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 로 괜 찮 겠 어 ? 2008년 4/5월호 - 재개발 기획
용산, 그곳 이전의 기억부터 시작하자

불이 나기도 전에 이미 물대포가 등장한 화재현장이 있을까? 용산 참사가 일어나기 전, 그 곳은 용역들이 철거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뿌리고 있던 점거 농성 현장이었다. 어쩌면 다른 철거 현장처럼 며칠 혹은 몇 년으로 길어질 수 있는 투쟁이 시작된 곳이었다. 그곳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현장’이 된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용산, 그곳 이전의 기억부터 시작해야 한다.


1월 19일, 철거민들은 용산 한강로 2가의 낡은 4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상에는 그 철거민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철거용역들이 어슬렁거렸다. 용역들은 폐타이어를 태우며 검은 연기를 피워 올렸고 철거민들은 매캐한 연기 속 호흡곤란에 시달리며 맞선답시고 아래로 골프공을 던졌다. 덩치 큰 장정들로 이루어진 용역들이 벽을 망치로 두드리며 위협하는 대치상황은 그렇게 밤새도록 이어졌다. 어느덧 새벽이 되고, 도로 위로 첫차가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가슴을 졸이며 대치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철거민들은 ‘오늘도 이렇게 넘기는구나.’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즈음 경찰특공대가 현장에 투입되면서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농성은 단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참사로 이어졌다.


참사 이후 철거민들의 투쟁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뉴스에는 참사현장에서 발견된 ‘시너, 화염병, 새총’ 등이 철거민들의 ‘폭력성’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비춰졌다. 사람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무식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쓰냐며 철거민들을 비난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철거민들이 그러한 무기를 썼던 것을 강조하며 자신들은 방패와 곤봉 등 기본적인 자기방어 무기만 장착했다고 항변했다. ‘자기방어’ 무기가 철거민들에게 중상을 입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일은 이와 별개처럼 다루어졌다. 폭력성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철거민들이 각종 무기로 무장한 용역들과 일단 맞서야 했던 상황은 조명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용역업체는 20여개 안팎에 이르고 이들 중 자본금이 10억 원이상인 업체는 10여개 정도이다. 지금도 철거현장 곳곳에서 용역들은 공권력의 방관 아래 공갈, 협박, 상해 등 불법행위를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다. 이들이 동원하는무기는 화염병, 새총, 개조된 포크레인, 최루가스, 물대포 등으로 철거민들이 철거용역에게 대항하는 방법도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람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집을 쓸어버리고, 마을의 길을 벽으로 막아버리고, 알몸으로 철거민들을 위협한 뒤 그 대가로 받는 돈은 공사 규모와 기간에 따라 수백억 원이 넘기도 한다.


