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대동제, 그리고 모자이크 축제

여름 조회 수 1678 추천 수 0 2010.06.22 16:54:47

대동제, 그리고 모자이크 축제

석탑 대동제에 대한 성찰과 모자이크 축제의 문제의식


김HP, 만조 | 모자이크축제기획단

축제의 시작 - 대동제를 돌아보다

고려대학교의 대표적 행사 중 하나인 석탑 대동제의 시작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대동제 이전까지의 고려대 축제(석탑 축전, 입실렌티)는 당시 일반적인 대학축제와 마찬가지로 쌍쌍파티, 메이퀸 선발, 연예인 초청 공연의 모양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83년 당시 고대 농악대 대장이자, 동아리연합회 회장이었던 우수홍(81학번)을 중심으로 한 고려대 선배들은 밀려들어오는 외래문화와 상업자본의 침탈에 대항하고, 대학생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크게(大) 하나되는(同) 축제의 장을 만들고자 제 1회 대동놀이를 개최한다. 그 결과 석탑 축전은 대동놀이와 함께 열린 83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고 입실렌티 역시 한동안 자취를 감춘다. 

고려대학교가 대학축제문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 내건 ‘대동제’라는 이름은 대학가에 널리 퍼져 지금까지도 대학축제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축제의 계절인 5월이면 전국 웬만한 대학마다 ‘대동’의 시기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학생들은 그 ‘대동’하는 즐거움을 한껏 느끼고자 밤을 지새운다. 대동제의 창시자 격인 우리 고려대도 물론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진정 대동하고 있을까? 지금의 대동제는, 초창기 대동제의 이념과 가치를 충분히 물려받아 구현하고 있을까?

연예인 앞에 하나되고, 기업 행사차량의 공짜 음료에 열광하는, 그러다 마침내 천편일률의 주점에 모여앉아 “위하고!”를 외치며 끝맺는 대동제에는 분명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다. 빠져있는 그 무엇에 대한 생각은 학우마다 다를 것이고, 누구의 답도 오답일 리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근래의 대동제가 보여주는 양상이 그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10 모자이크 축제>를 준비하며 고민한, 조금 더 ‘정답에 가까운’ 대학축제의 상은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학생이 주체인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 둘째, 축제를 전담하는 독립기구에 의해 준비되는 축제여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 학생이 주체인 축제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챔피언”이라고 주장하는 인기가요도 있지만, 즐기기만 한다고 해서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어지는 즐거움에 예속된 수동적 소비자, 무력한 수용자로 주저앉을 뿐이다. 진정한 주체로서, 주인공으로서 우뚝 서기 위해서는, 학우 하나하나가 축제라는 커다란 작품을 완성시킬 붓이 되고 물감이 될 수 있어야한다. 이미 다 짜인 판 안에서 노니는 놀이동산의 관람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꿈과 열정, 개성과 이상을 바탕으로 우리의 축제를 완성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축제에 참여하려는 학우들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획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원하는 것, 꿈꾸던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시면 됩니다.”

물어봐달라. 민주광장/신법앞 부스행사의 주체는 누구였는가? 70여동의 부스를 재치와 열정으로 가득 채운, 60여 부스팀 학우들이다. ‘고대에서 쌈났다’ 택견대회의 기획과 준비는 누가 했는가? 택견 한울이라는 중앙동아리원들이다. 성황리에 끝마쳤던 ‘영철버거 빨리먹기 대회’는? 동아리 그림마당이 직접 기획하고 참가원을 모집하였으며 진행까지 담당했다. 인기를 끌었던 김어준 강연회는 법대 학생회의 아이디어였으며, ‘학복위 안암가요제’는 지난 3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학생복지위원회의 작품이었다. 고대농악대에서 주도적으로 준비한 영산줄다리기의 초기기획단계를 제외하고는, 모자이크축제기획단이 일방적으로 제시하거나 밀어붙인, 학우들에게 ‘짠’하고 공개한 비밀 아이템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혹자는, 그렇다면 모자이크기획단은 숟가락만 얹은 게 아니었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그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 여러 학우들의 꿈과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모자이크 축제>는 결코 막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역할은 학우들이 더 멋진 꿈을 꾸게 도와주고, 그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하나된 모습으로 그 결과물들이 더욱 더 아름답게 표출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었다. 모든 길은 학우들 속에 있다. 단지 학우들에게는 자신의 개성과 이상을 표출시킬 커다란 도화지가 필요하다. 모자이크축제기획단은 그 도화지를 펼쳐주고 싶었다. 

