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촛불집회는 한국 정치 지형의 새로운 국면으로 등장하였다. 환히 타오른 촛불이 바꾸어낸 것은 무엇인가? 찬양과 패배감이 공론장을 스치고난 자리에 질문이 남는다. 현 국면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주체가 탄생할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가능성은 어떻게 환기될 수 있겠는가? 이번 정치철학 연재에서는 정치적 주체의 역사와 전망을 짚어보려 한다. 지난 9월호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사회운동의 주체 담론을 개괄하고, 기존의 주체 담론들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검토하였다. 10월호에서는 저항 주체에 관한 현대 정치철학 개념들을 개괄해 보았다. 이번 마지막 연재에서는 최근의 정세와사회운동을 돌아보며 그 개념들의 유효성과 한계를 정리해 보고, 새로운 정치의 조건과 가능성을 진단하려 한다
.대중운동 이후의 사회운동
김정한|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multitude@naver.com
돌이켜보면 2008년 촛불항쟁은 예상하지 못한 열정과 희망을 불러일으켰지만, 다소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했던 2009년은 지난 촛불항쟁이 마치 한낱 꿈이었다는 듯이 고요하게 저물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법한‘촛불 시즌2’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에 걸친 전투적인 공장점거는 무참히 진압되었으며, 아직도 용산참사는 정부의 전술적인 냉대와 무시 속에서 어떤 돌파구도 찾지 못한 채 고단한 좌절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촛불-용산-쌍용차’라는 계열화는 사회운동을 위한 어떤 유의미한 정세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또한 주체적인 측면에서는 ‘대중들-도시빈민-공장노동자’라는 계열화의 (적어도단기적인) 실패를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운동의 한계
생산관계의 주체-위치를 강조하는 사회구성체론에 따르면 공장노동자는 여전히 핵심적인 주체이다. 그리고 사실 현 정세에서 가장 강력한 운동세력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된 대기업 남성노동자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고독한 섬’이 되었다. 심지어 사회적 파급 효과를 발휘하기는커녕 민주노총 산하에 있는 다른 사업장의 조직노동자들과조차도 적절히 연대하지 못하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것을 단지 연대 정신의 부족 때문이었다는 도덕적 비판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폭풍 속에서 공장노동자들은 더욱더 자기 기업의 생존 질서에 예속되어 가고, 노동자들 간의 연대(통일)보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분열)을 향해 몰려가고있다.(각주:(1) 랑시에르가 말하는‘몫이 없는 자들의 민주주의’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이 연대에 대한 고민이다. 랑시에르는 몫이 없는 자들 사이에 어떻게 연대가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도시빈민과 영세상인은 사회구성체론에서 핵심 주체는 아니다. 공장노동자라는 주력군의 중요한 동맹세력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쁘띠부르주아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에 강력한 반체제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취급된다. 반면에 헤게모니 이론에 따르면 도시빈민과 영세상인은 자신의 특수한 입장을 사회적 보편성으로 구성하는 헤게모니적 실천을 통해 핵심 주체로 부상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부동산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에서 도시재개발 비판과 기초 생존권 보장이라는 담론은 보편성을 구축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것은 그저‘그들’의 특수한 문제로 여겨졌을 뿐, ‘우리’의 보편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정리해고 반대와 고용안정은‘우리’의 보편적인 문제였겠지만, 쌍용차 노동자들의 점거파업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싸움이라고 여겨졌을 뿐이다.
사회운동의 구조적 무력화
넓게 보면 생산관계의 주체-위치도, 헤게모니적 실천도 그에 적합한 저항 주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현 상황은 전반적인사회운동의 약화를 드러내는 징후이다. 이는 지배세력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운동이자신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사회 구조가 붕괴되고 있기 때문임을 함의한다.
사회 질서의 진보적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개혁적이든 변혁적이든 해당 사회에 내재하는 구조적 폭력을 완화 내지 제거하려는 전망을 설정하고, 이를 위한 담론과 전략∙전술을 개발하면서 교육하고 실천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어떤 사회운동이 등장하는 초기에는 그것이급진적일수록 지배세력과 격렬한 충돌을 일으키고 심지어 지배 질서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사회운동은 점차 사회적으로 제도화된다. 이는 사회운동의‘성과’이면서 동시에 지배세력이 사회운동을 체제 내부로 ‘포섭’하는 이중적 결과이다.