용역업체가 기업수준이 되고 이들의 수익이 수백억 원 규모까지 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재개발로부터 나오는 이윤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의 ‘뉴타운’과 같은 규모의 재개발은 1960년대 서울시의 철거이주 정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팽창하는 도시와 늘어나는 인구에 대비한 정책의 소홀로 인해 주택의 양적 부족과 질적 저하가 나타났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도심 공간을 정비해야 하는서울시와 그를 통해 이득을 챙기려는 부동산 자본의 이해가 맞물렸고, 서울시가 철거민들을 밀어내면 부동산 자본이 땅과 건물을 사들였다. 집단철거로 국공유지에 국가재정을 출혈하며 철거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건설자본에 사업을 위탁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낡은 판자촌 동네가 밀려나고 깨끗하고 살기 편해진 동네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산업화로 늘어난 중산층 이상의 화이트칼라였다. 철거민들에게 주어지는 보상비는 새로 세워지는 아파트의 분양권이나 근처의 다른 주택을 구하기에는 항상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이미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곳은 부동산 투기로 인해 주거비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싼 땅과 건물을 비싸게 팔아넘기는 과정을 통해 건설회사와 부동산 자본은 배를 불려나갔고 서울시는 효과적으로‘낙후된’마을을 재개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누가 될지는 개발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만큼이나 뻔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각 당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나라당은 농성을 주도한 배후로 전국철거민연합을 지목하며 이들이 건설회사와의 로비로 받는 돈이 수억 원에 이르며 회비가 오백만 원에 달한다고 고발(?)했다. 하지만 철거민들이 받는 보상비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고발이 얼마나 근거 없는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철거민들은 세입자나 불법가건물 거주자들이다. 서울시에서 으레 떠올리는 집세와 달리 철거촌의 세입자들은 적게는 몇백만 원에서 많아도 이천만 원정도의 전세금이나 저렴한 월세를 내고 살아갔던 사람들이다. 때문에 이들이 오백만 원에 달하는 회비를 낼 수있을 가능성도 거의 없을뿐더러 연대 투쟁을 통해 건설사와 집주인으로 이루어지는 조합으로부터 보상비를 얻더라도 수억 원은커녕 시 외곽에 있는 임시수용단지의 입주권이나 주변 시세에 맞는 전세금 정도를 받을 뿐이다. 그나마 그렇게 투쟁을 통해 보상을 받는 경우도 열번에 한 번 꼴도 되지 않는다. 투쟁을 택한 철거민들은 보상을 해주었다는 전례를 남기지 않으려는 건설사와 조합에 대항하여 ‘주거권’을 확보하려는 이들이다. 심지어 어떤 곳은 마을이 헐린 뒤 지어진 아파트가 드리우는 그늘 아래에서 5년 넘게 천막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애초에 세입자들이 재개발 보상비로 얻는 것은 법적으로 소유권을 가진 이들의 그것보다 적다. 이마저도 최근들어 생긴 보상비였고 오랜 시간동안 세입자들은 조합과 건설회사가 고용한 철거용역들에게 시달리면서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집이나 가게에서 쫓기어 나야 했다. 게다가 보통의 세입자들은 생계가 급한 사람들이 많기때문에 마을 단위로 투쟁을 하려 해도 여의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땅값이 쌀 때 다른 곳으로 이사해버리거나 주어진 보상비만 받고 말없이 떠난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구 혹은 두 가구만이 남아서 깡패에 가까운 철거용역들과 거대 건설사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설사 투쟁을 한다고 마음을 먹어도 쉽사리 전례를 남기지 않으려 보상비의 갑절에 달하는 용역비를 쓰는 건설사와 조합 때문에 그것이 언제 끝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 철거민들이 진행하고 있는 주거권 운동은 콘크리트 건물의 ‘집’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 은 많은 것을 포함한다. 직장, 학교, 이웃과의 관계 문제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생존권’이 주거권 운동에 달려있다. 자영업이나 일용직과 같은 불안정한 직업군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적은 전세금과 월세로 살아가기 때문에 철거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들은 철거민이 되었을 때 장사 문제나 고용 기회의 접근 문제로 쉽사리 그곳을 포기할 수 없다. 정말 그곳에 살아야 하고 쫓겨나도 오갈 데 없는 철거민들이 받고 있는 이 압박이야말로 재력이 권력이 된 현실의 모순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이들이 아무런 대책과 보상 없이 ‘삶’자체를 위협받으며 밀려나는 것은 모순의 심화를 의미한다. 철거민의 저항에 힘을 보태는 일은 그래서 필요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분명 망루에서 탈출하였던 두 사람이 피부조직이 불에 그슬려 손상된 바람에 사망요인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시신은 유족들의 동의 없이 바로 부검에 들어갔다. 유족들은 시신의 상태와 달리 유품이었던 지갑은 속의 지폐를 셀수 있을 정도로 멀쩡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지갑이 다른 유품들과 함께 다시 유족들에게 돌아왔을때는 불에 그슬려 있었다. 사건 당시 무전기가 꺼져있었다는 이유로 김석기 경찰청장은 사건에 대한 아무런 법적, 형사적 책임 없이‘도의적’책임만을 진 채 직위에서 자진사퇴했다. 현장에 투입되었던 시위전담반의 본부장은 카메라에 잡힌 특공대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이렇게 의문투성이를 남겨 놓은 채로 검찰은 수사를 종료시켜 버렸지만 순천향병원에는 용산 참사 합동 분향소가 아직도 차려져 있다. 그들의 영혼을 편안히 보내기 위해서는 용산, 그곳 이전의 기억을 밝혀야 한다. 거기에는 800만의 자영업자와 2,500만의 세입자의 삶이 언제든지 재개발로 인해 위협받을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 기억을 외면하는 이상, 사건의 재발을 막을 궁극적인 방법은 없다.

은나|편집위원|jangeunna@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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