둘째, 학생이 만들어가는 축제

대학문화가 중심을 이루는 대학축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함께 축제를 만들어 나가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모자이크 축제 기획단은 축제 당일 프로그램 진행도 중요하지만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도 축제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고 그 과정을 학우들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축제를 준비하는 단과대 과반이나 학생 자치 단위가 모자이크의 조각처럼 독립성을 가지면서 축제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풀뿌리 축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자이크 축제는 모자이크 축제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축제를 준비하는 구성원들이 묶여 있으면서도 각자의 독립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화려한 미사여구에 의해서 완성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시각적으로 표출될 때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완성되는 것이라고 본다. 함께 축제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눈에 보이지도 잘 느껴지지도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이를 눈에 보이게 나타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83년 안암대동놀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가 18년전 명맥이 끊겼던 영산줄다리기를 부활시켰다. 영산줄다리기란 짚을 엮어서 큰 줄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인데, 이번 모자이크 축제에서는 약 2주 동안 민주광장에서 줄을 꼬아 5월 19일에 줄을 당겼다. 

영산 줄다리기에서 두 가지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먼저 축전에서 대동제로 변화하던 시기의 메인프로그램을 부활시킴으로써 ‘축제의 변화’라는 상징을 차용하려 하였다. 이를 통해서 ‘축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다음으로는,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의 모습을 시각화하고 형상화하여 눈으로 그것을 확인시키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움직일 수 있는 큰 줄을 만드는 과정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그것을 연희할 수 있는 줄다리기의 특성을 통해서 말이다.

후기 - 모자이크를 돌아보며

무엇보다, 행사가 생각보다 잘 치러져서 다행이다. 사고도 없었고 학우들의 호응도 좋았다. 현재 참가단체에게 평가서를 받고 있으므로 구체적인 평가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간략하게나마, <2010 모자이크 축제>가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했던 방향성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1) 모자이크축제기획단은 형식화된 대학 축제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물론 축제는 일단 재미있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일상적이지 않은 열광을 가져다주는 한편 공동체의 강화를 위한 의식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과거의 대동제를 상징하는 의식이었던 ‘영산 줄다리기’를 소소하게나마 재현한 바탕에는 이러한 인식이 있었다. 영산 줄다리기는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이 참여하는 놀이로서 공동체를 상기시켜줄 행사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앞으로 누가 어떤 형식의 축제를 하든 꼭 계승 발전시켜 주었으면 한다.

2) 풀뿌리 자치단체가 성장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려 했다. ‘일’을 하지 않는 단체는 존속할 수 없다. 또한 어떤 단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모자이크 축제>를 함께한 단과대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 자치의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축제에 참가한 것이다. 이들은 <모자이크 축제>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3) 연예인과 주점으로 대표되는 기존 대학 축제를 지양하고, 우리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이는 주점, 연예인을 무조건 배격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에 더하여 기성 문화에 짓눌리지 않을 만한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4) <모자이크 축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또 한 가지는, 대동제에서 어떤 행사를 여느냐가 아니라 대동제가 어떤 구조로 치러지며, 무엇을 담고 있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대동제는 좀 더 민주적일 필요가 있다. 대동제는 총학생회의 고유사업이 아니며 중앙운영위원회의 위원들, 과반 학생회 역시 축제의 주체로서 자기 학우들을 위한 축제를 열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모자이크 축제>는 대동제의 대안 축제였다. 일부 변질된 대동제를 복원함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보고자 했던 것이 축제를 준비한 이들의 포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으며 아쉬움도 많이 남겼지만,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남겼다고 자축하고 싶다. 대동제로서든, 모자이크 축제로서든, 혹은 또다른 형태로서든, 모자이크축제기획단이 가졌던 문제의식과 이상은 이어져나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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