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을 위한 12가지 담론 전략
김낙호 | 미디어연구가 | capcold.net
정치를 논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야권, 그 중에서도 특히 진보진영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세력으로만 보여서 밀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책개발을 하는 것이나 이루고 싶은 사회상에 대해서는 늘 논의를 진행한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제대로 담론화시켜서 나머지 사회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는가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민주화 담론의 유통기한이 지났다’, ‘다시 서민의 생활 속으로’, ‘보다 선명하고 과격한 좌파 정책 표방’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진단 및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진보진영에겐 정론은 넘치지만 전략으로서의 노하우가 부족한 모습이 흔하고, 때문에 교조주의 먹물, 철없는 이상론자, 단순과격 빨갱이 등의 이미지가 씌워지곤 한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진보에게 힘을 실어줄 수 없다는 고정관념만 강화된다. 이런 이유로 단순히 진정성이니 우직함이니 하는 모호한 근본 가치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설득이 가능한 방식으로 전략을 짜서 담론을 이끌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류의 고민과 그 대처방안은 물론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30년대 대공황 시절부터 활약한 미국의 노동운동가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으로 한국에도 꽤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담론싸움의 링 위에서 적을 때려눕히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당사자들의 담론싸움을 보고 승자의 담론을 같이 취해준다는 식의 합리적 사고를 가정하는 완전한 대의민주주의 모델을 상당 부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사실은 당시에도) 현실은 그것보다 복잡하다. 사람들은 링 위의 싸움을 구경할 뿐만 아니라, 직접 그 과정에 크고 작게 동참하고 싶어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통로를 확보했다. 적과 싸우는 것 이상으로, 시민들과 직접 대화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모습을 취하며 그들의 의식을 은근히 형성하는, 여러 대화방식과 미디어 통로를 총동원하는 좀 더 복잡한 전략이 필요해진 셈이다. 단순히 ‘적’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과, 적인지 어떤지 애매한 이들과, 구경꾼과, 구경꾼보다는 더 적극적인 참여자들과, 기타 등등 수많은 범주의 사람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정공법이 필요하다.
크게 복잡하게 시작할 필요도 없다. 진보 담론을 효과적으로 유통시키기 위한 12가지 전략을─상대를 인정하고, 이슈의 판을 주도하고, 논의를 확장한다는 3가지 원칙 위에─제안한다.
첫번째 원칙: 대화상대를 인정하기
담론은 단순히 정보만 쏟아 부어넣음으로써가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대화의 집합으로 형성된다. 당연히 말을 건네고 설득을 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그런데 상대를 계급의식도 없는 자본의 노예, 내가 나서서 진보 이상향으로 이끌어야 할 양떼 같은 취급을 하면서 무려 대화를 꿈꾸는 것은 무척 야무진 목표다. 그렇다면 대화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두 개의 전제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학적 통찰이 아니라, 현상유지편향이라는 과학적으로 널리 증명되어온 인지기능이다(더 알고 싶으신 분에게는 ‘Kahneman’이라는 검색어를 추천드린다). 사람의 두뇌회로는, 변화하는 쪽을 선택할 때 주어질 이득이 매우 매력적이지 않은 한 변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 바탕 위에 심지어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정보 가운데 자신의 현재 생각을 지지하는 정보 위주로 선별, 해석, 기억하는 확증편견이라는 것도 작동한다. 시쳇말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전제는 사람들이 각자 셈을 하며 그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에게 최선인 것이 무엇인지 계산하며 매사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지, 아무 생각도 없이 단지 구조적 요인으로만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개념에서 이야기하듯, 합리적 판단을 하려는 의도는 각자의 제한된 정보 입수 및 처리능력으로 제한될 따름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전제를 합쳐보자. 사람들은 자기 의지가 있고, 나름대로 계산을 한다. 그것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라, 그냥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바로 담론전략의 첫 번째 원칙이다.
