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판교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은 상실의 계절’이라던가요.
그러나 유난히 파란 가을하늘 아래 드러난 상실의 풍경에는 어줍잖은 감상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파괴란 한 순간에 이루어지나봅니다.
녹슨 포크레인이 할퀴고 간 자리에는 깨진 생활의 파편 조각만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습니다.
모두들 판교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수없는 좌절 속에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빼앗긴 일상은 빼앗긴 사람들의 손으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삶은 끈질기기에, 희망을 놓아야 할 때란 없다는 것을.
‘난쏘공’ 이후 27년이 흘렀고, 판교는 지금 가을입니다.
사진·글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