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2

역사 - 치유할 수 없는 슬픔들, 보듬어 줄 수 없는 상처들

조회 수 1638 추천 수 0 2007.04.10 01:30:57
komun *.5.43.22
0509_yuk.JPG
치유할 수 없는 슬픔들, 보듬어 줄 수 없는 상처들
- 전쟁의 또 다른 이야기. 민간인 학살.


헤질대로 헤진 자기 안의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국군 소위 표현철(신하균)은 모두가 웃고 떠들고, 천진하게 장난도 치는 그런 소소한 일상에 함께 있지 못했다. 아이처럼 막 살라는 평온한 동막골 푸른 언덕에서 다른 이들의 시선이 사라질 무렵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만의 동심을 만끽했다. 그렇게 높다란 언덕을 후련하게 소리지르며 썰매를 타고 내려온 그는 자신의 소중한 생명마저 버리고 싶을 정도의 죄책감에 여전히 갇혀있음을 자각한다. 푸른 풀밭에 누운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하얗게 맑고 높다란 하늘이 아니라 평화로운 일상의 파괴를 눈앞에 두고, 머리엔 보따리를 이고 허리엔 봇짐을 지고 차마 아이의 손을 놓칠 새라 피난을 가던 우리의 이웃들이었다.

영화‘웰컴 투 동막골’에서의 표현철의 상처는 엄연히 존재한 우리 역사의 상처이다. 그저 흙만 바라보고 해와 바람과 별을 벗 삼아 아이 같은 순수한 꿈을 꾸며 살아온 우리네 민중들은, 책상 앞에서 지도만 들여다 본 군인들의 한 순간의 결정에 의해 포탄의 불바다 속에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죽어가야 했다. 영화 속 판타지가 실제 존재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와는 정 반대로 순수했던 민중들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파괴되었던 역사적 순간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여전히도 이를 기억해내지 않는다면 아물지 않은 상처는 깊게 패인 흉터로만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50년 6월. 한강에서의 비극

우리는 그동안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느냐에 관한 별 의미 없는 논쟁을 계속해왔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김일성 괴뢰군이 남침을 했건, 전 세계에서 높아져가는 민족해방운동을 위협하고 전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미제와 남조선 주구들이 북침을 했건 간에 3년여의 시간을 통해 무려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민간인들이‘그들의’전쟁으로 인한 피해자가 되어야만 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의 멍에를, 식민지 국가였던 이 땅에 뒤집어씌운 강대국과 그들의 이데올로기, 해방된 조국에 닥친 분단과 대립, 각자의 근대국가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해방을 이루어내지 못했던 한반도의 필연적인 운명의 대가치고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영화 속 표현철의 상처는 1950년 6월 28일의 비극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이승만 정권은 전쟁이 일어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며 갖은 허풍을 떨어댔다. 이 허풍은 인민군이 서울을 목전에 둘 때까지 계속 되었는데, 이승만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이제 곧 북진통일을 완수할 것이라고 여전히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내뱉었다. 그리고 막상 자신들은 6월 27일 새벽 3시에 대전, 부산으로 도망쳤다. 이승만과 거리가 있었던 부통령 이시영을 비롯한 당시 정권의 핵심인사들 조차 알지 못하는 전격적인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28일 새벽 1시경에 미아리 전선이 무너지자 이들은 한국전쟁사에서 길이 남을 야만적인 작전을 통해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려 하였다. 그것이 바로‘한강철교폭파’였던 것이다.