전략 01. 사람들은 자신이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믿기를 원한다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건 아니라서 스스로 더 자신의 못남을 강화시키곤 하는 자학인구도 있지만 그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많은 이들은 가급적이면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을 준비를 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기 위한 전제는 지금도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이 초래한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고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인지 기제인 ‘자기고양 편향’이 작동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을 수용하는 것은 훈련이 필요한 엄청난 능력이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나쁜 이야기나 격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싫어하고, 중립적이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잘못했어!”라고 누가 삿대질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인지적 에너지 소모가 크니까 말이다(비유적 의미뿐만 아니라, 실제 뇌과학 차원에서도). 그러다 보니 성찰을 하게 만들되, 계속 가능성을 짚어줘야 겨우 통할까 어떨까 하는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최악의 전략은 “내가 그때 뭐랬어?” 즉 “내가 그때 어쩌자고 했는데 따르지 않아서 당신들이 여전히 이 모양이야” 라는 접근이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임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입바른 이야기로 자기 스트레스를 푸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분명히 맞는 말을 했는데 왜 상대를 설득할 수는 없는가”라고 자문해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대답이다. 따라서 정말로 그럭저럭 잘하고 있는 부분들을 긍정해주면서, 아쉬운 점을 지목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례
☹ “너희 골빈 88세대들이 대통령을 그따위로 뽑으니까 이렇게 되어버렸잖아, 이 국개들아. 다음엔 생각 좀 하고 잘 뽑아.”
☺ “곤란한 리더십이 선출되어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 되어버렸어도 어떻게든 잘 살아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우리 시민들의 저력이다. 다음에는 오늘의 문제점들을 거울삼아 더 나은 선택도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략 02. 그들의 욕망을 내 방향성에 이어붙여라
설명했듯, 원래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는 쪽으로 기본설정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진보는 뭘 변화시키는 것 그 자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변화가 사람들이 원하는 변화임을 알려줘야 한다. 즉 사람들이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내 방향성을 통해 충족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변화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욕망은 잘못되었으니 훌훌 털고 내 뒤를 따라와”, 뭐 그런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고도 욕먹지 않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욕망을 부정한 것으로 취급하며 금욕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희생적 지사정신에 빠진 활동가들이 빠질 수 있는 너무나 흔한 에러다. 사람들이 욕망이 있음을 인정하고, 연쇄살인충동 같은 것이 아닌 한 그 욕망을 가지는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 욕망을 어떻게 또 얼마나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더 나은 방식으로 실현시킬 것인지 생각의 지평을 넓히면서 내가 이야기하는 진보의 방향성과 공통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유하자면 야채를 싫어하지만 정크푸드를 좋아하는 이에게 시금치를 먹이기 위해서라면 시금치피자, 시금치버거를 만드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례
☹ “뉴타운은 환경파괴이자 탐욕의 상징이다. 사탕발림에 속지 마시오.”
☺ “이왕 잘살아보자고 하는 뉴타운이라면, 단지 집 허물고 비싼 집 지어 주민 물갈이하는 수준에 머물러서야 되겠습니까. 단순히 부동산 재산 증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기반을 둔 사회적 생활환경 향상이 원래 우리들이 바라는 진정한 잘사는 ‘뉴’타운이죠. 친환경적 개발, 지역공동체 강화에 의한 복지편의와 합리적 상권관리가 갖춰진 우리들의 뉴타운을 만듭시다.”
전략 03. 이상향은 제시하되 혁명을 부르짖지 말아야 한다
무려 혁명을 해서 모든 것을 뒤집어야 닿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너무 거리감이 멀어서 좀처럼 공감을 살 수가 없다. 게다가 그런 주장을 하는 순간 이미 대결적 싸움꾼, 실행력 없는 바보로 낙인찍힐 뿐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같이 뛰어들기 위해 넘어야 할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무려 혁명을 감수해야 한다니 말이다. 주장하는 쪽에서는 역사적 필연이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사업이다. 활동가들의 열정이 그 혁명의 과정과 결과가 잘될 거라는 보장이 전혀 되어주지 않는데, 사람들이 굳이 힘을 실어줄 이유는 없다. 게다가 혁명을 부르짖기 위해, 온갖 현실의 문제점들을 얼른 보기엔 선명한 느낌이 들지만 결국 나중에는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지는 어떤 추상적 개념으로 압축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쯤되면 논리적으로 공격당할 구석까지 너무 늘어나버린다. 허구한 날 ‘신자유주의 척결’이나 ‘사이비좌파 말고 진짜 좌파혁명으로 뒤집자’고 해봐야 공감을 살 수 있는 쪽은 한 줌의 지지자 뿐이다.
