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내 청소 노동자
8월 말 어느 날, 학교 주변에 있는 PC방에서 스타를 하다 바람을 쐬러 나왔다. 전장을 벗어나 맞은 새벽의 공기는 시원했다. 빨대를 꽂아 우유를 마시며 터벅터벅 걷다가 민주광장에 이르렀다. 운동 나오신 어르신 몇 분이 벤치에 앉아 쉬고 계셨고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도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도 쉬고 싶어 벤치에 걸터앉아서 한참 멍하니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쓱싹쓱싹’..‘. 쓱싹쓱싹’...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민주광장 구석구석을 돌며 쓰레기를 쓸어 담고 계셨다. 학생회관을 바라보니 어떤 아주머니께서 계단을 거쳐 올라오는 입구를 쉴 사이 없이 쓸고 닦고 계셨다. 그 때가 새벽 5시 30분쯤이었다.
대학에 와서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참 좋았다. 초, 중,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의 주인은‘우리’고 그렇기 때문에 교실을 제 방처럼 깨끗이 써야 한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청소는 마땅히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학교의 주인인‘학생’으로서 하는 의무라기 보단 학교가 학생들을 억압하는 수단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지각하는 자에게는 방과 후 청소라는 엄벌이 내려졌다. 밥 먹듯이 지각하곤 했던 필자는 밥 먹듯이 청소를 하곤 했다. 공립 중학교는 청소원을 고용하지 않았고 청소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지시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래서인지 몽둥이와 함께 학생들에게 공포감을 주곤 했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끝나고 청소나 해!”이제는 더 이상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어졌고 점차 청소로 탄압당한 과거가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가며 흐릿하게 무뎌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 때 마포를 무기력하게 움직이던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 왔다.
학교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들은 원래 6시부터 4시까지 일하시기로 되어 있지만 8시 30분까지 아침청소를 마치기 위해 5시 30분까지는 학교에 와서 혼자 400~450평정도 되는 한 층의 복도, 강의실, 교수실, 화장실, 계단 등을 다 청소하셔야 한다. 그러다가 비좁은 쉼터에서 잠깐 쉬고 틈틈이 청소를 하다가 오후 4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 하루 11시간 정도의 노동을 하고도 현재 퇴직금과 추가근로수당까지 포함해 월 65만원 정도의 저임금을 받는다. 원래 이랬던 건 아니다. 노동 조건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건 1999년 학교 측이 재정난 악화를 이유로 들며 그들을 간접고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학교 내 인력 감축을 위한 구조조정안을 시행하기 전에 학교는 노동조합, 교수협의회, 차?과장 협의회, 교우회, 총학생회, 소위원회가 참석한 공청회를 열었는데 용역화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힌 단체는 교우회뿐이었다. 그렇지만 학교가(정확히 총장이) 구조조정안을 관철시키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고려중앙학원 정관‘제 2절 회계’의 9조 1항은‘이 법인의 회계는 법인에 속하는 회계와 학교에 속하는 회계로 구분한다.’이고 3항은‘ 학교에 속하는 회계는 교비회계와 부속병원회계로 구분하고 당해 학교의 장이 집행한다.’는 것이다. 13조에 예산?결산자문위원회 설치에 관한 사항도 있지만 위원은 모두 학교장이 임명하도록 되어있어 견제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절차상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척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즉, 절차상으로 학교장의 책임 하에 학교장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학교 측은 재정난 악화를 이유로 들어 그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었지만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이월금을 남겼다. 학교측은 대부분 목적성 이월금이라고 변명하지만 지난 2004년 본관 점거 때에 발견된 이중장부에 2003년도 순수 이월금이 27억이 아니라 189억이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2002년 학교의 이월적립금은 1425억원이나 되는데 그중 시설노동자들의 임금이 포함된 일반 용역비인 91억원에서 겨우 13억원만을 쓰고 남긴 78억원이 포함되었다. 이런 학교의 만행에 대한 항의는 시설관리 노동자와 고려대 학생들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학내 모임이 시작되면서 본격화되었다. 2002년 노동절을 맞아 학내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다가 말도 안 되는 노동조건에 분노하게된 학생들은 불철주야(‘불안정 노동철폐를주도할꺼야‘의 준말)를 만들었다. 학내에 불합리한 학교의 작태를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노조를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졌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서 2003년 노조위원장을 결의하신 분이 학교 측의 협박을 받고 퇴사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2004년 6월 25일 오후 안암동 고려대 본관 앞에서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청소용역 업체들로부터 일괄적으로 사표 제출을 요구받은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고용승계 보장, 노동시간 연장 반대 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6월 31일, 인권운동사랑방, 사회진보연대, 민주노동당 등의 21개 단체는 지지속에 전국시설노조 고려대지부가 탄생했다. 그 동안 비정규직이라는 약점 때문에 해고의 위험으로 항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고 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작년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동자들의 상황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나 1년마다 돌아오는 재계약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려야하는 것엔 변함이 없다. 올해 8월 1일 학내시설관리업체의 입찰이 있었고 이전의 업체가 재입찰되어 고용승계는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도 최저임금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제대로 된 노동조건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자연계의 하청업체인‘제이디원’과 인문계의‘신천’은 올해부터의 최저임금인 월 700,600원 이상은 어렵지만 만원 정도 인상해줄 여지가 있으며 정년은 63세로 고정하려 하고 있다. 기본급에서 25000원 인상과 식대 20000원, 현재 일하는 분들의 정년은 70세로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노조와 간극이 있어 교섭 중에 있다.