6월 28일 새벽 2시를 넘어섰을 시각. 비가 내리면서 어둠이 가득한 한강에 두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금새 주위는 환해졌고, 어둠을 뚫고 내린 빛줄기 속에 한강을 건너던 약 1,500여 명의 피난민들의 생명도 사라져갔다. 이 중에는 전선에서 밀려 후퇴하던 군인들도 있었다. 또한 서울은 안전하다는 대통령 각하의 생생한 육성만 믿고 3일 동안을 버티다가, 귓가에 실감나게 들려오는 포성소리에 놀라 막 피난을 떠나던 평범한 우리의 민중들이 영문도 모른 채 폭사당해야만 했다. 이 나라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도 모자라 국민의 목숨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고 정작 자신들은 안전한 후방에서 그 알량한 목숨들을 부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 엄청난 사건은 그 직후에 바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 미아리 전선이 무너지자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육군공병감이었던 최창식 대령에게 한강 철교폭파를 지시했다. 최창식은 즉시 한강철교로 달려가 이미 폭약을 장치하여 명령만 기다리던 공병팀에 폭파를 명령하였는데, 이때는 채병덕 등 자신의 상관들이 이미 다리를 지나간 직후였다. 후에 최창식은 공병들을 한강 북안으로 보내 다리로 진입하는 차량과 인파를 막으려고 했으나 공포감에 휩싸인 시민과 군인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 중임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비난 여론은 누군가에게 십자가를 짊어질 것을 요구했다. 결국 최창식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적전비행(敵前非行)’이라는 죄목으로 같은 해 9월 16일에 총살을 당했다. 온 국민을 속이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자신만이 살 길을 찾아 도망친 이승만도, 자신이 한강을 건넌 이후에 직접적인 폭파 명령을 내렸던 채병덕도 1,500명에 이르는 무고한 생명 앞에 애써 속죄의 눈길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마땅히 짊어졌어야 할 책임을 모조리 한 군인에게만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최창식은 후일 그의 부인에 의해 재심이 청구되었다. 결국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의 급박한 사정이 인정되었고, 1964년 10월 23일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최창식도, 당시 한강다리를 건너던 사람들도 이 엄청난 야만 앞에서 그들이 응당 지녔을 법한 분노와 설움을 그 어느 누구에게 토해 낼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그들의 하나뿐인 생명은 전쟁을 핑계로 삼은 국가의 야만 앞에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야만, 야만의 전쟁

최근‘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라는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의 신문광고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남의 말 엿듣고,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캐는 일을 국가안보의 보루로 여기던 군사정권 시절에야 그렇다 치더라도 명색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까지 한, 더군다나 자신도 그러한 도청의 피해자였던 김대중 정권에서 그간 해왔던 공언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은 그 충격의 강도가 여간 센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하고, 사기 친 것도 모자라 공갈, 협박을 일삼은 것은 그 자체만으로 새로이 역사 교과서 하나를 만들 정도로 무수히 많은 사례들이 있다. 그래도 눈 딱 감고 눈물 주룩주룩 흘려보내고 나서, 못나도 우리나라니까 하고 애교(?)로라도 봐줄 수 있는 그네들의 거짓말들이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장난을 가할 때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1950년 7월 말 해남군과 완도군 일대에서 일명‘나주부대’로 불리는 나주경찰서 소속 경찰부대는 그럴싸하게 잘 꾸며놓은 거짓연극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50년 7월‘영광작전’으로 불리던 군경의 전남 방어 작전이 실패하자 나주부대는 남으로 퇴각하게 되었다. 인민군의 공세가 치열하였던 그 무렵에 전남 완도의 경찰들은 쌀 창고에서 비상미를 챙겨서 완도읍을 모두 빠져나갔다. 완도 경찰과 공무원이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들어온 인민군(?)들은 아침에 완도중학교로 환영행사를 나오라고 하며, 만약 나오지 않는 사람은 반동으로 취급할 것이라고 협박을 가했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이 운동장으로 모였을 때 연단에 나온 사람은“우리들은 인민군이 아니라 경찰”이라고 갑작스런 번복을 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환영을 했던 십 여명의 주민들을 그 자리에서 학살 하였다. 또한 중학교에 모였던 나머지는 산이나 바다로 끌고 가 학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특히 전쟁 중에는 더더욱 그러할 막중한 책무를 지닌 국가 권력기구에서 좌익을 색출한다는 명분하에 인민군복을 입고, 분장을 하며 잘 짜인 연극 한 편을 주민들 앞에서 공연했던 것이다. 그들이 취했던 퍼포먼스의 결말은 이데올로기의 선택 앞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순진한 반응을 보였던 주민들을 향한 학살이었다. 인민군으로 가장한 나주부대의 학살만행이 완도중학교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환영대회가 열린 같은 시각 나주부대 중 일부는 마을을 돌며 좌익 색출작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역시 교묘하고 기만적인 방법이었다. 인민군으로 가장한 그들은 닥치는 대로 집안에 들어가서 총부리를 들이대며 공산당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댔다. 겁에 질린 주민들이 그렇다고 대답할 때 돌아오는 것은 그들의 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화약 냄새였다. 좌익을 색출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행했던 그들의 조치는 너무도 유치했고 치졸했으며, 결국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사람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나마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책임자가 미흡하게나마 처벌을 받았던 여타 다른 학살 사건과는 달리 나주부대의 만행은 유족들에 의해서 간간이 알려져 있는 정도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기만적인 연극에 의해 목숨을 건 희롱을 당해야 했는지 제대로 된 진상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애써 알려고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행여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숨죽인 채 한을 간직하며 살았던 피학살자 유가족들은 1960년 4월 혁명 이후 변화된 사회정세 속에서 그들의 억울함을 잠시나마 달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진상이 규명되기 시작하려던 순간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유가족들은‘우리 국군이 그런 일을 했을 리가 없다.’‘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다.’라는 식의 탄압에 맞닥뜨려야 했다. 제 아비, 어미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보려 했던 유가족들은 또 다시 숨을 죽여야 했고, 가슴 한 구석에 커다란 응어리를 안고 평생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심지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거창 신원면에서는 추모비가 군인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죽은 아이들의 합동묘의 봉분이 평평하게 잘려나가는 또 다른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여전히 치유할 수 없는 아픔들

