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순정만화를 보았나?
영|edilia@hanmail.net
엄마는 나에게 눈에 별이 총총하고 리본과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은 공주님을 그려주곤 했다. 어릴 적 순정만화를 보고 따라 그리면서 배웠다 하셨다. 초등학교 어느 겨울방학에 엄마와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귤을 까먹으며《캔디캔디》,《베르사유의 장미》,《 인어공주를 위하여》,《굿바이미스터블랙》같은 고전들을 섭렵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노닥거릴 때는 종종 누가 들어도 로맨틱한 장면을 약간의 각색을 거쳐 이야기 했다. 우린모두 그 순정만화의 세계에 열광하며 이상형, 이상적인 연애, 심지어는 결혼에 관한 온갖 판타지를 질리지도 않고 그려냈다.
순정만화의 요소
순정만화는 여성들이 골방에서 키운 낭만적 판타지의 어떤 응결이자 매개로서 세대를 이어 내려왔다. 순정만화는 거의 완전히 여성의 장르이다. 순정만화 독자의 대부분이 여성이고, 순정만화를 그리는 대부분의 작가가 여성이다. 순정만화는 여성들이 맺는 관계와 경험,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감정을 이성애 로맨스 플롯에 따라 엮은 이야기와 여성의 시각을 재현한 그림체의 결합이다.(1)그러나 헐겁게 정의된 여성의 경험이라는 말에는《궁》,《 꽃보다남자》의 여고생부터《나나》,《허니와클로버》의20대 초반의 여성들까지 아주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이야기들은 요시나가 후미가 그리듯 낙관적인 여백을 가질 수도있고 키리코 나나난이 그리듯 빽빽하고 무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다양한 경향이 동일한 비중을 가지고 순정만화라는 장르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순정만화하면 떠오르는 플롯과 그림체를 가진 일군의 만화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양적으로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지지자는 아닐지라도-가장 많은 독자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만화들이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풍경을 그린다. 순정만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범한 주인공들
순정만화의 기본 공식은 ‘평범한’ 여자 주인공과 비범한 남자주인공이다. 누가 봐도 비현실적일 정도로 수려한 남자 주인공의외모는 순정만화를 조롱하는 이들이 즐겨 언급하는 요소 중 하나다. 그러나 사실 오랫동안 여성은 남성의 장르였던 소설과 영화, 미술 등 모든 문화적 양식에서 끊임없이 이상화되어왔다. 그곳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을 외롭고 상처투성이인 세계에서 따뜻하고 안정된 세계로 구원하기 위해, 성인(聖人)급의 인내와 자애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었다. 때로 그녀들은 단지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 명백히 보이는 육체적 매력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감성적 매력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기도 했다. 스크린 가득히 관음증적으로 클로즈업 되는 여성의 육체에 비하면 순정만화의 잘생긴 남자 주인공에 투영된 여성들의 욕망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들의 외모가 아니라 내면이다. 순정만화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캐릭터는 모든 것을 갖춘 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감정적으로 미숙한 남성이다. 그들은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고 운동도 잘하고 종종 공부도 잘하지만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결핍 때문에 그들은 부족할 것 없는 외면적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행하게 살아왔다. 이 지점에서 여자 주인공의 자리가 생긴다. 그녀는 성격도 똑 부러지지 못하고 외모도 크게 잘나지 않았지만-물론 독자들이 보기에는 예쁘다-감정에 대해서는 전문가이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으며 그 마음을 적절한 언어와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다.이런 능력과 지치지 않는 헌신 덕에 그녀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알더라도 어찌하지 못한 그의 상처를 치유하고 배타적이며 상호적인 연애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보면 평범한 여성이 비범한 남성을 만나게 되는 신데렐라 판타지이고 남성의 시각에서 보면 상처가 치유되는 성장스토리이지만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면 남자 주인공의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고 그의 애정과 상호적인 관계를 쟁취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진짜 비범한 건 여자 주인공이었다.