적어도 오늘날 한국사회 정도로 안정된 사회에서라면, 진짜 혁명을 목표하더라도 담론을 혁명으로 포장하는 것은 실용성이 없다. 반면, 최종 목표로서 이상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어딘가로 변화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향은 저 방향으로 가면 있으며 그것을 위해 지금 내딛을 수 있는 작은 첫걸음이 가능함을 강조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안정에 대한 지향은 있다. 그것을 흔들지 않으면서,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하나씩 더 많은 개선을 제안하고 이끌어내는 ‘문칸에 발 집어넣기’ 기법이 필요하다.
사례
☹ “뜨거운 민중연대로 신자유주의를 뒤엎고 노동천국을 이룩하자! 혁명만이 그것을 이룰 길이다. 타협은 그들의 음모에 말려드는 것이다.”
☺ “사람이 존중받는 더 선진적인 사회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건 먼저, 최저임금제 강화와 사회임금 개념 본격화 같이 정책적으로 인간 노동의 금전적 가치를 좀 더 높게 쳐주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전략 04. 논의의 핵심을 개인화시켜야 한다
사람들이 상황을 판단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질 득실을 셈하는 일이다. 그 자신이 개인일 수도, 확장된 자아로서 가족일수도, 혹은 오지랖을 발휘해서 사회 전체일 수도 있지만 우선 자신에게서 시작한다. 사람들은 어떤 논의를 어떻게 이야기할지라도 결국 자신의 개인적 상황에 맞추어 수용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설득하고 싶은 사람들 개개인의 생활과 이해관계의 시각에서 논의를 설계해줄 때 비로소 의도한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알아서 자기 마음대로, 즉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논의를 개인화시키거나, 아니면 그냥 무시한다. 그러면 담론을 전략적으로 끌어나갈 수가 없다.
특히 진보진영에서 흔히 다루게 되는 거시적인 방향성을 띤 담론일수록, ‘개인의 교환대가’로 생각할 수 있도록 변환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연대’라는 것은 각종 아름다운 도덕적 의의를 벗겨놓고 말하면 당신이 극빈층만 아니면 세금 더 내라는 얘기고, 그 이야기에 관심을 제대로 기울이는 개개인은 그것을 이미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는 상상을 하는 것 이전에 내가 들여야 할 비용, 내가 얻을 혜택을 본다. 그 부분에 직접 손을 뻗어서 대화를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큰 개념만 터트릴 것인가. 그럴 때 국가가 무언가를 당신에게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회라는 거대공공보험에 투자를 하는 거라는 개념을 잡아놓는 일이 바로 그런 개인화에 대한 공략의 일례다.
사례
☹ “누구나 공평한 아름다운 완전한 복지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반응: “내 세금!”)
☺ “예측하기 어려운 험한 세상, 혹시나 당신이 망했을 때 덜 고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에게 의지하던 모델은 유감스럽게도 주먹구구 지난날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선진국형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힘써야할 때입니다. 세금으로 참여해주십시오. 그 대신 확실한 조세정의를 확립하겠습니다.”
