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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하며 당신께 드리는 편지
세종 | 편집위원 | halbschatten@gmail.com
X파일과 양심고백
“세상이 뒤집혀지기라도 할 듯 떠들썩했던 처음과 달리 그만 흐지부지 끝나버린 사연은 여러분이 알고 계신 그대로입니다.”ㅡ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2010)』에 실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의 추천사 중
알고 계시겠지만 이제는 잊힌 옛날이야기를 좀 하려 합니다. 책 광고조차 거의 하지 못한 은둔의 베스트셀러 『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된 지 벌써 넉달이 되었습니다. 사제단이 김용철 변호사의 목소리를 세상에 처음으로 밝힌 날이 2007년 10월 29일이니, 그로부터 2년 반이 훌쩍 지난 셈입니다. ‘삼성 X파일’이 MBC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전 의원에 의해 공개된 2005년 7, 8월로부터는 5년이 지났습니다. ‘삼성 X파일’이란, 지금은 국가정보원이 된 안전기획부가 97년 한해동안 삼성 수뇌부를 도청한 내용을 담은 테이프입니다. 당시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과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 이학수, 그리고 이건희가 고위공직자와 대선후보들에게 뇌물을 건네는 것을 모의하고 체크하며 나눈 대화가 들어있습니다.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여당 열린우리당과 야당 한나라당은 각각 특별법과 특별검사법 도입의 입장으로 나뉘어 대립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불법도청 여부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특검법을 꺼려했고, 한나라당은 여당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자 특별법보다는 특검법을 택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결정된 것 없이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당시 여당이 발의한 특별법은 X파일 내용의 검증과 공개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특검법은 X파일 당사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두 법안을 절충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우리당 ‘X파일 특별법-특검법 절충안’ 제출추진’, 한겨레, 2005.11.28.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모든 게 잊혀갈 무렵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에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합니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세 가지 쟁점을 내세웠습니다.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 및 탈세와 이를 감추기 위한 회계조작 △정·관·법조·언론계에 대한 광범위한 불법 로비 △경영권 불법 세습 및 이 과정에서 저지른 법정 증거 조작’『삼성을 생각한다』, p.40이 그 내용입니다. 여론은 로비와 비자금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허나 그 둘은 사실 경영권을 탈법적으로 승계하려는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경영권 불법 승계에 대한 문제가 핵심 사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딴판이 되었습니다. 수사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결과는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특검법을 마뜩찮아 했지만, 특검법이 통과되었고 대한변호사협회가 특별검사 후보를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헌데 그 후보로 뽑힌 사람은 공안검사 두명과 삼성과 관계된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 한명이 전부였습니다. 시민사회단체와 민변이 추천한 사람들은 모두 무시당했습니다. 그리하여 공안검사 출신 조준웅이 이끌게 된 특검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들은 찾아낸 차명지분을 모두 이건희의 소유로 인정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불법경영권 승계를 위한 직간접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축적해 오던 차명 비자금을 역설적으로 이건희 회장의 소유로 ‘인정’하여, 처벌다운 처벌보다도 ‘합법화’를 뒷받침해주는 수사가 되고 만 셈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금융지주회사법 때문에 상장이 불가능했던 삼성생명을 상장할 수 있게 되었고, 이건희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조준웅 특검이 차명지분을 이건희의 소유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19.34%를 가진 삼성에버랜드였습니다. 당시 삼성에버랜드가 1대 주주인 상태에서 금융회사인 삼성생명이 상장되었다면, 삼성생명 지분은 에버랜드 자산총액의 50%를 넘게 됩니다. 그러면 금융지주회사법상 삼성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지주회사법의 규정에 따라 ‘제조업 기업’인 삼성전자를 더는 손자회사로 둘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삼성특검 이후 개인인 이건희가 20.76%(기존 지분 4.54%+차명지분)를 갖게 됨으로써 1대 주주가 되어 삼성생명을 상장해도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될 염려가 사라져 버립니다. 게다가 상장으로 삼성생명이 막대한 종자돈을 쥐게 된다면,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두는 금융지주회사로 탈바꿈하기도 편리해지죠. 지금 삼성생명이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7.21%로,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두는 금융지주회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분율 20%를 충족하려면 20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삼성생명은 지금 상장이 이루어졌고, 삼성은 계속해서 지배구조에 대한 내부적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압니다. 처음엔 떠들썩했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것을. 즉, 잘못을 저지른 집단은 꼬리만 조금 잘랐을 뿐 그 몸통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이 해체되고 이건희가 회장직에서 물러난 게 2008년 4월 22일입니다. ‘경영쇄신안’을 눈물까지 글썽이며 발표하면서 말입니다. 유죄와 무죄를 오락가락하다가 2009년 5월에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옵니다. 유죄였습니다. 이건희는 차명계좌를 보유하면서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의 확정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29일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라는 핑계로 ‘단독 사면복권’된 이건희는 이듬해 3월 24일 ‘위기’를 운운하며 회장직에 복귀합니다. 그것도 삼성전자 회장직으로, 경영일선에 섰습니다.