예를 들어 노동운동이 그렇다. 초기 자본주의의 형성시기에 자본의 초과착취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은 불법 폭력이자 폭동에 가까운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국가와 노동 간의 대결에서 노동이‘승리’한 이후에는 파업이 노동자의 법적 권리로 승인되고 노동조합을 통한일상적인 노동력 보호 활동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런 제도화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노동조합 활동에 법적∙절차적 제한 규정을 도입하여 그‘급진성’을 희석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오늘날 한국에서처럼 법적 문서상의 허용과 현실적 탄압 사이의 괴리가 비상식적인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부지기수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기존의 사회 질서에 도전하는 사회운동이 등장한 후 일정한‘승리’와‘성과’에 힘입어 제도화되거나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전성기를 지나고 나면, 이번에는 동일한 제도화의 효과로 인해 사회운동이 애초의 급진적 활력을 상실하고 체제내화하거나 또 다른 기득권세력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이는 사회운동의전반적인 쇠퇴를 동반한다. 이런 전체 과정을 사회운동의 하나의 순환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월러스틴은 서구의 사회운동에서 나타난 이런 순환의 연대기를‘1848년 혁명(초기)-1917년 혁명(전성기)-1968년 혁명(쇠퇴기)’이라고 구분하면서, 1968년 혁명은 기존의 사회운동이 1989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종언하고 새로운 사회운동의 개시를 알리는 예행연습이라고 평가한 바있다. 아마 한국의 경우에는‘1980년 광주항쟁(초기)-1987년 6월 항쟁(전성기)-1991년 5월 투쟁(쇠퇴기)’이라는 작은 순환의 연대기를 그려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근 사회운동의 약화는 단순히 제도화의 효과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제도화된 민주노총의 내부 비리와 부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조합원 이기주의를 무시할 수는 없으며, 김대중의 국민정부와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기에 정부와 유착관계를 맺어온 시민운동의 한계를 간과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는 보다 구조적인 전환이 존재한다.
어떤 사회운동이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조적 폭력이 제대로 작동하는 한에서 효과적이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구조적 폭력이‘정상적으로’기능하지 못한다면 그에 대항하는 사회운동도 자신이 의도하는 효과를‘정상적으로’획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기존의 사회운동들이 보여주는 전반적인 약화와 퇴조의 근저에 자리한다. 어쩌면 작금의 정세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구조적 폭력의 일정한 작동 불능과 그에 따른 사회운동의 무력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적 폭력의 대표적인 세 가지 형태는 근대 국가가 독점하는 합법적 폭력, 자본주의적 초과착취, 상징적 동일성(identity)의 구성에서 나타나는 상징적 폭력이다.(각주:(2) 보다 자세한 설명은 김정한(2008) 참조. (http://esaram.org/2008/webbs/view.php?board=esaram_8&id=174&page=1)) 근대 국가는 개인과 집단의 사적 폭력을 통제하고 외세의 침입을 방어하여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지만,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법의 이름으로 공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자본주의는 봉건적인 경제외적 강제를 폐지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상품 교환의 담당자로서 시민들을 형성하지만, 생산관계에서 노동력을 초과착취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동원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생존을 끊임없는 위험에 노출시킨다. 상징적 폭력은 개인을 민족으로 호명하거나 사회의 정상적인 규범과 규칙을 개인에게 습득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성별, 종교, 연령, 직업 등과 관련하여 자유롭고 다양한 개인성들을 억압하거나 규율화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정세는 이와 같은 구조적 폭력이 적절히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을 빚어내고 있다. 요컨대 금융자본이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구조 외부의 폭력을 추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수많은 인구들은 국가의 치안과 행정에서 방치되거나 시민권이 없는 이주민으로 떠돌고 있고, 물질적 생산이 아니라 금융투기에 몰두하는 자본에 의해생산관계 외부로 배제되어 착취조차 당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상징적 동일성의 해체는 적합한 사적∙공적 윤리가 무너진 병리적 주체들을 양산하고 있다. 말하자면 과거에는 구조 내부로‘포섭’하여 구조적 폭력을 통해 구조를 재생산하는 체제였다면, 지금은 구조 외부로‘배제’하는 구조 외부적 폭력으로 구조 자체가 와해되고 있는 체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포섭’에서‘배제’로의 이행은 사회 구조만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에 맞서 구조를 개혁하거나 변혁하려는 사회운동도 무력화시킨다. 국가의 폭력성을 제어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호소하거나, 자본의 초과착취에 대항하여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거나, 상징적 폭력을 완화시키기 위해 차이에 대한 존중을 요청하는 기존의 사회운동들은 구조외부의 폭력이 범람하는 가운데 자신의 목표와 전략∙전술을 급격히 상실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조와 구조적 폭력이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구조 내부에서 전개할 수 있는 일체의 정치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구조 외부의 폭력에 대항하여 과거와 같은 국가와 자본의‘정상적인’활동을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인발상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는 형국이다. 예컨대 대의민주주의조차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변혁하기보다는 차라리 대의민주주의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논리에 힘이 실리게 마련이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착취조차 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쓰레기가 되는 삶’(각주:(3) 참고할 만한 책으로서 지그문트 바우만의『쓰레기가 되는 삶들』이 있다. 이전의 빅브라더가 사회통합과 정렬∙포섭을 강조했다면, 오늘날의 빅브라더는 전방위적 감시체계를 통해‘쓰레기’를 배제하고 쫓아내는 데 열중하며, 따라서 인간에게 매사∙매일이 ‘도전’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편집자 주)을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착취라도 당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정상적인’국가와‘정상적인’자본주의가 오히려 낫다는 식이다. 이런 경향은 아마도‘경제위기의 세계화’와 더불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대중운동의 회귀
이렇게‘배제’가 일반화되고 기존의 사회운동이 무력해지는 정세에서 회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대중운동이다. 물론일반적인 용법에서 사회운동과 대중운동은 잘 구별되지 않는다. 대개 대중운동은 사회운동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분과학문에서 대중운동이 독자적인 정치 현상으로 다뤄지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멸하는 대중운동은 사회운동 못지않게, 또는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파괴력으로 사회 전체를 강타하는 힘(역량,puissance)을 갖고 있다.