전략 05. 당신들과 가까우면서도 기득권에서 멀지 않음을 과시하라
특히 사회/정치적 세력의 설득력이라면, 이 세력에 대한 내 지지가 무언가 실질적 결과를, 그것도 그냥 내가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효능감에서 나온다. 그런 효능감을 실제 결과로서든, 조만간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이미지로서든 제공해주지 못하면 사람들이 이쪽을 지지해줄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설득력은 적당한 가까움과 적당한 거리감에서 나온다. 적당한 가까움이란 이들이 내 이해관계를 반영해줄 것이라는 친밀감이다. 반면 적당한 거리감이란, 이들이 나보다는 더 강력한 이들이라는 신뢰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도 부족해서는 안 되고, 한 쪽으로 쏠려도 안 된다. 우리와 연관이 없다고 보여도 곤란하고, 우리와 어차피 별다를 바도 없다고 여겨져도 끝이다. 실제로 큰일을 해낼 만큼 우리보다 유능한데, 우리와 가깝게 함께할 세력이라는 식으로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능력이 시쳇말로 기득권 확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진보진영이 이미 우리는 기득권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가 딱히 믿어줄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중요한 접근법은 전망보다 현실을 알리는 것이다. 더 작은 규모에서라도 괜찮다. 이미 기득권을 잡고 성공한 사례들을 잘 발굴해서 최대한 실감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례
☹ “저희 당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오로지 순수한 진정성으로 기반을 다질 것입니다. 그리고 10년 안에 집권여당이 되겠습니다.”
☺ “저희 당은 ○○시 △△구의 단체장을 배출했습니다. 그 동네는 임금수준이나 복지설비가 잘 되어있죠.”
두번째 원칙: 판을 주도하기
이쪽이 꺼내놓는 한 가지 이야기만 세상에 떠돌아다닌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다양한 소재, 다양한 시각의 담론들이 서로 사람들의 ‘주목’과 ‘기억’ 그리고 ‘동감’을 놓고 늘 경합한다. 그 속에서 이쪽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화제가 되고, 기억에 남아 진보적 의제들이 사회적으로 토론되고, 결국 그 중 일부가 충분한 동감을 얻어 실현화되는 것이 진보진영의 목표다. 그렇다면 이슈가 경합하는 판이 어떤 곳인지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온전히 합리적 소통행위만이 오가는 하버마스적 공론장의 이상향을 현실에서 바라는 것은 무리고, 두 가지 전제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하나는 대부분의 이슈 경합에서 주목과 기억이라는 요소는 지구전으로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특종을 통해 오늘의 주목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서 자동으로 그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누가 오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가’가 주목과 기억에 있어서 훨씬 중요하다. 이 점은 게시판 댓글 싸움에서부터, 품질에 비해 과도한 조중동의 사회적 이슈 지배력에서까지 폭넓게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전제는 오래 싸울수록 필연적으로 토론이 엉망이 된다는 것이다. 합의를 강제하는 특정 사업이 물려있지 않는 한, 의견집단들은 토론 과정에서 중간에서 합의하기보다 양극화된다. 여기엔 남들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허위 합의 효과와 극단적 목소리가 주로 남는 침묵의 나선 효과 외 다양한 기제들이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그런데 그런 양극화되고 종종 과격해지는 ‘개싸움’은 그 싸움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을 판에서 밀어내는 작용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대결구도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효과적으로 진보적 의제들을 담론화시킬 수 있을까.
전략 06. 경쟁자의 논리에 맞서기보다는, 포괄하고 넘어서라
강고한 경쟁자의 논리에 맞서는 도전자의 이미지는 기반이 전무한 곳에서 처음 싹을 틔울 때에만 유용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선택’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이고, 그것은 경쟁자의 논리의 여러 부분들을 충분히 흡수하고도 그 이상의 것을 이룩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특히 한국처럼 민주주의 본연의 활발한 사상 대결을 사회악 취급하는 것이 익숙한 이들이 보수층을 자처하며 기득권을 잡고 있는 곳이라면, 계속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를 고수하기보다는 가급적 한시라도 빨리 저들의 장점은 이미 다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넘치는 우월한 선택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부수적인 효과로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장점도 인정할 줄 아는 대인의 풍모도 풍기게 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자본주의의 모습들을 상당 부분 그대로 계승할지라도, 천민성의 폭주를 제어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될 수 있는 상위 구조로서의 사회시스템을 역설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숙한 느낌의 접근법 같다고? 당연한 이야기다─변증법적 방법론의 응용이니까.
사례
☹ “자본주의를 뒤엎자, 신자유주의를 척결하자!”
☺ “자본주의의 동기부여 능력은 인정하되, 사회급여와 합리적 복지체계를 통해 더 행복하고 균형 잡힌 선진사회를 만들자.”
