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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그람시의 ‘옥중수고’, 그 자체로 바라보기

조회 수 1572 추천 수 0 2007.04.10 01: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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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옥중수고’, 그 자체로 바라보기
- 그람시를 바라보는 한가지 관점


현재의 대학인에게 ‘맑스’는 사회학 교과서에 나오는 갈등이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다. 더구나‘레닌’이나‘마오쩌둥’은 독재자 혹은 파시스트로 인식되는 듯하다. 물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과 구조에 대한 탐구, 그리고 나름의 실천적 활동을 하는 대학인도 존재하지만, 맑스주의 저작에 대한 꼼꼼한 탐구는 다소 미흡해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그람시’를 말한다는 것은 다소 생뚱맞은 일일수도 있겠다.

한국사회에서 그람시는 혁명적인 그의 정신과 활동이 제거당한 채 수용되었고, 더구나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된 적이 없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그람시의 이론은 실천적으로는 노동자민중운동을 대체하는 시민운동으로, 이론적으로는‘포스트맑스주의’의 근거로 수용되었다. 최근 이야기되는 평의회 노선도 그람시를 경유하지 않고 판넨쾨크같은 좌익반대파만을 주목할 뿐이다.

고백하던데, 나는 연구자도 아니며 그람시의‘옥중수고’에 대해서 서평을 쓸 정도의 역량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옥중수고에 대한 해석이 곧 정치적 포지션을 결정하는 현실에서, 오히려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옥중수고를 독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나는 그람시를 해석하는 한 가지(급진적) 관점에서 그의 사상을 조망하려고 한다. 이것이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해석하는데 있어 더욱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람시의 출발점과 특징 - 경제주의 비판과 실천철학

제 2인터내셔널의 맑스주의자들은 역사 속에서 행동하는 인간의 실천보다는 객관적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진화론(결정론)을 신봉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자신의 내적 모순에 의해 필연적으로 몰락한다는 파국적인 숙명론이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주의는 맑스의 토대·상부구조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의식적(주체적) 요소를 격하시키고 시민사회 내에서의 경제투쟁만을 강조하면서 정치투쟁을 기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류적 경향과 달리, 레닌은‘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드러나듯 경제주의(그것의 한 형태인 조합주의)와 투쟁하면서, 사상과 의지의 집합체인 전위당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람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대한 논문인‘자본론에 반한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역사의 무대에서‘철의 시간표’를 깬 것에 대해 높이 환호했다. 또한‘경제주의적’경향에 반대하여 문화투쟁 전선을 재평가한 것은, 바로 레닌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람시는 제3인터내셔널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바로 레닌주의적 전통에 서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람시의 이러한 경제주의 비판의 문제의식은 옥중수고에서는‘실천철학’이라고 표현된다. 그는 속류 유물론의 기계적 결정론에 대해 비판하면서, 역사에서 경제인 것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결정이라고 한계 지운다. 즉 주체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구조와 주체의 변증법’속에서 진동되어 온 맑스주의 철학에서 주체(역사)를 강조하는 경향성의 출발로 받아들일 수 있다. 구조주의적 전통으로 맑스주의를 살리려고 했던 시도들이 결과적으로 맑스를 버리게 되는 맑스주의의 역사가 있었다. 이 속에서 다시금 존재, 역사, 주체, 실천의 문제설정을 강조하는 그람시의 문제의식은 재조명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람시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할 때는 경제적, 물리적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신념 체계와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공유하도록 설득하는 데에 더 의존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국가를 경제적 지배계급의 단순한 하인(도구)으로만 보려는 경향은 경제주의적 편향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이 그람시가 상부구조(국가와 시민사회), 의식,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조를 나타내게 된 계기이다.

그람시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 - 국가·시민사회론

그람시의 문제의식을 간단하게 도식화시켜 본다면, 그것은‘왜 동구와 달리 서구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가’였다. 그는 국가의 물리적·폭력적 강제 이외에 지적·윤리적 지도에 의한 대중의 자발적 합의 구조가 형성되는 시민사회에 대해 주목했다. 이것이 바로 기동전에 대비되는‘진지전’이라는 사고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문제는 그람시가 쓰는 ‘시민사회’개념은 매우 모호하고, 그에 대한 해석에 따라서 그람시의‘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실제 그람시의 진지전은 오늘날 포스트 맑스주의자들이 추진하고 있는 탈계급적인 운동이 아니다. 즉 기동전과 대비되는 진지전만을 특화시킨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페리 앤더슨은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은 세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고 본다. 첫째, 국가(강제력)와 시민사회(동의의 영역)를 나누고 동구와 서구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는 서구 혁명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바라보는 견해이다. 둘째, 국가와 시민사회를 구분(상대적 자율성)하지만, 부르주아의 헤게모니 구축은 국가와 시민사회 양자에서 진행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결합된 것으로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와 같은‘리바이어던’으로서의 국가관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 소위 신사회 운동(혹은 시민운동)론은 첫 번째 개념에 집중하면서 보비오의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위 테제’와 같이 결과적으로 그람시에 대한 우익적 해석의 길을 열어놓게 된다. 또한 세 번째 해석은 권력의 무한 확장 구조를 강조하는 것인데, 이는 저항 전략을 세우는데 난점이 있다. 왜냐하면 이는 소위 말하는‘포스트’적 해체 전략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모든 것이 권력인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역동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무정부적‘탈주’전략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알튀세가‘포스트모던’철학으로의 길을 열어놓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도 두 번째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국가의 계급적 성격은 명확히 하면서도 시회권력과 국가권력을 구분하여 계급투쟁의 결절점으로서의 국가와 국가장치를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부시 글룩스만은 그람시의 국가 개념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첫 번째는 좁은 의미의 국가로서 정치사회와 강제력에 의존하는 국가이고, 두 번째는 통합국가(혹은 확장국가)로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국가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고민들이 필요하며, 다시금 주목되어야하겠다.

