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3주 그리고 2일" ㅡ

두 여성 위에 지워진 낙태의 무게를 보여주다


정지원 | 졸업생 | netti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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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산의 한 여성이 예전 직장에서 금품을 훔친 일이 있었다. 이 여성은 임신한 사실을 알고나서 낙태를 하기 위해 절도를 저질렀다고 한다. 현재 낙태에 대한 논쟁은 한풀 꺾였지만 낙태 단속 강화로 인해 여성들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낙태 단속 논쟁의 발단은 올해 2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혐의가 포착된 3개 병원을 고발한 것이었다. 경찰들이 그 병원들에 수사를 돌입하면서 낙태 단속이 매우 강화되었다. 이와 함께 낙태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하지만 낙태에 대한 수많은 논쟁 속에서, 정작 낙태를 하게 되는 여성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낙태를 경험하는지는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크리스티앙 문쥬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라는 영화는 우리 사회의 낙태 논쟁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짚어주고 있다. 낙태가 금지된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 살아가는 두 여성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끔찍할 정도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들이 겪는 이야기가 결코 남의 나라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낙태, ‘국력’을 위해 여성의 몸 통제하기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1987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하의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피임과 낙태, 이혼, 가족계획을 모두 금지했다. 피임도구의 수입과 판매가 금지되었고, 낙태를 하려면 징역형을 각오해야 했다. 인구수를 늘리려는 정책 이면엔  국력을 신장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탁아소, 유치원, 유아용품 등 아이를 키우기 위한 제도와 시설은 미비했다. 

영화를 보며 낙태 단속이 강화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떠오른다. 이명박 정부의 낙태 단속 강화 정책은 차우셰스쿠의 피임?낙태 금지정책의 의도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인구수를 늘려 국력을 신장키는 이유든,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든 여성의 몸을 인구정책의 수단으로 통제하려고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60년대, 70년대까지만 해도 낙태를 사실상 묵인해왔던 남한 정부였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생명존중(낙태 방지)분위기 조성”을 내세우며, 갑자기 낙태단속을 강화했다. 그러니 국력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낙태를 금지했던 차우셰스쿠 독재와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이명박 정권의 낙태 단속 강화가 겹쳐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낙태의 대가

카메라는 루마니아에서 불법 낙태시술을 받는 가비타와 그녀를 도와주는 룸메이트 오틸리아의 하루를 쫓는다. 가비타와 오틸리아는 친구에게 낙태 시술사 베베를 소개받아 호텔방에서 낙태시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베베는 부족한 낙태 시술비를 이유로 낙태시술을 거부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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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이 요구한 호텔에 방을 잡지 않았냐”, “혼자 오기로 하고 왜 친구를 데리고 왔냐”, “어째서 임신한 개월 수를 2개월이라고 속였느냐”며 낙태 시술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런 베베 앞에서 오틸리아와 가비타는 무력해진다. “낙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다른 호텔방을 잡아야 했고, 임신 개월 수를 속여서라도 시술을 받아야만 했다”는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신 3개월 이상이어도 낙태를 해준다는 이야기 때문에 베베를 선택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베는 가비타가 4개월째라 낙태시술을 안 해주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즐긴건 너(가비타)니까 네가 책임지라”며 자기 말대로 할 때까지 낙태시술을 안하겠다는 베베 앞에서 가비타와 오틸리아는 죄인이 된다. 베베는 부족한 수술비 대신 오틸리아와 가비타에게 성관계를 요구한다. 오틸리아와 가비타는 베베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성관계를 통해 즐긴 건 너’라고 임신한 여성을 비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적으로 오틸리아와 가비타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음지로 가는 낙태, 음지로 가는 여성의 권리

영화는 낙태가 불법화되면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가 어떻게 침해될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비타는 호텔방 침대에서 비닐봉투 하나를 깔고 그 위에 누워 낙태 시술을 받는다. 낙태가 금지되면서 병원이 아닌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낙태 시술사는 낙태를 유도하는 물질을 자궁에 넣어놓고, 곧 호텔방을 떠난다. 태아를 꺼내는 것도, 그 이후의 뒤처리도 모두 오틸리아와 가비타의 몫으로 남겨진다.

루마니아에서는 낙태가 금지된 기간 동안 약 50만 명의 여성들이 불법 낙태시술로 인해 사망했다. 그리고 지금도 안전하지 않은 낙태 시술로 매년 7만여명의 여성이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낙태 단속이 강화되면서 산부인과에서 낙태시술을 거부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없는 현재 조건하에서 낙태시술의 거부는 출산이 아니라 낙태의 음성화로 이어질 뿐이다. 정부의 낙태 단속이 심해진 이후에 의사들이 위험비용을 요구하면서 낙태비용은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600만원까지 폭등했다. 이러한 여파 속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낙태 시술을 하는 중국 병원도 등장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낙태하기 어려워 중국으로 ‘원정낙태’를 가는 것이다. 낙태의 불법화와 낙태 단속 강화는 낙태 자체의 음성화를 불러왔다. 이는 낙태시술을 받는 여성들의 건강에도 위협이 될 것이다.