전략 07. 떡밥은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가용성 휴리스틱(‘어림법’이라고도 부른다)이라는 인지 기제가 있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이 나는 것일수록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하기 때문에 쉽게 생각난다고 믿는 셈이다. 이 개념은 원래 위험 평가에서 익숙한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 최근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보다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이는데, 특정 이슈에 대한 주목과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도 적용해볼만 하다. 한마디로 이슈를 계속 익숙한 것, 최근의 것으로 유지시켜야 중요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전략으로서는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아예 똑같은 이야기만 계속 반복하면 익숙해지기야 하겠지만 지겨워하면서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새로운 이야기만 하면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즉 기저에 흐르는 핵심주제를 익숙하게 유지하며, 적당한 새로움을 공급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시쳇말로, 굳건한 심지와 신선한 떡밥이다.
떡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중간에 떡밥거리가 떨어지면, 이슈는 생각보다 엄청난 속도로 망각의 영역으로 직행한다. 게다가 상대가 만약 밀리고 있다면 더욱 필사적으로 이쪽 떡밥을 꺾을 더 강력한 무언가를 터트리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큰 사건이나 펑펑 터트리면 곤란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 여러 함의를 계속 던져주고, 여러 사안들을 하나의 일관된 상위 프레임으로 묶어서 항상 같은 건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내야 한다.
사례
☹ “이번에 터진 이 사건 봐라! MB퇴진!”
☺ “이번 사안도 비정규직 문제에 얽힌 것이다. 거기엔 정권의 노동정책이 연결되어 있고, 이전에 △△사건과 ○○사건에서도 그대로 반복된 바 있다. 덤으로 그것은 그들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략 08. 설전의 진짜 타겟은 눈앞의 적들이 아니라, 구경꾼들이다.
설전으로 상대를 거꾸러뜨리겠다고 덤비는 싸움의 과정이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이쪽 역시 크거나 작게나 문제점을 노출할 가능성이 크다. 말꼬투리를 잡는 모습이든, 상대를 무시하는 모습이든, 논리적 오류든 말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 실수의 실제 크기나 파급력은 깨끗하게 무시하고 과잉 일반화하여 이쪽이 거짓말쟁이고 위선자라고 먹칠을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먹칠은 적어도 그쪽 진영의 지지자들에게는 먹혀들어갈 것이다. 그런 광경을 보면 속이 뒤집히고 헛웃음이 나오겠지만, 같은 방식을 취하고 싶다는 유혹에 지는 순간 개싸움이 된다. 즉 당사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놈들’로 상쇄되어버리고, 애초에 주장하고 싶었던 이슈는 소멸되어버린다. 원래 사람들은 남들의 실수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진영 전체 본연의 문제로 보는 경향까지 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설전에서 ‘승리’해서 상대를 감복시키는 것은, 뚫어질듯한 눈빛으로 정말로 책을 뚫어버리는 것만큼이나 환상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롭다. 그들은 논쟁에서 지더라도 설득당하지 않을 다른 장치들이 수두룩하다─정신승리, 지지집단, 편의적 망각 등. 중요한 것은 설전의 과정에서 ‘승패’ 자체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구경꾼들에게 논리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뇌리 속에 최대한 많이,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사례
☹ “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네놈이 욕설한 인증샷 남겨두었음. 이제 고소 들어가겠음.”
☺ “당신들의 주장과 달리, 이런 것들이 제 의견의 근거입니다(링크 한 묶음). 선택은 읽는 분들께 맡기겠습니다.”
