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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와 삼성의 기묘한 이중주

조회 수 2143 추천 수 0 2007.04.10 01: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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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와 삼성의 기묘한 이중주


지긋지긋한 이야기

지난 5월 2일, 이건희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수여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는 그 행동 자체의 정당성과 관계없이‘폭력’사태라는 딱지가 붙어서 논쟁에 휩싸였다. 이제 세 달이 지났다. 과연 그때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었던가. 무엇이 살아남았고 무엇이 사라졌는가, 혹은 무엇이 살아남아야 하고 무엇이 사라져야 하는가. 우선 지난 5월 2일 사태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지긋지긋한 삼성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지긋지긋’이라는 감정은 고려대라는 이름과 관련된‘누구에게든지’해당될 것이다.

5월 2일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말이 돌았고, 곧 행사가 있을 인촌기념관 앞에서 집회가 있었다. 그 날 모인 학생들의 대부분이 예전부터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 수여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행사가 오래 전부터 예정되었던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필자도 당일에 이건희 회장이 고려대에 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려대의 한 교수가“그런 것이 논의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학교 측에서 감사의 표시로 허겁지겁 명예박사 학위를 꾸미는데 무슨 논의가 있고 준비가 있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당일 인촌기념관 앞에서의 일정 정도의 물리적 충돌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집회만 하고 끝날 수 있었던 상황은 분노한 학생들과 그 학생들을 막았던 학교, 그리고 같이 막았던 삼성 사이에서 좌초됐다. 이제 돌이켜보면 5월 2일의 사태를‘폭력’이라고 부르고 안 부르고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각자의 몫에 불과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날 몇몇 포털 사이트에‘폭력’사태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올려 졌고, 기성 언론들이‘폭력’이라는 단어를 좋다구나 써먹었다는 사실이다“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각주 :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지만, 고려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내용이기도 하다.) 이라는‘철없는’학생들에 대한 일갈은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듣는 학생들을 정말 미친개로 만들었다.

이미 총학생회의 대표성이 거론되고 학생회비 분리납부까지 시행된 마당에 더 이상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불필요하다. 즉, 폭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집회에 대한 찬성이냐 반대냐가 중요하다. 그 사건 자체의 본질을 다시 한번 거론하는 것으로 폭력 운운하는 담론의 허위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외형은 바뀌어도 본질은 오래가는 법이다. 요약하자면, 폭력 논쟁은 총학생회 대표성 문제와 학생회비 분리납부로 옮아갔지만 삼성의 문제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철학의 재탄생

당시 학위 수여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한 반대, 그리고 삼성의 그러한 경영방식에 대한 정당화 우려, 인문학의 가치가 경제-경영논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에 대한 비판, 100주년 기념관 건립과 관련된 대가성 학위 수여라는 비판, 소소하게는 교수, 학생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뜬금없는 철학 박사라는 타이틀에 대한 반대 등등.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문제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다루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의 노조 탄압은 유명하다. (각주 : 2005년 5-6월호 고대문화 참고) 인문학의 가치는 각자 매기는 정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테니 이 또한 폭력 논쟁만큼이나 그때그때 다르다. (각주 : 인문학이 언제부터 고상했던가)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가 100주년 기념관 완공과 맞물린, 대가성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왕이면 그 고상하고 또 고상하다고 착각하는 인문학, 그 중에 철학이라는 멋들어진 명패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건희는 철학과 대학원도 안 다녔는데 학교가 교수나 학생들의 동의를 얻는 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학위 수여를 비판하는 각각의 입장에서 그 논리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하필이면 그 집회의 중심에 삼성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겠다“. 이건희가 아니라 안철수였다면 철학 박사 학위 수여를 반대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반문은 오히려 이건희였기 때문에 더욱 반대했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는 지금 불법도청 이슈가 다른 어느 기업도 아닌, 삼성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일보에서 이건희를 옹호하면서도 한국은 삼성의 나라라고 우려
를 표시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작년에 3000했는데 올핸 2000만 하죠?”

