헬스도 하고, ‘건전한 신체, 건전한 정신’ 이렇게 했는데, 지나면 그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다행이겠다, 그렇게 삽니다. 주말에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도 많고. 혹시 결혼이라도 했다면 애 보느라고 주말엔 뼈빠지고. 이 구조 속에 들어가니까 점점 어떻게 되어가느냐, 자기 정당화가 됩니다. ‘세상이 다 그런걸’ 하면서 말입니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니, 이렇게 문제를 간단하게 처리해버린단 말이죠. 그렇게 해서 이 사회에 무뇌아의 덩어리와 노예의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게 되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이야기 시작할 때 그랬듯이, ‘온전히 내가 나의 주인으로 살 수 있게끔!’ 이거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해요. 내가 입고 있는 옷, 내가 신고 있는 신발, 내가 타고 다니는 차, 내가 쓰고 있는 신용카드, 이런 것들이 나의 정체성일 수는 없습니다. 다 내 외부의 물건입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 나의 직책 같은 외부에 있는 물건을, 우리는 그게 온전히 나의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나의 정체성을 거기다 집어넣습니다. 그래놓고 그것을 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뭐겠어요? ‘소외’된 상태입니다. 외부에 있는 물건에 나를 투사시켜서 그것을 나로 착각하고 나인 것처럼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무런 대책없이 사는 사람은 직장생활 5년만 해보면 곧바로 이 상태로 빠져듭니다. 그러니까 지금 직장에 다니지 않고 학교에 다닐 때, 공부하고 있을 때, 사회 따위는 잊어버리고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나의 것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그게 핵심입니다. 그건 이기주의적으로 사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아야 그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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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강연을 축약한 것입니다.
강연 녹음파일은 아래 주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