전략 09. 선택지를 충분히 주되, 결국 하나로 귀결되도록 하라
사람들은 현실이야 어떻든 자신들이 주체적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 심지어 얼떨결에 멍청한 선택을 했더라도 나중에 자신만의 주체적인 이유를 찾아낸다. 인지부조화이론이든 여타 자기방어 인지과정에 관한 이론이든 결론은 비슷하다. 이것이 최고라고 몰아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그것을 단순하게 반지성주의라고 몰아붙이면 심리적 반발감까지 더해져서 더욱 역효과다. 각자로 하여금 내가 이쪽을 선택한 게 잘한 일이었다는 기억을 심어주는 것의 힘은 대단히 강력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시도 정국 당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들의 핵심 모토가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너희들이 감히”였던 점을 회상해보면 실감이 날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진보진영의 담론을 택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고는 그 선택지들이 모두 이쪽 방향으로 오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같은 벌건 국물에 두부를 넣어 순두부로 팔고 쇠고기 찢어 넣어 육개장으로 팔고 소시지 잘라 넣어 부대찌개로 파는 학교 구내식당을 생각해보라. 진보든 보수든 별반 상관없이 동참할 수 있을만한 방식으로 만든 진보의제야말로 최고의 의제 설정이다. 보수는 아이들 밥그릇 빼앗으면 체면이 구기니까 의무/무상급식 의제를 피해갈 길 없고, 진보에게는 공동체 가치에 대한 교육의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제다. 혹은 그런 정치적 지향을 생각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밥을 차별 없이 준다는 인본주의적 의제가 된다. 그렇게 의제화가 되면, 진보진영에서는 그것의 현실화에 들어갈 예산을 확보할 방법만 연구해내면 일사천리다.
사례
☹ “A가 좋습니다! 다른 건 무시하세요! B는 악입니다!”
☺ “A와 B와 C가 있습니다. 그 중 A를 선택하시면 그것으로 Z를 이룰 수 있죠. B나 C를 고르시더라도, A의 **한 부분들을 포함시켜 움직이면서 결국 함께 Z로 나아가보는 게 어떨까요.”
세번째 원칙: 확장하기
멈추지 않는 진보열차가 달려서 사회를 뒤집는 것이 아니다. 진보적 의제들이 사회적 담론이 되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전문적 영역부터 일상인들까지 넘나드는 폭넓은 참여와 자발적 논의의 확장이다. 진보담론을 만들고 유통하는 것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 즉 진보사회에 기여하게 만드는 것의 기본은 적절한 동기부여다. 보수와 달리, 진보에게는 동기부여로 권력과 돈을 약속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매우 힘들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에 다른 방식의 사회적 메리트를 구상해야 하는데, 도덕적 가치에 기반한 사회적 메리트, 역할모델, 재미 등 다양한 동기부여 전략을 늘 고민해야 한다.
전략 10.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참여를 할 만한 구실을 만들어라
이것은 담론전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에 속한 각 그룹들의 운영전략 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사적 열정 말고, 도덕적 이유 말고, 구체적으로 참여할 구실을 내걸어줘야 한다. 돈이 없다면(일반적으로 없다!) 그냥 “좋은 세상을 위해 참여해주세요” 하는 것보다는 해당 그룹에서 인증해주는 명예지분에 대한 구체적 메리트를 주며 정식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것이 좋다. 하다못해 어딘가 벽에 이름을 파서 새겨주든지 말이다. 과제가 필요할 때는 일반 참여 독려보다 공모전이 바람직하다. 전문가가 그들의 전문성을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 할애할 수 있도록, 하다못해 가족이나 배우자를 납득시킬만한 건더기를 제공해줘라. 자원봉사단 말고 전문 인력은 그렇게 해야 비로소 이쪽 진영에 끌어들일 수 있고, 그들이 더욱 훌륭하고 구체적인 담론전략들을 만들고 수행해 줄 것이다.
사례
☹ “네티즌 여러분 다들 힘을 합쳐주세요”
☺ “**를 만들도록 아이디어를 공모합니다.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해당 정책에 이름을 넣어드릴 예정입니다”
전략 11. ‘멋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이란 참 인간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마련이다. 멋진 신세계에 대한 비전 자체보다, 그 비전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설득될 것인지 여부를 종종 결정하며 자신의 입장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사실 이것은 꽤 유용한 인지전략이기도 한데, 추상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보다는 저 사람의 행실을 관찰하고 학습하는 것이 훨씬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즉 논리의 내용만큼이나, 닮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역할모델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가 가정에서 자라날 때도 중요하고, 청소년이 학교에서 사회화되는 과정에서도 중요하고, 성인들이 업무방식을 취할 때도 중요하고 여하튼 다 중요하다. 진보적 가치의 담론화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닮고 싶은 역할모델로 널리 거론하곤 하는 대상이, (비록 상당수 경우 위선이라 할지라도) 스콧 니어링인 쪽이 이건희인 쪽보다 훨씬 낫다.