이런 대중들의 힘에 일찍이 주목한 것은 대중운동에 공포를 느낀 보수적 담론이었고, 이들의 분석 개념은‘군중’(crowd)이었다. 이에 따르면,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이며 어리석은 군중은 사회 질서를 무모하게 파괴할 뿐이다. 그러나 혁명적 담론에서는 동일한 대상을‘대중(들)’(mass 또는 masses)이라는 개념으로 지칭하면서, 때로는 (로자처럼) 급진적 자발성을 옹호하고 때로는(레닌처럼) 자발성의 한계를 비판하곤 했다. 이것이 최근 프랑스 철학계에서 스피노자 연구의 부흥과 더불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고, ‘대중들’에 해당하는17세기스피노자 시대의 용어인 ‘물티튜도’(라틴어 multitudo;영어 multitude)도 복권되었다. 이를 네그리가 주도하는 자율주의(Autonomia)에서 새로운 해방적 정치 주체로서 ‘다중’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물티튜도’를 번역하는 가장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의미를 담은 용어가‘군중’이라면, 가장 긍정적인 찬양의의미를 담은 용어가‘다중’인 셈이다. 그러나‘물티튜도’는 늘 수동적이면서도 능동적이고, 보수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양면성을 핵심적인 특징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예컨대 발리바르처럼 복수형으로서‘대중들’(masses)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이와 같은 대중들-대중운동의 회귀는, 구조 외부의 폭력으로 인해 사회 구조가 붕괴하고 사회운동이 무력해진 정세에서 그것이 자신들의 주장과 요구를 상연할 수 있는 거의유일한 형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오늘날 내기에 걸려있는 것이 사회 자체의 재구성이며, 이로부터 구조 외부적 폭력에 의해 배제된 대중들을 (재)포섭하지 못한다면 인류역사가 극단적 파국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음을 함의한다. 그러나 대중들은 결코 자율주의에서 얘기하듯이 하나의 주체(다중)가 아니며, 그들이 만들어갈 역사의 방향은 낙관적이기는 커녕 아직은 예측할 수조차 없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순환을 위해
이 에세이의 제목을 ‘대중운동 이후의 사회운동’이라고 붙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8년 촛불항쟁이 대중운동의 회귀를 보여줬다면, 용산-쌍용차는 구조적으로 무력해진 사회운동의 징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중운동(촛불)-사회운동(용산, 쌍용차)’의 계열화는 (적어도 아직은) 서로 어긋나 있다. 이런 어긋남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론 사회운동의 재구성이다. 대중운동이 제기한 의제와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조직, 사상, 대항이데올로기 등을 실험하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순환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다소 막연했을지라도, 대중운동(촛불)이 현실 정치,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정치,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었다면, 그것은 구조적 폭력과 구조 외부적 폭력에 동시에 대항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각주:(5) 발리바르가 제시하는‘반폭력의 정치’가 여기에 하나의 길을 보여줄 수 있다. 그는 구조적 폭력만이 아니라 구조를 넘어서는 극단적 폭력을 제거하려는 ‘반폭력의 정치’가 현 정세에서 시급히 요청되며, 이를 위해서는 폭력적 갈등을 제어하는 시민인륜(civilité, 시민권과 공적∙사적 윤리를 함의하는 합성어)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Balibar 1995, 2007).)