가비타의 애인이 나오지 않는 이유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비타의 애인(물론 애인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낙태를 감행해야 하는 가비타와 그의 친구만 있을 뿐이다. 가비타의 애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현실을 반영해 주는 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낙태’의 문제는 여성이 낙태 하는 그 순간에만 집중되어 있다. 낙태를 둘러싼 책임과 비난 역시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남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의 가비타처럼 말이다. 

가비타의 낙태를 도와주는 것은 가비타의 애인이 아니라 룸메이트인 오틸리아였다. 영화를 보면서 오틸리아는 왜 가비타의 낙태를 두손 두발 다 걷고 도와줄까 궁금했었다. 오틸리아가 자신의 애인에게 말하는 그 이유란 너무 단순한 것이었다. “내가 임신하게 되었을 때 도와줄 사람은 가비타니까.”

위의 말은 성관계와 그에 따른 임신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결국 누구인지 잘 보여준다. 낙태의 문제는 낙태하는 그 순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낙태를 이전엔 임신을 해야 하며, 임신은 혼자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낙태를 둘러싼 논쟁은 오로지 낙태하는 그 순간 여성이 낙태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오히려 정말 낙태를 줄이고 싶다면, 낳기 어려운 상황에서 출산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피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현실의 이성애자들의 성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남성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당수의 경우 여성이 적극적으로 피임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성관계와 성적 생활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야말로 여성을 예기치 못한 임신과 낙태라는 막다른길로 몰아넣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오틸리아와 애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틸리아의 애인은 오틸리아가 질외사정(물론 이것도 피임법은 아니지만)을 하라고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틸리아의 말을 무시한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오틸리아가 임신을 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오틸리아가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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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틸리아는 애인에게 자신이 임신하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애인은 “넌 임신 안했잖아.”라고 말하며 대답을 회피한다. 오틸리아는 매번 성관계를 할 때마다 불안감을 느끼지만 그의 애인에게 임신은 남 얘기일 뿐이다. 그런 애인이 “내가 다 책임질게”라 말을 한들, 그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런 까닭에 오틸리아는 자신이 낙태를 할 경우에 애인보다는 가비타가 도움을 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베베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가비타를 도와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낙태로 떠밀리다

출산하는 순간 여성이 개인적 삶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역시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오틸리아가 계속 “임신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오틸리아의 애인은 “결혼해야지”라고 답한다. 하지만 오틸리아에게 결혼이란 기존의 자신의 생활을 다 버리고 남편과 시댁 입맛에 맞는 감자요리 준비로 자신의 삶을 채우는 것을 의미했다. 결혼은 미혼모로서의 낙인으로부터는 벗어나게 해줄지는 모르나 오틸리아 자신의 삶의 계획은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이다. 성관계를 맺을 때에는 최소한의 피임에 대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결혼으로 책임지면 되지 않냐고 하는 애인은 오틸리아에게 얼마나 무책임해보였을 것인가. 출산으로 인해 개인에게 주어지는 부담은 단순히 결혼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오틸리아와 같은 미혼 여성에게만 출산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기혼 여성도 마찬가지다. 아이 양육이 1차적으로 개별 가정에, 특히 여성에게 맡겨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 출산에는 경제적 비용 뿐 아니라 여성이 개인적 삶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도 따르게 마련이다. 많은 여성들에게 출산휴직은 휴직이 아니라 퇴직으로 존재하기 십상인 상황,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유독 육아에 따른 자기 생활의 희생이 떠맡겨지는 상황, 출산함과 동시에 20년간의 사교육비와 4-5년간의 대학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이야말로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고 차라리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 남긴 것

오틸리아는 낙태 후 나온 태아를 수건에 싸서 아파트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고 호텔로 돌아온다. 그리고 오틸리아와 가비타가 호텔식당에서 피로연 후 남은 내장요리를 먹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가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답답함이 떠나질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1987년도의 루마니아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단속이 강화되기 전에도 남한 사회에서 낙태는 여성의 권리로서 이야기되지 못했다. 오히려 ‘순결하지 못한’ 여성(왜 순결할 것이 요구되는지도 의문스럽긴 하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처럼 여겨져 왔을 뿐이다. 특히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국가권력을 통한 단속 강화는 한번도 제대로 인정된 적 없었던 여성의 낙태권을 더더욱 축소시키고 있다.