그람시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 - 헤게모니론과 평의회·당

그람시의 시민사회에 대한 고민은 대항이데올로기의 정립과 정치적 지도력 창출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어 헤게모니론으로 발전한다. 레닌 역시 헤게모니 개념의 출발로서 ‘계급동맹론’을 제출했지만, 그람시는 이를 일상적 투쟁 속에서 집합의지를 창출하는 ‘대항’이데올로기와‘역사적 블록’을 구성해나가는 것으로 인식했다. 상상적 동일화(호명구조) 속에서 주체의 적극적 역할이 기각되는(의도와는 무관하게) 구조주의와는 달리 대항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제시한 것은 그람시의 탁월함이다.

문제는 헤게모니론을 정치적 지도력 구축 없이 역사적으로 구축되어 온 이데올로기 투쟁 또는 지적?윤리적 지도성의 문제로만 환원해버리는 것의 오류이다. 이 같은 입장은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가 기각되면서 단순한 등가물의 결합이라는 나이브한 정치적 결론을 도출 하게된다. 예를 들어 상탈무페의 ‘이데올로기는 토대로 환원되지 않는다’등의 언명은 이론적으로 ‘급진민주주의론’으로 한국에 수용되었고, 정치적으로 노동운동의 중심성을 전제하지 않은‘민주연합’에 의한‘평등민주주의의 구현’을 최종 목표로 삼게 된다. 이들의 전략은 그람시를 인용하여 맑스주의에 대해서는 경제주의 비판을, 그리고 레닌에 대해서는 계급환원론 비판을 수행한 다음 결국 그람시의 계급적 관점도 제거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람시는 대항 헤게모니의 정립과 더불어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적 지도력 창출의 문제에 집중했고, 여기에서‘현대의 군주’라고 불리는 당 개념이 도출된다. 그람시는 초기에‘평의회’운동을 강조한 경향과 달리 1921년 이후에는 평의회-전위당의 관계에서 당으로 중심점이 이동하게 된다. 이것은 많은 오해와는 달리 레닌주의자로서의 그람시를 바라보게 하는 핵심적 관건이다.

물론 그람시가 ‘평의회’운동을 강조했던 것은 대중의 자생성의 신뢰에서 비롯한 것이었으며, 당시 이탈리아노총의 제도화된 권력을‘평의회’적인 직접 민주주의적 투쟁을 통해서‘혁명성’을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그람시의 평의회에 대한 주목은‘꼬뮌’적 전통의 복원시키는 핵심이다. 이것은 즉 혁명에 대한‘권력 장악’적 사고에 대한 비판과‘대체 권력’의 구성과 형성 과정으로서의 혁명론을 정립하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의 사상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전위당 노선을 부정하는 평의회 혁명 전략과는 질적으로 차이를 가진다.

그람시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그람시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이 다르고,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는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은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부분은 시민사회의 발전에 주목하는 것과 그 속에서 대항헤게모니의 구축을 모색하는 것이다.

피티 헤게모니의 형성을 위한 역사적 블록의 건설, 그것에 복무할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과 새로운 정당개념, 사회주의이념의 단순‘주입’이 아닌 지적, 도덕적 개혁으로서의 이데올로기 투쟁, 시민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전위당, 그리고 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대중조직들의 건설 등이다. 이런 그의 문제의식은 전위당-기동전 개념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그람시의 독창적인 공헌이다.

필자는 그람시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만을 거칠게 언급하면서, 급진적 해석만을 강박적으로 제시했다는 필자의 해석의 한계를 알고 있다. 어쩌면 이는 그람시가 맑스, 레닌의 정치적 실천이라는‘명확함’을 견지하면서도 현실 운동의 풍부함으로 전유되어야 한다는‘의지의 과잉’때문이다. 나머지는 독자들이‘지성의 명료함’으로 채워주었으면 한다.

*
그람시의 저작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특히 옥중수고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람시를 읽기 전에 먼저 주세페 피오리의「그람시」, 칼 보그의「다시 그람시에게로」를 읽었으면 합니다. 역사적 상황과 그람시의 삶과 사상을 개괄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이전」「옥중수고Ⅰ,Ⅱ」를 읽었으면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넘어가면서 천천히 통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틈틈이 싸순의「그람시와 혁명전략」, 임영일 편「국가?계급?헤게모니」등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람시의 개념들을 외국의 연구자들이 잘 설명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그람시에 대한 다양한 독해들을 접하기 위해서는「안토니오 그람시의 단층들」,「 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 이론」등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이것도 모자라면,「 그람시의 여백들」등을 비롯한 다양한 책들, 그리고 학위 논문 등을 보세요.


심기혁|한때, 고려대를 다녔던 비정규직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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