안타까운 죽음
이건희가 용퇴와 복귀를 거듭하며 ‘쇼’를 벌이는 동안 그가 쥐락펴락한 삼성전자에는 병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들어보셨는지요?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지금은 다루는 영역을 넓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으로 거듭난 곳입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의 전자분야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20-30대 노동자들 가운데 백혈병, 중증재생불량성빈혈, 림프종, 유방암, 육아종 등 여러 희귀질환을 얻어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의 사람들이 일부 공장에서 무더기로 이런 희귀병에 걸리고 있으나 삼성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발뺌합니다. 그 대신 소송이나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치료비를 지원해주겠다는 회유·압력으로 실상을 숨기려 들 뿐입니다.
올 3월 31일 세상을 떠난 고 박지연 씨 역시 이런 회유와 압력을 받아 왔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근로자들은 아우성이지만 그 소리는 좀처럼 공장 밖으로 새나오지 않았다. 삼성의 ‘관리’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지난해 9월 백혈병이 재발한 박지연(23)씨는 이제 취재진을 만나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온양공장 직원이던 그는 2008년 초 항암치료를 받을 당시엔 <한겨레21>과 병원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이후 삼성 쪽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이 이어졌다. 가만히만 있으면 삼성 쪽에서 나온 직원이 병원비도 대주고 충남 부여의 집에서 서울 병원까지 통원 치료도 도와준다고 했다. 지난 1월5일 다음 항암치료를 기다리던 중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결국 어머니가 ‘삼성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성 쪽에서 보낸 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반올림은 노동자가 공정에서 쓰이는 물질들 때문에 병에 걸려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런 기업들과 단단하게 싸우고자 출범한 단체입니다. 5월 18일까지 47명이 자신의 병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그 싸움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직업성 암 등 피해 제보 현황■ 근로복지공단 산재 불승인 이후 2010년 1월 행정소송 접수한 피해자1. 고 황유미: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 디퓨전공정 2005년 급성백혈병 발병 2007년 사망(23세)2. 고 이숙영: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 디퓨전공정 2006년 급성백혈병 발병 2006년 사망(31세)3. 고 황민웅: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1,5라인 엔지니어 2004년 급성백혈병 발병 2005년 사망(31세)4. 고 박지연: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생산직 2007년 급성백혈병 발병 2010년 사망(23세)5. 김옥이 :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생산직 2005년 급성백혈병 발병 (35세) 현재 치료 중6. 송창호 :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생산직 도금업무 2008년 악성림프종 발병 (37세). 현재 치료 중■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심사청구 중인 피해자7. 한혜경 :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 생산직 2005년 뇌종양 진단(27세) 현재 장애1급(31세)■ 산재신청자 위 7명 이외 2008~2008년에 제보된 피해자8. 남○○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6,7라인 디퓨전 설비엔지니어 흑색종(피부암) 2008년 사망9. 조○○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6라인 디퓨전 공정, 신필름 공정, 염증성 다발 신경병증. 치료중10. 이○○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4라인 엔지니어, 급성골수성백혈병 2000년 발병. 1년후 사망11. 강○○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엔지니어, 1999년 백혈병 발병.12. 박○○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엔지니어, 2007년 림프종 발병.13. ○○○ :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검사과, 2005년 악성림프종 발병. 현재 완치.14. 이해○ :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생산직 5년 근무, 2005년 직장암 발병(30대 초반)15. ○○○ :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생산직, 30대에 눈의 악성종양 발병16. ○○○ :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생산직, 30대에 간암 발병17. 이상○ : 삼성전자 디스플레이개발팀 연구원(남성), 급성림프구성백혈병 2005년 9월 사망18. 연○○ :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 설비엔지니어(남성), 종격동암으로 2009년사망 (27세)19. ○○○ : 삼성전기 조치원공장 엑스레이 취급 여성, 93~07년 근무, 만성백혈병으로 치료중(30대 초반)20. ○○○ : 삼성전기 90년대 입사한 여성, 2001년 백혈병 발병하여 2005년 12월 사망21. 도○○ : 삼성전기 부산공장 회로기판제조(남성) 2007년 백혈병 진단받고 그해 11월 사망(27세)22. ○○○ : 삼성전관(현 삼성SDI) 브라운관 제조 업무. 결혼 직후 백혈병 발병■ 2010년 5월 13일 산재신청자 5명23. 김기영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육아종 피해자)24. 주교철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피해자)25. 