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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신데렐라가 이 세상을 사는 법


낭팰세, 손발이 오그라들고 있어

일본의 원작 만화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를 각색한 드라마가 현재 여성들에게 널리 인기를 얻고 있다. 꽃남의 핵심은 학교를 주름잡는 꽃미남 집단 F4의 외모와, 서민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부유한 그들의 사치스런 일상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구준표가 금잔디에게 생일 선물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다이아 목걸이를 준다거나 그가 전속 초호화 페리에서 열리는 파티에 금잔디를 초대할 때 시청자들은 금잔디와 함께 F4의 엄청난 부에 놀라고 감탄한다. 그리고 그러한 호화로운 면면들의 아래를 흐르는 것은 역시서민 여자가 엄청난 재벌2세와 사귀게된다는 고전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이다.


요즘 TV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꽃남이 대충 어떤 내용의 드라마인지, F4의 이름 하나 정도는 알 만하다. 그것이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신문이든 시크한 어른들의 심야 토크쇼든 전문 영화지든 간에 그것을 까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비난의 곡조는 그 드라마 자체의 막장성, 유치함부터 시작해서 다양하다. 특히 ‘별 볼일 없는 여자애가 돈 많은 남자 하나 잘 만나서 해피!’라는 내용의 판타지를 즐기는 것 자체를 상당히 골빈 여자들의 수동성의 증거라는 식의 뉘앙스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 종류의 비난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찔끔거리며 이불 속에서 지난 화를 다운받아 몰래 틀어보곤 했는데, 어쨌든 비평가들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들 하는 꽃남은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여인네들이 열심히 본방사수를 위해 TV 앞을 지키는 드라마이다.


‘기생’하기와‘쟁취’하기

사실 뭣도 없는 여자가 잘난 남자와 불꽃 튀기는 연애를 한다는 틀거리를 가진 신데렐라 로맨스들은 꽃남 이전에도 줄곧 안방극장 스테디셀러로서 존재해왔다. 이런 드라마에서 대체로 여자는 기가 좀 세고 수수하지만 범상치 않게 예쁘장한 것만 빼면 쥐뿔도 없는 ‘잡초’같은 타입이고, 그 백마 탄 운명의 상대역으로는 잘사는 집안에 약간은 반항적이지만 능력 있고 훤칠하고 자기 여자에게는(만) 따뜻한 ‘재벌2세남’이 등장한다. 그 둘은 우연한, 지극히 우연한 기회로 만나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은 연애 혹은 결혼에 성공한다! 이 시대의 신데렐라들에게는 청초함보다는 왈패가 우세할지 모르지만 (주 : 물론 커피프린스의 은찬이나 바람의 화원의 윤복같은 사내아이에게조차 남자들이 반할 수 있었던 것은 순간순간 보이는 그들의 더할 나위 없는 청초함이었다) , 그 기본적인 틀거리 자체는 전연 흔들리지 않은 채 안정적으로 꾸준히 변주되고 있다.


위와 같은 신데렐라 로맨스가 주로 ‘사회적으로 올바르다고 인정받는 여성다운 여성’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류적인 여성들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면, 분명히 주류적인 남성들의 판타지는 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여성의 신데렐라류판타지의 주인공이 주로 타인(남성)의능력에 ‘기생’해서 자신의 욕망을 이룬다고 한다면, 남성의 판타지는 주인공이 여러 난관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성장을 하고 결국 어떤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쟁취’해나가는 형태를 그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수많은 영웅설화와 RPG게임, 판타지소설계를 주름잡고 있는 남성 전사 판타지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성별에 따라 다소 다른 모습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보통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남성의 판타지/욕망과 (주 : 그 욕망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 수행 방식은 별 거부감 없이 ‘보편적인 인간의 주체적 능동적인 환상’의 표현으로 여겨져 긍정되는 반면, 여성의 주류적인 그것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환상’으로 여겨져 부정된다.


그녀의 기묘한 욕망

생각해보면 신데렐라 판타지에 나오는 여성들의 욕망 방식은, ‘보편적으로’ 가치 있고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욕망 수행 방식에 비교해봤을 때 상당히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신데렐라 판타지는 만약 어떤 여성이 아름다운 보석을 원한다면, 직접 그녀가 모험이든 뭐든 수완을 발휘하여 그것을 획득하기보다는 어떤 재력 있는 남성이 그녀에게 반해서 그것을 제공해주는 방식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쟁취하는 것이 늠름하고 이상적인 것이라고 배워왔음에도 말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신데렐라 판타지는 여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선 판타지의 세계와 긴밀하게 결부된 여성의 사회적 현실로부터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여성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경제력과 높은 지위를 꿈꾼다. 그것은 대체로 유치할 정도로 세속적이지만 그만큼 일반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꿈을품고 사회에 진출한 많은 여성들은 사회에 진입하는 초기에 자신을 향한 장벽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다양한 차원에서 느끼게 된다. 이미 남성 고위직 위주로 구성된 일터 내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편입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고, 출산과 육아 등의 문제, 그리고 대놓고 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인사 과정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승진이 어렵다는 것은 한번쯤 적극적으로 취직 준비를 해보거나 입사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바이다. 이처럼 자신의 욕망과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 맞아 들어가지 않는 불리한 상황에서, 세속적 욕망에 충만한 여성은 두 가지 극단적인 기로에 놓인다-뻔뻔하고 남자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악녀’가 되거나, 남자에게 순응적으로 굴어서 그의 자리를 빼앗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는 동시에 그에 의해서 보호받고 그의 재력을 나눌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청순가련녀’가 되거나.