전략차원으로 생각하자면, 필요하다면 ‘잘산다’는 것의 잣대를 다시 정의내리기도 하면서 한국의 진보 성향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살고 있고 그 삶의 모습이 무척 ‘폼난다’는 것을 과시해야 한다. 즐겁고 재미있는 모습을 떠벌려라. 모멸적 역경 속의 근성 운동가는 비록 가치있는 역할일지라도 동경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혹은 이미 폼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역할모델들에게서 진보적 요소를 찾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훌륭해 보인다는 인과관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극소수 경우를 제외하고, 멋은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다. 우선 첫 걸음으로, 이미 진보 성향을 표방하는 이들이 서로의 진보적 멋을 공개적으로 칭찬해주면서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주의: 과도하면 사회로부터 따돌림 당할 수도 있다).
사례
☹ “가난과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청렴한 생활과 진정성 어린 모습으로 지금껏 진보 외길을...”
☺ “손석희.”
전략 12. 행동강령은 대상별로, 구체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정치가에게는 권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제안을, 전문가들에게는 전문가로서 착수할 분석을 위한 데이터와 이론들을, 홍보활동가에게는 폭넓고 깊은 여론을 조성할 수 있도록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와 캠페인 전략을, 시민 일반들에게는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활기와 재미를 갖춘 참여행위 방법론을 공급하라. 그리고 최대한 그것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 양상과 행위로 나누어 참여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모든 논설의 끝에는 “그래서 나보고 내일부터 당장 어쩌라는 말인가”에 대한 대답이 주어져야 한다.
나아가 이런 대상별 강령들이 파편화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각 대상 분류 사이를 오갈 수 있는 호환성, 활동방법과 근거가 되는 지식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 그런 것들 사이의 맥락을 손쉽게 잡아내고 재구성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생산과 재생산을 거듭하는 진보 지식정보의 생태계 구축이다(지면관계상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을 참조하시길: http://capcold.net/blog/5723). 구축이라고 하니까 거창해 보이지만 기관은 기관으로서 좀 더 복잡한 프로젝트들을 하고, 개인들은 개방과 호환, 출처표시(이 또한 자세한 이야기는 http://backtothesource.info를 참조)에 의한 연결성 같은 가치들을 조금씩 생활 속에서 실현하면 된다.
사례
☹ “MB아웃”
☺ “1.□□를 하자. 2.그 다음 △△를 하자. 3.그 동안 일반인은 ○○를, 전문가는 ◇◇를, 활동가들은 ☆☆를 하자.”
FAQ─과연 유용할까
여기서 나올법한 질문은 이런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것. 진보진영의 입장에서 제안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보수를 자칭하는 수구기득권 세력권들은 이 12가지 담론전략과 매우 비슷한 내용을 아주 뭐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하고 무위자연으로 체화하고 있다. 덕분에 자기 이해관계에 사실은 배치되더라도 잘만 그들을 지지하는 ‘서민’들이 부지기수다. 진보 진영도 그만 좀 밀릴 필요가 있겠다 싶다.
한국에서 진보진영이 정당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이미지를 구축해냈던 성공사례를 회상해보자. 그러니까, 2004년 총선에서 (진보신당과의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이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표어를 앞세워 적지 않은 지지율을 확보한 근원을 다시 파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진보진영이 겪는 고질적인 기존 이미지의 문제점은, 사람들에게 “내”가 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나”한테 뭐 떨어지는 게 도대체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함께 잘 사는 세상 어쩌고 다 좋은데, 내가 잘 살게 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당시 표어에 담긴 이미지가 자극하는 것은 살림이라는 지극히 개인화된 틀이며, 살림이 나아졌으면 한다는 욕망을 그대로 인정해준다. 나아가 그것은 혁명을 부르짖지도 않고, 당신은 그럭저럭 살림을 잘 꾸려보려고 노력해왔다고 넌지시 인정한다. 그 결과 실제 주산알을 튕겨주지 않고도 진보가 거창한 사회적 무언가가 아니라, 당신에게 주는 이득을 강조하는 모양새가 형성되었다. 다만 당시 선거 후에 그런 수준의 성공적인 담론전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진보정당들에게 있어서는 그 성공을 복기하며, “나에게 이득을 주는 진보”라는 명쾌한 브랜드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집요한 작업이 필요하다.