고대병원쪽의 사정은 더욱 열악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실정이다. 얼마 전 병원시설관리 노동자 62명중 52명이 노조를 만들어서 9월 말로 다가온 하청업체 재계약에서 고용승계와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싸움을 준비 중이다. 노조가 만들어진 후 소장 등의 직속상관은 노조원에게 비노조원이 할 일을 떠넘기는 차별을 하며 탄압하고 있어 이번 달에도 몇 명이 노조를 떠났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노조원들을 협박하지는 못하니까 드러나지 않게 은밀히 탄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8월 30일 병원노조쉼터에서 만난 그들은 지금껏 병원은 자신들을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인간대접 안 해주고 기계처럼 부려먹었기만 했다고 하소연했다. 한달에 한번 제일 청소 잘한 사람을 골라 상을 주며 경쟁시키고 시설이 낙후되어 아무리 청소를 열심히 해도 더러울 수밖에 없는 것을 가지고 청소하는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었다고 하셨다. 식대도 남들보다 1000원이나 더 받으면서 병원의 다른 직원과 같은 시간에 식당을 쓰는 것도 눈치를 봐야했고 식당직원들도 의사들한테는 맛있는 반찬 많이 주면서 자신들한테는 적게 주어 서러웠다고 하셨다. 임금이나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주지 않아서 슬픈 적이 많았다고 하셨다. 인사해도 본척만척하고 지나치는 의사들이 담배 꽁초하나 제대로 버리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도 계속 인사를 하시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한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인사도 받아주고 사람보듯 대해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용승계도 되고 화장실에서 밥 먹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무엇보다 인간답게 대접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과분한 것일까.
학생들의 등록금 투쟁 때는 사제 관계를 운운하던 학교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나이 지긋하신 시설 관리 노동자들을‘일하는 기계’처럼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언론에 학교의 숨기고 싶은 모습이 폭로되고 수많은 학외 단체의 항의가 들어와야 시설 관리 노동자의 목소리에 조금 귀를 기울여주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유쾌한 일은 분명 아니다. 지난 7월 8일 학교는 학내 청소용역업체 입찰 설명회를 열었다. 시설관리노동조합과 학생들이 찾아가자 학교는 시설관리노동자는 학교 직원이 아니니 할 말이 있거든 용역업체와 이야기 하라고 했다. 학교는 학내시설노동자들이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용역업체에게 껄끄러운 것들을 떠넘기고 싼 값에 부려먹으려고 할 뿐이다. 작년 ‘365일 깨끗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1일 3교대로 노동자들을 쓸 계획을 용역업체에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그 계획이 실행되지 못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려야만 하는 사람들은 학내미화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용역업체와 이야기하라는 학교 측의 발뺌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뒤이어 학생들이 자신들이 낸 등록금에 포함된 학내 청소용역업체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지 참관하고 싶다고 요구하자 입찰설명회장의 문을 걸어 잠궈버렸다.
학생들은 이런 사태에 방관하지 않고자 7월 21일 ‘학내비정규직철폐를 위한 네트워크(가칭)’의 초동모임을 갖고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했다. 이날 논의를 바탕으로 총무처에 함께 고민을 나누자며 공문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작년에만 4번 언론을 통해 고려대의 학내시설관리노동자에 관한 글이 나왔다. 2004년 06월 24일 한겨레21 제 515호에 ‘[불철주야] ‘불철주야’아름다운 청춘’이란 제목으로 ‘불철주야’가 소개되었고 6월 13일 한겨레신문 ‘왜냐면’에 ‘지성의 전당, 대학의 ‘야만’이란 제목의 글을 한 학우가 투고한 것을 비롯하여 한겨레신문 6월 26일자 ‘깨끗한 학교 버려진 청소부’, 7월 1일 ‘고려대 청소용역 노조결성’이란 글로 학교의 부당함이 폭로되었다. 지금도 학교는 학내시설관리 노동자의 요구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오균|편집위원|lucky592@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