신송희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유방암 피해자)26. 유족 강봉신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자 고 김경미씨의 남편)27. 유명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중증재생불량성빈혈 피해자)■ 산재신청자 위 5명 이외 고 박지연 죽음 이후 한달 동안 나타난 피해제보자28. 김○○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2라인 생산직 CVD/Thin필름 공정, 두경부종양, 치료중.29. 소○○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5라인 생산직 포토공정, 2010년 2월 난소암 사망(31세))30. 양○○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엔지니어 포토공정, 2009년 백혈병 발병(36세), 현재 치료중.31. 나○○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1라인 에치공정 생산직, 98년 임파선암(림프종)발병, 현재 완치.32. 김○○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1라인 디퓨전공정 생산직, 임파선암(림프종) 발병(30대).33. ○○○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포토공정, 자녀가 백혈병으로 투병34. 최○○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생산직, 1995년 백혈병으로 사망35. ○○○ :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생산직 4년 근무, 2007년 급성백혈병(33세), 2009년 11월 사망36. ○○○ :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생산직 10년 근무, 2009년 혈액이상(혈관 터짐)으로 한달 후 사망37. 박○○ : 삼성전자 반도체 부천공장(온양공장 전신) 검사업무 여성, 육종(뼈암)으로 2006년 사망38. 김○○ :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 칼라필터 생산직,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중(26세).39. 윤○○ :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 근무 중. 무형성빈혈 혹은 중증재생불량성빈혈 치료중.40. ○○○(여성) :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 2006년 백혈병 발병 후 현재 완치41. 방○○ :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 근무 중 공황장애 및 신경계 이상 질환42. 김○○ : 삼성전자 구미공장 (핸드폰 무선사업부), 24세에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현재27세)43. ○○○(여성) : 삼성전기 CRT제조라인에서 4년 근무, 3년 전 자궁암 사망으로 사망.44. 김○○(여성) : 삼성전기 조치원공장 2002년 입사하여 4년 근무, 급성백혈병으로 5년 전 사망(24세).45. ○○○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생산직, 2010년 5월초 백혈병으로 쓰러짐(26세).46. ○○○ :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남성), 현재 백혈병으로 투병 중(30대 후반).47. ○○○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생산직, 2007년 뇌종양(뇌하수체 선종) 발병(27세).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삼성은 산업안전보건법까지 어겨가면서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는 물질을 숨겨 왔습니다. 대신 거짓말로 일관합니다. 2008년 국정감사 당시 삼성전자 전무 안재근은 “벤젠을 사용하는 공정이 없으며, 방사선도 사용하지 않는다”‘<국감쟁점>환노위, 삼성반도체 백혈병 집단발병 사태 추궁’, 뉴시스, 2008.10.07.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방사선을 사용하는 공정은 분명히 있습니다. 박지연씨가 바로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X선 기계를 다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단의 역학조사 결과 감광액에서 벤젠이 검출되었습니다. 삼성은 벤젠은 감광액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공기중에서는 검출되지 않았으며, 방사선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방사선을 막아주는 인터록이 있어 문제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있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증명하겠다며 라인까지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삼성이 공개한 라인은 93년 세워진 5라인과 2005년 세워진 S라인입니다. 83년부터 가동되었던 1라인 등, 문제가 불거진 1·2·3라인은 이미 다른 생산라인으로 바뀐 상태입니다. 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증언처럼 인터록을 해제한 상태에서도 작업이 가능한지, 일상적으로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 검증·재현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2008년 10월 5일의 MBC 뉴스데스크 취재에서는 삼성전자 관리자가 “완벽한 안전장치 중 하나가 인터락인데 그거를 해제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환경안전 쪽에서는 최대의 과제가 인터락을 임의로 해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큰 교육항목입니다”라고 밝혀, 인터락을 풀고도 생산이 가능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클린룸이 정말 깨끗하다느니 공정까지 공개하는 자신감을 봤다느니 칭찬을 늘어놓기 일색이었습니다. 먼지가 백혈병을 유발합니까? 클린룸과 방진복은 반도체를 사람의 먼지로부터 지켜 제품의 불량을 낮추기 위한 것, 즉 반도체의 수율을 높이기 위한 것일 뿐, 사람을 화학물질로부터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깔끔함’이 아니라 국소배기장치와 인터락 등 안전장치의 정상작동 여부와 화학물질의 적정사용 여부가 핵심인데, 겨우 30분, 그것도 전혀 달라진 공장을 돌아보았다고 의혹이 해소되었다니요.