슬쩍 사이사이에 키워드들을 던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여기에서 제시한 내용은 대단한 천재적 직관 같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설득커뮤니케이션, 정치커뮤니케이션 교재에 등장할 법한 수많은 현대 학자들과 그들이 구상한 개념들을 뒤죽박죽 재조합한 것에 가깝다. 더 깊숙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레이코프나 선스틴 같은 주목받는 현대정치 전문가들의 정치학 책,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심리학개론, PR론 서적 아무거나 펼쳐보시길 바란다.
그런데 정작 이 가이드 자체가 여기서 이야기한 전략들을 제대로 활용해 담아내고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 가이드는 아마도 진보성향 전체 가운데에서도 마케팅 요소를 가득 담은 소통전략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한 이들 정도에게나 호소력이 있을지 모른다. 더 많은 활동가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는 이 내용들을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할 것이며, 더 많은 일반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화법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 필요한 이야기 자체를 펼쳐놓는 정도까지는 해봤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근면성실순수과격한 분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간지러울 수도 있다. 즉, 진정한 진보를 이루려면 바닥까지 망가졌다가 근본적으로 판을 뒤집어야 하는데 이런 식의 타협적, 점진적 접근은 오히려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보는 분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필자는 인간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쪽이라서, 꽤 바닥에 가까운 상태까지 망가져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거기에 적응할 수 있다고 본다(인권 따위는 조직적으로 쌈싸먹은 한국식 징병제 사병생활에 대다수 사람들이 적응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2보 진전을 할 희망을 품고 1보 후퇴를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성에 차지 않아도 반보씩 계속 앞으로 내딛을 것인지 각자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이런 얄팍한 여론질 말고, 진심과 진정성으로 감동시키는 것이 진정한 진보의 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진심’이란 산지에서 막 배송되어 온 자연산 광어 같은 것이다. 접하는 사람들에게 양분을 주고, 맛과 멋이 있으며, 감동을 준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요리법’과 제대로 결합하지 못하면 단순한 물고기 시체에 불과하다.─즉, ‘소통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담론전략은 어디까지나 담론의 형성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담론은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 나아가기 위한 기본 재료다. 즉 실제로 그 재료를 문화에 흡수하고 제도로서 구축해내야 비로소 사회는 진보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실천에 큰 도움이 되는 자리에 진보성향의 인사들을 포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목표지점을 잊고 말의 성찬 자체에 머무는 것은 무의미하다. 반드시 기억하자. “백시위불여일선거, 백선거불여일제도”다.
첫번째 원칙: 대화상대를 인정하기
전략 1. 사람들은 자신이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믿기를 원한다.
전략 2. 그들의 욕망을 내 방향성에 이어붙여라.
전략 3. 이상향은 제시하되 혁명을 부르짖지 말아야 한다.
전략 4. 논의의 핵심을 개인화시켜야 한다.
전략 5. 당신들과 가까운데, 기득권에서 멀지 않음을 과시하라.
두번째 원칙: 판을 주도하기
전략 6. 경쟁자의 논리에 맞서기보다는, 포괄하고 넘어서라.
전략 7. 떡밥은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전략 8. 설전의 진짜 타겟은 눈앞의 적들이 아니라, 구경꾼들이다.
전략 9. 선택지를 충분히 주되, 결국 하나로 귀결되도록 하라.
세번째 원칙: 확장하기
전략 10.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참여를 할 만한 구실을 만들어라.
전략 11. ‘멋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전략 12. 행동강령은 대상별로, 구체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