근대국가형성의 과정은 폭력의 독점, 정당성을 다투는 세력들의 영토 내에서의 체계적인 배제과정을 의미한다. 동시에 영토내의 인민들에 대한 국민형성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영토 내 주권의 독점의 구축과정에서 도전세력에 대한 공격은 일종의 국내평정(internal pacification) 과정에 해당한다. 특정 국가형성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강도는 영토내의 국내평정 과정에서 도전과 충돌이 강력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평정의 과정에서 영토 내에“이미 국민으로서 존재하는”, 즉 국민성을 갖고 있는 대중을 국가의 정당성에 도전하는, 국민이 아닌 존재로 의제화하여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구축과정이라고 할지라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백번 양보를 해서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과 1950년에서 53년까지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들이 국가형성과정에서 있었던‘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고 할지라도 영토 내의 인민, 혹은 국민들을 상대로 그럴싸한 거짓 사기극을 연출하여 그들의 생명을 너무나도 쉽게 탈취해간 일련의 사건들은 이성적으로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나치가 유태인과 집시들을 아우슈비츠나 트레블링카 등의 수용소로 끌고 가 집단적인 학살을 가했다면, 우리의 경우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꿈꾸며 자라왔던 이 땅 곳곳에서 학살이 진행되었다. 비록 유대인 자본의 막강한 파워를 등에 업긴 했지만, 나치의 만행들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오늘의 독일 및 유럽의 역사와 사회를 정방향으로 이끄는 동력이 되어주고 있다면, 우리의 과오들은 고양의 금정굴 속에, 경산 코발트 광산 안에, 산청 외공리의 밤나무 아래에 여전히 그대로 묻혀있는 수많은 유골들처럼 그냥 덮어두고 애써 망각하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유족들은 부디 이 땅의 풀 한포기 함부로 밟지 말아달라고,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가족들은 온 국토가 무덤이라고 하지 않던가.

루쉰은‘먹으로 쓴 거짓은 피로 쓴 진실을 감출 수 없다.’라고 했다. 소중한 가족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어린 아이는 여전히 한을 간직한 채 하나 둘씩 꿈에 그리던 그들을 만나러 돌아가고 있다. 6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아직까지도 먹으로 쓴 역사만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열 발자국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일 수 있다는 수류탄이 터져도 팝콘 비 내릴 수 있는 이상향을 우리는 정말 동화 속에서만 접해야만 하는가? 소중한 생명들이 덧없이 죽어갔던 그때를 잊어버리기엔 아직 치유해야 할 다른 아픔들이 더 크기만 할 따름이다.


