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학기부터 학생회비 분리납부가 시행되었습니다. 자율납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율이 진정한 자율인지는 알 수 없기에 분리납부라는, 오로지 형식을 설명하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5.2 이건희 사건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인촌기념관에 있었던 약 3시간의 소동이“5.2 사건”혹은“이건희 사태”라고 쉽게 불려질 정도면 그 일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만 합니다. 평화고대라는 단체가 등장하고, 곧 총학생회 탄핵 투표 직전까지 갔습니다. 고려대 곳곳에 대자보가 붙여지고, 찢어졌습니다. 학교는 부총장 이하 처장단 사퇴라는 방식으로 삼성에 사과했습니다. 언론에서는 그 일련의 일들을 쉽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행동은 폭력이 되었습니다.
대학사회에서의 소통이 미숙하다는 것, 혹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지난 한 학기였습니다. 논쟁이라는 소통의 한 방식은 쉽사리‘우리’라는 이름 아래 묵살되고, 논쟁에 참여할 자리 자체가 박탈당했습니다. 운동을 기준으로 한 조야한 분류는 적과 아군, 우리와 그들을 나눔과 동시에, 무엇을 위하는지에 대한 질문 자체를 기각했습니다.
그래도 시도합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은 있을 테고, 누구든지 해야 할 말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자율납부든, 분리납부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 소통, 토론은 끝나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남아있습니다. 고대문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학생회비의 납부율이 71%다, 75% 정도다 라는 말이 들립니다. 그러나 고대문화는 그 말들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납부율 몇 프로가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것에 얽매여서 고대문화가 해야 할 말을 애써 삼킬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재작년 고대문화 수습위원 지원서 한 구석에 써있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비판 없는 대학을 테러하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지금은 9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