달달한 연애
순정만화의 재미는 현실과 판타지의 적절한 혼합에서 나온다. 현실의 문제를 제시하되 판타지로 해결하기. 현실에서 많은 여성들은 관계에 헌신하고 그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연애에서도 그렇다. 시작은 남성의 제안으로 시작했을지라도 그 관계를 가꾸고 이어가는 것은 많은 부분 여성의 몫이 되어왔다.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가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이성 간의 관계에서 여성들이 자주 부딪히는 문제 중 하나는 남성들은 그녀들이 어떤 기분이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려들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속상하거나 화가 나는 일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대개 그녀들의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 보다는 시덥지 않은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한다. 현실과 순정만화가 다른 점은 만화속의 여성들은 그녀들의 역할로 인해 지치거나 좌절하는 법이 없다는 점과 그녀들의 헌신이 언제나 보답 받는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감정노동 자체가 남성에게도 비교적 비슷하게 몫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이 첫 번째로 갖춰야 하는 조건은 물론 잘생긴 외모이지만 그들의 진짜 미덕은 바로 상대방에대한 집중이다. 그들은 비록 미숙할지언정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는 심드렁하지만 여자 주인공의 행동과 감정에 즉각적이고도 성실하게 반응한다.(2) 더하여 만화의 여러 장치가 상대방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지만 쑥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자세하게 알려주어 일종의 복선을 제공해준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마침내 소통하게 되는 두 사람의 감정노동이 순환하면서 흔히 달달하다고 표현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지나가듯이 말한 어떤 물건을 기억해두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선물한다든가, 얘기하지 않은 일을 알아채 미리 배려해준다든가 하는.(3)
지워진 성(性)
포털사이트에서“두근거리는 순정만화 추천해주세요”라는 요청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순정만화는 대리연애의 기분을 느끼게한다. 순정만화는 두 사람이 만나 연애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소소한 순간까지 재현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물들의 감정을 여러 가지 만화적 장치를 통해 섬세하게 묘사한다. 또 하나의 여성장르인 로맨스 소설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감정과 생각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말하는 양식은 보기 드물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럼에도 많은 순정만화에서 여성의 성적인 욕망과 경험은 거의 완전히 지워져 있다는 점이다. 처음 손을 잡고 처음 키스를 하는 장면들은 여러 컷이 동원하게 공들여 묘사되지만 그때 역시 성적인 느낌을 희석하는데 신경을 쓴다.(4) 한편 스킨십 장면의 단골 레퍼토리는 여성이 능동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혹은 못하는 상태에서 남성이 스킨십을 주도하는 장면인데, 이러한 상황은 여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욕망을 말할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여성에게 성이란 여전히 알 수 없이 위험하고 위협적인 어떤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순정만화의 플라토닉함은 여성이 성적 욕망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와 여성에게 폭력적인 성애의 각본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이 결합된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를 가장 잘 표상하고 있는 장르가 일반적인 순정만화보다 더 배타적인 여성장르인 야오이다. 여성들의 포르노라 불리는 야오이는 동성애로 포장된 순정만화와 포르노의 결합이다. 야오이에 등장하는 남성들은두 가지 의미에서 야오이를 창작하고 수용하는 여성들의 심리적인대리물이자 방어 장치이다. 야오이는 남성들을 성적 욕망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내세움으로서 여성들이 직접 이야기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성적 욕망을 남성의 입과 몸으로 표현하게 하는 한편 여성의 존재자체를 지움으로서 일반화된 성적 폭력에서 스스로를 비껴가게 한다. 이로서 여성들은 강간판타지, 가학적이고 폭력적인성애로 가득한 야오이를 큰 부담없이, 때로는 자리바꿈으로 일어난 일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게 된다.(5) 이렇게 야오이는 순정만화가 비워 놓은 성적인 공간을 창조한다.
20대의순정만화, 20대의판타지
순정만화에는 여성들의 바람과 도피, 성장과 퇴행이 절묘하게 녹아 들어가 있다. 이건 삶의 어떤 부분을 과장하거나 지움으로써 만들어진다. 순정만화가 그리는 세계에 공감하고 몰입하는 일은 마치여행과 같이 일시적으로 일상과 단절하는 경험과 비슷하다. 순정만화를 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순정만화는 판타지의 세계에 지어진 집이다. 그 판타지는 독자에게 공감되어야한다. 여기서 20대 여성 독자의 갈등이 생긴다. 순정만화의 본류는‘순정’이라는 말이 원래 그렇듯이 운명처럼 만나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만화들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대개 10대인까닭은 첫째, 순정만화의 주 독자층이 그들이기 때문이고 둘째, 상대와 나 둘 밖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고 해도 되는 때가 십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신의 격정적인 감정 때문에 아무리 괴로워한들 이로 인한 일탈이라는 건 학교를 며칠 안 가거나 바다로 훌쩍 떠나는 것이다. 이런 일탈은 살아가는데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 몇 주간 가출을 할 수도 있다. 교사나 부모가 화를 낼 것이다. 그러나 만약 회사원이라면? 당장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이달 집세 걱정을 해야 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 있을거야”라는 대사를 보고 ‘그건 좀 아니잖아’하는 생각이 들 때, 더 이상 지금까지처럼 순정만화를 즐기기는 어려워진다.