알튀세르는 계급이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에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 과정에서 계급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맑스 또한 프롤레타리아트는 먼저 계급이아니라 대중이며, 다양한 단계를 경과하면서 계급으로 형성되어 간다고 말한 바 있다.(Marx 1991. 408-409) 오늘날의 정세에서 새로운 저항 주체의 형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저항하다.(각주:(4) 이를 분석하는 가장 근접한 분과학문이 집합행동(collective behavior) 이론이다. 그러나 다양한 집합행동론의 문제틀은 개인들이 집합행동에 참여하게 되는 조건을 해명하는 데 있기 때문에, 대중운동 자체를 분석하기보다는 집합행동을 전개하는 개인들의 심리적 조건이나 동원 가능한 자원의 보유 여부 등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는 대중들을 개인들로‘분해’해서 이해하려는 어긋난 이론적 접근이다.) 대중운동은 우발적인 사건을 통해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발적이고 비조직적으로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대규모 투쟁을 전개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특정한 이해관계에 기초해 동원된 사람들이 비교적 장기적인 목적을 갖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얼마간 정형화된 실천을 전개하는 사회운동과 대비된다. 그러나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분출했다가 금세 소주체가 먼저 등장하고 그 다음에 사회운동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운동-사회운동의 계열화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다양한 실험과 실천 속에서 새로운 저항 주체는 장기적으로, 어쩌면 부지불식간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세는 촛불이라는 대중운동에 내재되어 있는 새로운 저항의 잠재성을 어떻게 해독할 것인지가 여전히 가시적이지 않다는 지평의 한계에 갇혀 있다. 이시점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의 윤리이다. 이를 바디우를 따라‘사건에 대한 충실성’이라고 이름 붙여볼 수 있겠다.(Badiou 2001, 84) 사건이란 우연적이고 예측불가능하며 나타났다가 곧바로 사라지지만, 기존의 상징질서에 이질적인 것이며 다른 것을 도래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은 기존의 상징 질서에 구멍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상징 질서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나 가시적이지 않았던 새로운 존재 양식과 가능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사건은 금세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사건이 나타나는 진리의 순간은 객관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사건에 대한 충실성이 하나의 윤리로서 필요해진다. 사건에 대한 충실성이란 사건에 내재해 있는 원리, 그 사건이 짧은 순간에 드러낸 새로운 가능성을 타협하지 않고 충실하게 지속적으로 탐구해나가는 주체적 과정을 가리킨다. 주체는 결코 과정에 앞서 존재하지 않으며, 사건에 대한 충실성을 일관적으로 견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촛불이라는 사건은 한낱 꿈처럼 사라졌지만, 촛불-사건에 대한 충실성을 통해 그것이 열어낸 새로운 정치의 잠재성을 해독하고 이를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구성해나가려는 주체적 태도가 새로운 사회운동과 새로운 저항 주체를 도래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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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대 총학생회 선거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지영|편집위원|bokshoong@gmail.com
올해는 참 선거 분위기가 안 나는 것 같아,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제43대 고려대 총학생회 총학생회장단 선거는 과연 그러했다. 색색의 점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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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젊은고대 총학생회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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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뮌 |
788 | 2009-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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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고대 총학생회가 남긴 것
세종|편집위원|halbschatten@gmail.com
1년 전 그때는43대 총학생회 선거가 끝난 지금, 42대 총학생회 선거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최근까지 총학생회의 역할 가운데 사회참여와 복지를 대립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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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총학생회, 어떻게 생각하세요? | |||
꼬뮌 |
654 | 2009-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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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문 고대문화는 지난11월 23,24일, 이틀에 걸쳐 전교 학우들을 대상으로 ‘총학생회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몇몇 학우들이 설문문항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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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도비라] 풍요 속의 빈곤 - 43대 총학생회 선거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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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뮌 |
1112 | 2009-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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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돌고 도는 총학생회 선거지만, 올해는 선본이네 개나 출마하여 모처럼 활기가 넘칠 듯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학교 분위기는 그 어느 선거철보다도 조용했고, 선거일정 막바지와 개표에 즈음해서는 후보자들끼리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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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교우회비 강제납부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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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뮌 |
868 | 2009-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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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회비 강제납부를 거부한다
지원│편집위원│senor.sim@gmail.com
#.scene
졸업까지 한 학기만을 남겨둔 고려대학교 학생 K씨는, 교우회비 3만원이 수업료와 함께 필수납부 항목으로 묶여 있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든다. 딱히 교우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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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함성, 마음을 울리는 우리의 노래 | |||
꼬뮌 |
706 | 2009-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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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마음을 울리는 우리의 노래
유미│편집위원│seoym97@gmail.com
‘민중가요(이하 민가)’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민가는 대학에 처음 들어와 맞는 행사인 새내기 새로배움터나 대동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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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리뷰]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 |||
꼬뮌 |
678 | 2009-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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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1. 헌법 제31조 3항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앗. 헌법에 쓰여 있네요. 교육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은 무상으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상교육이란 ‘학생에게 일체의 경비를 부담하게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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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 보는 사진] 폐지전쟁, 학내미화노동자의 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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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뮌 |
1043 | 2009-12-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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