낙태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낙태한 여성의 무책임함을 비난한다. 즐겨놓고 왜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느냐며 이기적인 여성으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정말 이기적인 것은 누구인지 고민해보자. 아이를 낳아서 키울 조건 따위는 만들어주지 않는 사회,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말로 여성을 비난하기는 바쁘지만 정작 여성의 100분의 1만큼도 피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일부 남성들이야말로 이기적인 것 아닐까?

오틸리아는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서 가비타에게 말한다.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고. 그리고 이들은 악몽과도 같은 하루를 가슴 속에 묻는다. 오틸리아와 가비타의 이야기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에서 아이와 낙태에 대한 모든 고민을 홀로 떠안아야 했던, 그리고 그 경험을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했던 우리 주위의 혹은 우리 자신의 경험을 드러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의 마지막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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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무시긴

2010.08.14 00:45:44
*.138.65.47

무더운 여름에 양질의 지식을 출간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실 듯 합니다.

중앙광장에 빛나고 있던 한 무리 중에서 하나 낚아다가 맛있게 봤습니다.

12가지 담론전략과 과학을 여행하는 인문학도 편이 특히 즐거웠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즐거웠다고 한 다른 두 편의 기사 대신 이 글에 댓 글을 다는 것은 결국 이 기사에 대해서 앞서 와 다른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 속에서 미혼모 및 임신 여성들은 사회가 명목으로나마 갖춰놓은 한계선을 이미 많이 벗어나있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기사는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조명하며 영화를 통해 이를 매우 쉽고 명확한 이미지로 전달하는데 탁월합니다. 그러나 진정 안타까운 것은 바로 그 탁월함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여성들이 출산 후 육아를 하기에 너무도 가혹하고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서 낙태를 택하고 있다는 논리의 근거는 결국 전형적인 강자-약자 구도 속 약자의 입장부각을 통한 이해의 확보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낙태가 금지됨으로써 여성들이 더욱 더 위험한 상황에 몰릴 뿐 아니라 책임조차 모두 짊어지게 된다는 점을 역설하며 약자로서 여성의 입장을 매우 강하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제 의문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여성이 약자입니까?

여성이 약자라면 약자로서 여성은 어느 정도나 약자입니까?

낙태문제는 사회>남성>여성의 계층적 위계질서 속에서 최 하부의 여성에게 모든 짐을 강요하고 있다는 저 도식은 올바른 도식입니까?

 

글을 읽는 동안 저는 저 도식에서 중요한 한가지가 빠져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 빠진 최 하부구조를 이 글에선 단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말로비난하기 바쁘지만' 이라는 편리한 한 줄로 뭉뚱그려 조롱하셨군요.

 

낙태 권을 인정하지 않고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사회구조가 생명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것에 대한 필진의 분노라 할지라도 이 글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글의 어디에도 태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성만이 존재할 뿐, 그리고 그를 억압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나쁜''들만 있을 뿐.

 

약자로서 여성을 정의하셨지요. 저는 태아 또한 약자로서 규정합니다. 심지어 자기의견을 말할 수조차 없고 오직 출산이냐 낙태냐를 강요당하는 객체로서 태아의 지위는 분명 여성보다는 하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아를 여성의 권리 속에서 다루어질수있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결국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논리의 오마주일 따름입니다

냉정히 비약하자면 정규직도 먹고 살기 어려우니 비정규직에 대해선 좀 침묵해도 괜찮고

비정규직도 생활이 퍽퍽하니 외국인 노동자들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고 라는 논리입니다.

 

낙태문제에 있어 여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태아의 기본적 인권입니다. 여성을 약자로 규정하여 사람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내고자 한다면 태아를 지금처럼 대상으로 치부해버릴 때 스스로 설득력을 잃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이는 끝에서 두 번째 단락에서 누가 더 이기적인지 따져보자는 논리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피장파장의 오류 라고 하는 용어는 차치하더라도 남이 더 많은 잘못을 하니 그 피해자로서 수단획득에 있어 정당성이 자연 부여된다고 말씀하시려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결국 추구해야 할 것은 상생입니다. 한쪽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논리는 투쟁과 전쟁의 논리 및 공멸의 논리입니다. 여성에게 강요된 억압적 구조에 저항해야지 생명을 선택할 권리부터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러분이 염원하시는 여성해방에 가는 길을 더욱 요원하게 하리라 봅니다.

 

무더운 날씨에 힘들여 고생하셨을 필진 여러분께 엉망인 이 댓 글이나마 올려드립니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던 모 연예인의 말로나마 저를 잠시 옹호해보며 항상 건필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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