5월에는 주요 언론들이 고려대 총학생회를 향해“상대를 잘못 골랐다”라고 말했고 그 상대는 넓은 아량과 이해를 보여주면서 슬쩍 넘어갔다. 그러나 학생들을 미친개라 부르는 그들은 또한 이건희 개인이, 크게는 삼성이라는 한 기업이 지닌 한국사회에서의 상징성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균열이 생겼을 때 놀랐을지 모른다. 그리고 반대로 삼성이 가지고 있던 거대한 권력의 암부가 하나하나 들추어질 때 그들은 더욱 놀랐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들은 삼성을 이야기하지 않고 도청을 이야기한다. 다른 누구의 나라가 되느니 삼성의 나라가 되는 편이 낫다. 조선일보가“삼성의 나라”라는 사설을 쓰면서도 삼성이 아닌 도청만 들먹이는 이유는 삼성에 대한 불안감보다 삼성 이외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이 그들에게 훨씬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석조한테는 한 2000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검사)들…, (이건희)회장께서 전에 지시한 거니까…. 작년에 3000 했는데 올핸 2000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얘들(검사들) 좀 주라고 하고…”

이런 말이 미 대사와 한 기업의 부회장 사이에서 오가는데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사실은“정경언 유착과 도청 문제 중 도청 문제가 더욱 중요하고 본질적”(각주 : 8월 9일자 한겨레) 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다. 노무현의 말대로 도청이 인권침해이고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에 대해 가해지는 범죄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경언 유착이라는 합법적 범죄를 용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즉, 자본가와 정부가 공모하여 국민에게 가하는 범죄행위를 용인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것도 미국 대사가 전 중앙일보 사주이자 삼성의 일가였고 광주고검장은 그 미국 대사의 동생이었으며 돈을 준 이는 삼성 부회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인권 침해와 정경언 유착 사이에서 표류하는 x파일 문제는 잠잠해졌다. 연정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에서는 논란거리도 안 될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기 바쁘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건희를 구속하라는 악에 받친 목소리는 그 주장 자체의 극단성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현실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반영한다. 어쨌든 도청은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라서 중요하고, 뇌물을 주고받는 유착관계는 국가권력 (각주 : 도대체 국가권력이 뭐란 말인가.)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고려대는 무얼 했는가

따지고 보면, 지금껏 삼성에 대해서 가장 막나갔던, 그래서 가장 옳았던 반항 (각주 : 반항이 저항이 될지는 두고 볼 문제다. 저항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학생들을 향해 현실을 알라고 한다.) 은 고려대의 철학박사 학위수여 반대투쟁이었다. 한 거대재벌이 가진 막강한 권력에 반대할 수 있었던 것은 비 제도권에 놓인 소수의 학생들뿐이었다. 그것도 미친개 소리를 들어가면서 저질렀던 일이지만.

5.2사태 이후 고려대를 휩쓸던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상처입지 않은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이었다. 박기갑 학생처장의“학교도 학생도 상처를 입었습니다”는 말 속에 삼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미친개들의 젊은 혈기는 이해할 만하다고, 기자 분들이 더 고생하셨다고 여유를 부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건전한 기업가 정신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이 들의 불법?변칙 경영권 세습은 잊혀졌다.

지금에서야 도청 사건이 터지고 삼성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이 새어나오지만, 5월만 하더라도 고려대 내의 운동‘권’만 죽어나가는 분위기였음에 명백하다. 지금도 그렇다. 그 분위기에 휩싸여 폭력을 싫어하는‘평화고대’가 등장하고, 학생회비는 분리납부 되었다. 그러나 이는 학생들끼리의 일로 치부할 수도 있고 치부해야 한다. 이미지를 깎아먹는 운동‘권’과 그 운동‘권’의“과격한”운동에 동의하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 각자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또한 명백한 것은, 고려대의 이미지 (각주 : 이 때의 이미지가 단순한 네임밸류를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다) 를 누가 깎아먹었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학이라는 공간이 어떠한 방식으로 다시 정의되고 있는지를 물어야한다.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인가? 혹은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교육하는 공간일 뿐인가?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 보게 될 학교 측의 궁색한 말들은 그 질문에 답이 될 수 없다. 한 주간지 인터뷰에서“삼성의 경영 철학과는 관련이 없다”(각주 : 8월 5일자 한겨레 21) 던 어윤대 총장의 말과 달리 그 이전에 이두희 대외협력처장은 이미 경영철학을 입에 올렸다.“ 가치 중심, 인간 중심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영 철학을 가지고 회사를 경영했고, 그러한 철학관과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도 넓게 퍼져서 영향을 주고 있다.”(각주 : 시사매거진 2580)

아아, 이건희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덕환|편집위원|bocn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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