무노조 경영의 선두주자
‘삼성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딸의 죽음 이후로 “노동자 건강권”, “민주노조”를 입에서 떼놓지 않았고,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우리 유미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지금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호소할 곳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있을 뿐입니다. 77년 제일제당 여공들이 노조결성을 시도하자 이병철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고 말하며 그들을 철저히 탄압했습니다. 그 이래로 지금까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노조 경영’이라 말했지만 사실 삼성에도 노조가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복수노조 설립금지조항을 악용한 유령노동조합들이 대다수입니다. 아니면 삼성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 회사의 노조도 함께 승계된 경우입니다. 두 경우 모두 삼성에 완전히 장악되어 있습니다. 가령, 삼성생명에 있는 노조는 동방생명 때부터 있었던 노조입니다. 회사가 삼성에 인수되면서 노조도 승계되었지만, 이후 해고에 앞장서는 지독한 어용노조가 되었습니다. 1998년 5월 1,700여명을 강제 사직시키려 할 때 삼성생명 노조는 이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섰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때의 해고는 삼성생명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건희의 잘못된 판단으로 만들어진 삼성자동차가 어려워지자 삼성그룹 전체에 고통을 전가해버린 것이었습니다. 해고가 이루어진 98년 당시 삼성생명은 95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고, 이듬해에는 직원들에게 주식도 나눠주고 삼성차 임직원이었던 이들을 포함해 1,600여명을 신규 채용했다니 말입니다. 물론 당시 해고된 사람들에게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간 경우’라며 복직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어려우니 싸인하고 나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으면서 말입니다.‘삼성생명은 주식상장 전 98년 강제퇴직 인정해야’, 오마이뉴스, 2010.01.11.
이에 삼성그룹 전체를 포괄하는 노조를 만들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조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상당한 탄압을 받아야 했습니다. 삼성은 죽은 사람 명의로 된 휴대전화를 개설해 임직원들을 위치추적하고, 노조를 결성하려다 해고된 노동자의 집에 고성능 도청기를 설치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서류를 위조하고, 위치를 추적하고, 은행 계좌를 열어 보고, 카드 내역을 조회하는 인사팀이 중앙에 있고, 지역마다는 ‘지역대책위’라는 것이 있어 노동자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노조설립 기도를 탐지하는 업무를 수행하기도 합니다.김성환, ‘“진짜 반국가단체, 여기 있소”’, 프레시안, 2008.08.29. 동료가 동료를 감시해 상부에 보고하는 일대일 감시도 이루어진 적‘동료가 동료를 감시… 삼성SDI의 ‘무노조 노하우’’, 오마이뉴스, 2007.11.21.도 있으며, 삼성은 심지어 거래하는 하청업체에서조차 노조결성의 낌새가 보이면 계약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무노조 경영을 거의 신념화하고 있는 셈이죠. 2007년 한때 이슈가 되었던, 과장급 직원들이 노조결성을 위해 준비한 ‘삼성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이 해체된 이유도 사측의 집요한 회유와 탄압이 있었던 탓입니다.
