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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스쳐가는 사람의 이야기

조회 수 2178 추천 수 0 2007.04.10 02: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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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사람의 이야기


글을 쓰기 전에 우스운 고민을 해본다. ‘고연전’이라고 써야할까, ‘연고전’이라고 써야할까.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 행사의 이름 따위가 고려대와 연세대에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물론 장난이지만-논쟁의 거리가 되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연고전’이 익숙한 만큼 이 글에서는 연고전이라는 이름을 쓰려고 한다.

연고전을 안 것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일 것이다. 잠실에서 빨강, 파랑의 유니폼을 입고 깃발을 들고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대학생들을 보면서‘아, 대학생은 저렇게 노는구나(놀아도 되는구나)’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연고전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나이를 조금 먹고 수능 공부를 하는 고등학생에게 연고전은 그야말로‘꿈’이었다. 모의고사 시험지를 앞에 두고 대학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머릿속 가득 안고 있는 고3에게 학교(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연고전이 벌어지는 잠실에 있었다) 밖을 소란스럽게 하는 대학생들의 놀이는 하나의 해방구이며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빨간색,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각 학교의 1학기 수시에 합격한 친구들의 모습은 초췌한 수험생들을 쓰러지게 만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뭐 저리 시끄럽고 지저분하게 놀까’라는 그야말로 순간적인 감상 이외의 별 의미를 주지 못하는 행사로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등하교 길을 번거롭게 만드는 아주 귀찮은 행사인 것이다) 같이 수능 공부를 하고 이제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노라면 튀어나오는 적청의 대립-물론 장난이라지만 이런 장난을 왜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게 타교생의 심정이다-과 에프엠(?)을 요구하는 목소리 등등…….

이러니저러니 연고전에 대한 기억을 적었지만 연고대가 아닌 대학에 다니고 있는 나에게 연고전은 사실 별 상관없는 일이다. 각 대학의 축제는 각 대학의 구성원들이 꾸려나가는 것이고 무엇을 하든 그들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연고전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대학에 다니는 학생일 뿐이다. 그러나 연고전이 정말 연대생, 고대생의 축제로서의 의미만을 갖고 있을까. 누구는‘그들만의 축제’라며 연고전을 비판하지만 차라리 진정 당신들의 축제였다면 타교생이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이유가 없다.

정기 연고전 때면 대학의 캠퍼스를 넘어 잠실과 신촌, 안암 거리를 몰려다니며 응원가를 부르고 축제를 즐기는 것은 지역주민 또는 상인들에게 분명 피해를 주는 일이다. 수능 점수에 따라 줄맞춰 대학을 가는 한국 사회에서 학벌 서열의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는 두 대학이 벌이는 축제판은 권력 과시의 장이 된다. 두 대학이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연고전이 있다는 사실이나 알았을까? 축제라며 거리를 뛰어다니는 이들이‘젊은’‘대학생’이 아니었다면 경기가 끝나면 이어진다는 기차놀이 같은 것이 용납되었을까? 연고전이 권력의 과시이며 기득권을 재생산한다는 비판에 대해 두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그런 의도로 한 적도 없고, 재미있기 때문에 연고전에 참가하는 것인데 왜 문제가 되냐고 반문한다. 질문 하나 더. 그렇다면‘재미’를 위해서 억대의 돈을 써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고대의 응원단은 홈페이지에“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바래지고 있는 크림슨과 로얄 블루, 애교심, 그리고 무너져가고 있는 정기 고연전의 숭고함을 보존하고, 대학문화의 올바른 지표로 건전하고 깨끗한 젊은이들의 제전으로 정기전을 승화시키는 일입니다. 진정 민족과 시대의 조그만 아픔과 그 상처까지도 싸매고, 치유해야 할 역사의 존엄한 명령은 누구도 아닌 우리 어깨 위에 지워져 있는 자랑스런 책임입니다 앞으로의 21세기, 우리는 퇴색되어 가는 고대 정신을 바로잡아 그 누구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을 자랑스런 대학 문화와 잊혀지지 않을 역사를 창조해야”한다고 연고전의 의의와 나아갈 바를 적어 놓았다. 퇴색되어 가는 정신이란 무엇이며, 지금의 대학 문화는 어떠하기에 자랑스러운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짧은 생각을 적자면 아마 두 대학의 학생들이(물론 이는 한국의 대학, 대학생 누구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대학을 취업자격증을 따는 곳쯤으로 여기고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는 한, 대학이라는 공동체가 지역사회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한 연고전은‘자유’의‘축제’가 아니라 일부 특권 세력의 집단적 권력과시와 욕구의 배출구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연고전이 대학 문화의 모범을 생산하고 건강한 학풍을 키워나가는 장으로 변화한다면 그 때는 나도 한 번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다.


서울 사는 대학생 2학년ㅣ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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