순정만화라는 장르 자체의 폭과 독자층이 넓어지면서 20대여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만화들이 등장했다. 여성만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만화들은 말 그대로의 ‘순정’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성장한 여성들의 경험을 보다 다양하게 다룬다. 이들은 대학생이기도 하고 프리터이기도 하고 회사원이기도 하고 자영업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연애, 동거, 결혼, 집세, 직장 내 동료들 간의 갈등, 커리어, 부모, 불안정한 일자리 등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고민한다. 그런 그녀들에게 이 만화들은 순정만화의 단골 위로 레파토리, “무리하지 않아도 돼, 너는너 다운게 좋으니까”하는 미지근한 말 대신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줄 알아? 어리광 피우지 마”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녀들은 여전히 무르지만 많은 20대들이 느끼는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 해마다 나이는 먹는데 여전히 사는건 어렵고 미래가 보이지 않음에도 내 삶은 내가 결정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 같은 것. 주인공과 독자를 둘러싼 조건이 달라지니 판타지의 내용도 달라진다. 작지만 내가 꾸려가는 가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어른스러운 애인-직장 상사일수도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
순정만화의 판타지가 여성들이 꿈꾸는 외부세계에 대한 모습을 그려왔다면 순정만화의 여자 주인공들은 여성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삶의 지침 같은 것을 표현해왔다. 10대의 그녀들은대체로 결단을 잘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다. 그녀들은 주위의똑 부러지고 자존감 강한 여성을 보며 자괴감을 느낀다. 한편 그녀들은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 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며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을 때 충족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들의 시야는 타인을 향해있다. 그러나 또한 이들은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 혼자 일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러한 소망은 그녀들이 자라 20대가 되자 더 뚜렷이 나타난다.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상대방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다는 외부지향적인 태도에서 멀어진 만큼 스스로에게 눈을 돌린다. 그리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롤모델을 향해 걸어간다. 자신을 긍정하고 솔직하며 당당한 사람.(6)순정만화는 감정적으로 풍부하고 솔직하며 타인을 살피는 따뜻한 품성을 귀여움 혹은 사랑스러움으로 등치시키며 여성이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로 제시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자아의 내부와 외부 모두에 집중하고자하면서 일어나는 갈등의과정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파라다이스 키스》의 유카리처럼 착하지 않은 여자 주인공도 태어나게 되었다.
판타지는 진전한다
지금으로부터 삼십년전《캔디캔디》, 《베르사유의장미》같은 만화가 등장하면서 순정만화라는 장르가 탄생했다. 화려한 성과귀족, 레이스가 달린 옷 같은 이국적인 문화와 격정적인 로맨스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 많은 여성, 특히 소녀들이 열광했다. 이걸 판타지로의 도피이자 퇴행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만화의주인공들은 여러 가지 억압적인 외부의 조건에도 자기 삶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여성상을 보여주었다. 비록 캔디의 일생의 꿈이포니 동산의 왕자님을 만나는 것이었고 오스칼은 애인이 죽자마자 휘청거리다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죽음을 맞이했다 해도 말이다. 시간이 흘러 순정만화사라는 책장은 여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녹여낸 작품 몇 권과 여성을 툭하면 넘어지고 얼굴 빨개지는 바보 비슷하게 그린 수많은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순정만화가 판타지로 포장되었을지언정 여성들에게 다른 매체가 주지 못한/않은 관심과 위로, 그리고 격려를 주었다는 것과 만화 속의 그녀들이 현실의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박제된 여성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성취를 일궜다는 것이다. 순정만화의 판타지는 현실이 진전해감에 따라 함께 진전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판타지 통해 얼마간의 활력과 얼마간의 위로를 얻으며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