여기서 우리가 여성의 선택을 바라보기 전에 주목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여성은 사회적으로 ‘여성’으로서 요구받는 부분과 보편적 ‘인간’으로서 요구받는 부분이 명확히 상충된다는점이다. 그녀들은 남성에 의해 사랑받고 보호받을 만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아름답고 다소곳하고 남성을 잘 보조해주는 것을 통해 남성의 성공의 결과를 나눠받을 것을 권고 받고, 보편적인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자신의 독립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쟁취할 것을 권고받는다. ‘악녀’를 선택할 경우 여성은 비록 한 명의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한정적인 명예와 부를 얻을 수는 있지만, 사회에서 긍정적이라고 이야기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이라고 이야기되어 오던 다소곳함, 청초함 등 여성성의 가치를 모두 부정한 고독하고 까칠한 골드미스 노처녀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청순가련녀’를 선택할 경우에 여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속적 욕망을 쟁취하지는 못하지만 능력 있는 남자를 맞아들임으로써 그것을 대리충족하고 사랑받을 만한 여성성을 지켜낼 수 있게 된다. 후자 역시 여성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여성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표류하는 그녀

금잔디는 본래 남다른 당당함과 거칠 것 없는 성실함과 생활력의 소유자이다. 자신은 남자에 의존해서 징징대는 여느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나는 너에게 보호받고 싶지 않다고 공언할 정도로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그러나 곧 F4의 가시권에 들어온 이후로는 갖가지 범법행위(?)에 시달리고 그때마다 멋진 기사들은 잔디를 구하러 등장한다. 그리고 구준표의 재력으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파티에 나타난 잔디의 모습은 아름다운 여성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혹은 왈패스러운 구석이 남아 있더라도 잔디의 ‘화려한’ 로맨스는 애초에 이상할 정도로 일편단심인 구준표의 재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재벌2세 뺨 한 대 때렸더니 그 남자 내게 넘어왔네’라는 신데렐라 판타지는,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도 끄떡없이 몬스터들을 물리치는 히어로만큼이나 비현실적이지만 그 내용이 여성 자신이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여성은 자신이 가진 현실적 조건과 사회로부터 받는 모순되는 요구에 부딪히면서 신데렐라의 한물 간 판타지를 집요하게 꿈꾼다. 그것은 부를 얻고 사랑을 얻고 싶은 세속적인 현실의 여성이 미치도록 모순적인 자기 앞의 세계에서 맺는 일종의 ‘판타지적 타협’이다. 이미 타자들에 의해 장악된 세계 안에서 그들의 집단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여성은 그 타자가 가진 권력을 ‘엿보는’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이룰 것을 상상한다.


그렇기에 여성의 욕망을 여성의 처한 현실 조건 아래에서 해석하지 않고, 단순히 그 판타지가 말하는 쟁취의 방식이 ‘기묘하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은 이미 현실의 자신을 둘러싼 모순적인 억압 속에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억압적 상황을 다시 한 번 재확인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신데렐라

남/여의 판타지는 모두 현실 조건에 기반하여 개인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그것은 대중적일수록 유치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유치한 욕망이라 할지라도, 일단 여성 개인과 그녀가 말하는 욕망은 그녀들의 처한 상황 하에서 읽히지 않고 단순히 일반적인 남성의 방식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흔히 손쉽게 비하되고 부정되고 만다. 여성이 내 손으로 부를쟁취하기 위해 남성의 경쟁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 여성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사회가 여성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너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친 여성성은 동시에 같은 이유로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이라는’ 비하를 가한다. 남성들은 가냘픈 여성을 보호해주다가도 어느 순간 위협한다. 신데렐라는 혼란스럽다.


물론 여성의 욕망 역시 유치하고 세속적이라는 점에서 완전하게 긍정적일 수만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성 판타지의 내용을 넘어 여성성 자체가 비하, 왜곡되어 해석되는 상황과, 여성이 각각 여성과 인간이라는 다른 두 가지 정체성을 요구받고 그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문제제기 해야 한다. 모순 앞에 처한 신데렐라가 이상한 나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켜내야 할 최소한의 전제는 우선 부끄럽지 않은 여성성을 안아내는 것이다.


지원 | 편집위원 | deepdeep@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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