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하반기, 노동법 개악안과 우리들의 삶
한때,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유행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세계와 관계(정치, 사회)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에고’에 충실하는 ‘쿨’(COOL)함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러한 세대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들 삶이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반문해 본다.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우리들의 삶은 더욱 각박해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강행처리하겠다고 하는 노동법 관련 법안(일명 ‘노사관계 로드맵’)은 우리의 미래를 암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위 청년실업이 어쩌구하는 시트콤의 한 구절 속에서, 한번쯤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라는 것을 고민해보자.
노동자일수밖에 없는 우리들, 그리고 사무직노동자들의 삶
어려운 진학경쟁 속에서 그나마 승리(?)했다고 자부하는 우리 ‘괴뢰대학교’출신들의 삶은 어떤가? 단, 여기서 우리는‘소수’의 승리자들이 아니라, 다수의 삶을 잣대로 삼도록 하자. 무한 경쟁 속에서 우리가 그 희박한‘소수’에 포함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그래서 더욱더 전반적인‘구조’에 주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일단 대부분의 우리는 ‘사무직’으로 취업해서 상대적 고임금이라고 자위하지만 실제로는 ‘사오정’을 넘어 ‘삼팔선’이라는 말이 보편화될 정도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능력에 따른 성과급의 지급(임금 유연화)등은‘웰빙’이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IT부문 노동자들은 한 때 빌게이츠 신화 속에서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지배적 계층이라 칭송받았지만, 이제는 산업사회의 퇴물(?)인 노동조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IT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벤처열풍은 한바탕 해프닝이었고, 이제 그들은 몇 푼 안되는 봉급 속에서도 철야노동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노동자들의 노동 강화로 나타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역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대박’신화를 굳건히 믿으며 저임금과 엄청난 노동강도 속에서 장시간노동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철밥통’이라 불리며, 최고의 직장으로 급부상한 공공부문의 경우도,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사유화(민영화)와 비정규직화(노동유연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작은 정부를 말하는 경제학 교과서와 제도 언론! 그러나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의 취업도 감지덕지하며, 핵심적인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몇년 쓰이다가 퇴출당하는 그런 고용형태이다.
팍팍한 우리들의 삶은 정부 -자본과의 ‘힘겨루기’, 그것에 패배한 결과이다.
이런 팍팍한 우리들의 삶은‘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것과 긴밀하게 연동되는 노동유연화)의‘결과’이다. 90년대 초반이후 추진되어온 국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은 96년 말‘정리해고제’와‘근로자파견제’날치기 통과로부터 법제도적으로 구체화 되어온 것이다. 노동운동진영은 96-97 총파업으로 맞섰지만 결국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시행되었고, 사용자들은 차츰 명예퇴직이나 신규채용 중단으로 인원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제조업을 넘어 금융, 공공부문 등에 전 방위적인 신자유주의 공세를 단행했다. 당시 파견법이 26개 업종으로 제한되었지만 자본은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파견과 기간제에 대한 법 모두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었다. 또한 그동안 노동자들의 투쟁성과를 무력화하고, 노동기본권을 억누르기 위해서 고군분투(?) 했다.
더욱이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의 이데올로기적·정책적 틀을 넘어 노사관계에조차 제도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관철하려고 하고 있다. 2003년 9월 4일 발표된 ‘노사관계 로드맵(개혁방안)’에 담긴 내용이 바로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요체이다. 로드맵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의 기조 아래 ‘정리해고 완화’와 ‘고용유연화 확대’등 국내외 자본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직장폐쇄 및 대체근로 완화 등 파업과 관련한 사용자(자본)의 힘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노사정위원회와 산업자원부, 노동부 등의 논의를 거쳐,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2005년 6월 입법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2005년 하반기, 노동법 개악을 두 눈 부릅 뜨고 직시하자!
이번 법안의 핵심적 문제는 비정규직을 정상적 고용형태로 만든다는 점이다. 그동안 파견법은 특수한 노동자에 한해서 특수하게 적용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번 개악안은 특정 조건에 상관없이 파견법 허용대상을 완전히 풀어놓아 특수한 경우의 예외적 법이라고 주장했던 중간착취를 완전히 용인하려한다. 또한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 법안은 비정규직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비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에게는 정규직이 될 희망이 없어졌다는 것 말고는 더 심각해질 것 자체가 없다. 이 법안은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 그리고 일단 시장에서 한번 퇴출된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만 진입하게 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결과적으로 노동 기본권이 완전히 박탈되는 것이다.
파견법이 전면 합법화되면 사실상 사용자의 책임을 지지 않는 파견사용주는 마음대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노동자들을 임의로 해고할 것이다. 또한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계약기간을 자본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므로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들을 해고 하는 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런 노동환경은 결국‘정규직-장기계약직-단기계약직-아르바이트-파견-용역’노동자들 사이에 위계를 만들고 상호 경쟁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런 ‘경쟁’은 곧 저임금으로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그저 부려먹기 좋은 노동자들을 양산할 뿐이다. 이런 삶은 곧 지옥이지 않나!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다시 문제는 ‘정치’와 ‘개인’이 긴밀하게 연동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두꺼운 영어관련 서적과 수험서를 붙들고 전투적으로 취업(노동력) 시장에 돌진해 들어가는 대학인들! 소위 말하는 ‘지성과 야성’은 다가올 고연전 응원가 한가락에만, 그리고 토익과 자격증, 그리고 고시합격에만 볼 수 있는 우리들!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 우리의 미래와 하루하루 각박해져만 가는 일상들 속에서 우리는 세계에 대해 둔감함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이제 세계와 사물을 냉철히 바라보자. 그 속에서 우리들의 존재와 나의 방향을 반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임형기|공공부문 계약직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