*
더 읽어보아야 할 책들
김삼웅,『 해방후 양민학살사』, 가람기획, 1995
김동춘,『 전쟁과 사회』, 돌배게, 2000
이병천, 조현연 편,『 20세기 한국의 야만』, 일빛, 2001
한홍구,『 대한민국史』, 한겨례신문사, 2003
최호근,『 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 책세상, 2005


박유민|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석사과정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2 화보 komun 2007-04-10 2063
61 편집실에서 komun 2007-04-10 1940
60 표지모델 인터뷰 [249] komun 2007-04-10 2733
59 대자보 리뷰 - 해고없는 세상에서 편히 잠드소서 komun 2007-04-10 2055
58 특집 - 고대와 연대만의 가장 큰 축제 komun 2007-04-10 2052
57 특집 - 연고전과 고연전 사이에서 [185] komun 2007-04-10 2675
56 특집 - 안티 연고전 komun 2007-04-10 2195
55 특집 - 스쳐가는 사람의 이야기 [268] komun 2007-04-10 2178
54 특집 - 솔직한 고연전을 위한 어려운 이야기 komun 2007-04-10 2341
53 특집 - 진정한 고대인이 되기 위해서 komun 2007-04-10 1854
52 특집 - '연고전'을 바라보며 komun 2007-04-10 1946
51 특집 - 화보 komun 2007-04-10 2002
50 특집 - 하루에 1억씩! komun 2007-04-10 1941
49 특집 - 리치리치 RichRich! komun 2007-04-10 1807
48 특집 - 내가 고연전을 사랑하는 이유 komun 2007-04-10 1920
47 학내 청소 노동자 komun 2007-04-10 1862
46 고려대와 삼성의 기묘한 이중주 [218] komun 2007-04-10 2143
45 만화 komun 2007-04-10 2067
44 화보 komun 2007-04-10 2232
43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 이후 komun 2007-04-10 1757
42 노동 - 방법이 없어 죽음을 택했다 komun 2007-04-10 1701
41 노동 - 2005년 하반기, 노동법 개악안과 우리들의 삶 komun 2007-04-10 1676
40 만평 komun 2007-04-10 1902
» 역사 - 치유할 수 없는 슬픔들, 보듬어 줄 수 없는 상처들 komun 2007-04-10 1638
38 학술 - 자본주의 사회의 작가 komun 2007-04-10 1763
37 여성 - 성노동자 운동, 이대로 괜찮은걸까? komun 2007-04-10 1691
36 서평 - 그람시의 ‘옥중수고’, 그 자체로 바라보기 komun 2007-04-10 1572
35 영화 - 철없는 엄마와 조숙한 아이들의 영화 komun 2007-04-10 1689
34 음악 - 체제에 짓눌려 스스로를 불태운 최초의 여성 록커 komun 2007-04-10 1528
33 토론마당 - 학생회비 분리 납부는 학생회 활동을 위축시킨다 komun 2007-04-10 1666
32 토론마당 - 학생회비 자율납부는 학생회에게나 학생에게나 의미있는 일이다 komun 2007-04-10 1746
31 미디어 비평 - 살 맛 나는 신문? komun 2007-04-10 1615
30 수습위원의 세상보기 - 이런 인생이라면 아무리 길어도 사양하겠습니다 komun 2007-04-10 1770
29 2005년 10월호 목차 komun 2006-08-16 1888
28 수습위원의 세상보기 - 애어른 komun 2006-03-28 2271
27 편집실에서 고대문화 2005-11-01 2178
26 이주노동자 네트워크 (MSN : Migrant Solidarity Network) 고대문화 2005-11-01 2122
25 여학생위원회, 정보통신대학 비상대책위원회 고대문화 2005-11-01 2190
24 <100주년> Global KU! OKU? 고대문화 2005-11-01 2278
23 <100주년> 빛 좋은 개살구 고대문화 2005-11-01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