그렇지만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의 김갑수 의장과 삼성일반노조의 김성환 위원장은 여전히 공개적으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성환 위원장은 올 5월 13일 영등포에 삼성일반노조 사무실까지 얻었습니다. 삼성일반노조가 설립된 지 7년만의 일입니다. 삼성일반노조는 ‘삼성’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에 대해서조차도 소송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어용노조 삼성생명노조에 의해 명칭사용금지 소송을 당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노조가 제기한 준비서면에 삼성생명 인사지원팀 발신도장이 찍혀있음이 알려지는 등 ‘어용’으로서의 공개적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화는 이름을 얻고 사무실을 얻는 일 자체가 투쟁이 되는 어이없는 일이, 삼성에 대해서는 모두 사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
이건희는 1995년 4월 13일,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발언입니다. 아무래도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지지부진한 갈등과 일류기업에 대한 발목잡기가 못마땅해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비판받고 교체되기라도 하는데, 기업은 그럴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눈치볼 것도 없지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면, 그게 어떤 과정을 거쳤건 곧 국익이란 게 되어버리니까요. 그러면서 기업, 특히 재벌 대기업은 점점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상장 이후 “안녕하세요?” 광고를 여기저기 뿌리고 있는 삼성생명이 하는 일은 고객 입장에서 전혀 안녕하지 않은 걸 어쩝니까. 삼성생명은 보험금을 고객에게 지급하지 않기 위해 개인정보 불법확보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내 몸 아플 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꼬투리를 들고 나와서 낸 돈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다. 삼성생명은 병원 및 건강보험관리공단과, 검·경찰에게서 자기 회사의 고객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돌려 왔고, 이 ‘협력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해 왔습니다.‘삼성생명의 비밀…“고객 정보 불법 확보·로비 있었다”’, 프레시안, 2010.05.12.
계열사인 “삼성경제연구소가 각종 국책연구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긴 적자”를 대신 메워주기 위해 삼성생명이 2006년부터 약 3년간 80억원에 달하는 대가 없는 용역비를 지급한 사실이 금융감독원 종합검사에서 적발되기도 했습니다.‘상장앞둔 삼성생명 80억원 용역비리 파문’, 연합인포맥스, 2010.03.12. 우선, 이 사건은 보험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편리하게 쓰일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가만, 국책연구사업으로 적자가 생겼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정부는 국책연구사업 같은 용역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법규정이 명시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원가보다 싼 용역비를 책정했거나 암묵적으로 연구를 진행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어느 쪽이든 국가 정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의지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 공짜 국책연구사업 용역으로 정부 포섭했나’, 경제개혁연대, 2010.03.14.
도요타가 하청업체들에게 단가를 후려치면서 그들의 영광스런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듯, 세계 일류라는 삼성전자 역시 한국 중소기업의 생태계를 현저하게 침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아이폰 출시로 심기가 편치 않은 삼성전자는 이를 만회해보려고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자 확보에 나섰습니다. 부서별로 영입 숫자를 정해주는 등 인력 할당을 실시했는데, 그 대상이 여타 벤처기업의 경력자들이어서 업계에 파장이 일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 SW 개발자 확보하라”’, 한국일보, 2010.03.31. 인력을 자체적으로 육성할 역량이 되는 대기업이 오히려 중소기업이 애써 확보한 인재를 빼앗아 그렇잖아도 어려운 중소기업의 사정을 오히려 척박하게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몫을 빼앗아 실적을 높인다면, 중소기업이 한국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고용조건은 훨씬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우울한 미래,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공공연히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에는 광고를 먹이고 정권에는 로비를 벌이는데다,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금융연구소를 통해 삼성에 유리한 입론을 세련되게 포장해 내놓기 때문이겠지요. 삼성연구소의 결과물들은 로비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핑계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앞서 보았듯 그 자체로 정부의 정책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지방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앞서 이야기한 삼성 지역대책위는 해당 지역의 언론사나 경찰, 시청 민원실, 노동 관련 기관, 사법부 등을 포섭하여, 삼성 노동자들이 무얼 하는지 정보를 얻고 필요할 때 도움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런 탈법행위들마저 너무나 자연스러운 ‘기업의 이윤추구 활동’으로 인정받아가는 듯해 두렵습니다.
정치와 시장의 영역을 교란시켜 이익을 얻으며, 그 과정에서 범죄까지 서슴지 않는, 또 그런 식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권력을 다시금 키워가는 삼성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누구일지 상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부분 명문대생일 터이고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생산직 노동자가 될 리는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노조를 결성하려는 사람들에게 월급을 그만큼 받았으면 불만을 참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고 싶으실 지도 모르겠고, 국가경쟁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분들도 있겠습니다. 이것저것 문제가 있음은 느끼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삼성에 입사하면 좋으리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터입니다. 제가 이런 모든 분들께 싸워달라는 부탁을 드리진 못하겠습니다. 그저 아는 것만으로도 모순에 벅찰지 모릅니다. 질서정연함, 깨끗하고 세련된 제품, 그리고 ‘브랜드 가치’가 누군가의 눈물을 머금고 있음을.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