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놀이보다 중요한게 있다!

—미디어법 판결을 둘러싼 담론 엿보기

세종│편집위원│halbschatten@gmail.com



‘헌재놀이’

“대리시험을 쳐도 결과는 유효하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관련 권한쟁의심판 판결이 나온 순간, 여론의 반응은 이렇게나 싸늘했다. 판결이 나오자“절차는 위법하나 결과는 유효하다”라는 수사가 언론 지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에 헌법재판소 사무국장은“헌재는 미디어법이유효하다고 한 적이 절대 없다”고 주장하면서, 언론의 보도를 질타하기도 했다. 유효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무효는 아니란 말인가? 이 글에서는 언뜻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이는 이번 판결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아보고,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어떤 것으로 보아야 할지를 살펴보려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겠다.

헌법재판소의 역할 — 권한쟁의심판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는 87년 만들어진 제9차 개정헌법에서 도입되어 8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기관이다. 독재가 막 끝난 시점이었으므로, 기존의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었던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대신 입법부와 사법부를 강화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 기본권 보장 및 권력분립 강화의 일환으로 헌법재판소가 도입되었다.(각주: 물론 제2공화국 헌법에 헌법재판소를 설치한다는 조항이 있었으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설치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헌재는 법률의 위헌여부, 탄핵, 정당해산, 국가기관 간 권한쟁의, 나아가 헌법소원까지를 심판하는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다. 이러한 권한들을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기관이면서도, 그 구성방식에 있어 민주적 원리를 비껴나 있다.(각주 : (2)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명권은 대통령, 의회, 사법부에 각각 3인씩 나눠진다. 여기서 특히 사법부, 즉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헌재 재판관의 경우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표와 책임의 고리에서 이탈해 있다는 지적이 가해질 수 있다.)이러한 기원상의 맹점은 들쭉날쭉한 판결로 드러나 왔다. 헌재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관습헌법’을 도입하는 등 대단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안에 대한 헌법소원의 경우에는 청구인 자격을 좁게 해석해 곧바로 각하하는 등 과도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바도 있다.

이번 미디어법 사건에서 쟁점이 된 것은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간의 권한쟁의(각주: 미디어법 통과 과정에서는 국회부의장이 국회의장 권한을 대리하였다. 그러나 이는 직무를 대리한 것에 불과하고 법적 책임과 권한을 지닐 수 없으므로 이번 심판의 대상은 국회의장이 되었다.)였다. 국회의장이 국회의원의 심의 및 표결권을 침해했음을 가리고, 그렇게 통과된 법률의 유효/무효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이른바‘날치기 통과’는 빈번하게 헌법재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가운데 최초의 심판대상은 90년 7월 벌어진 민자당의 법률안 날치기통과사건이었다. 헌재는 이를 각하했는데, 국회의원을 권한쟁의심판 청구의 기본권을 가진 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1995. 2. 23. 90헌라1, 유사판례: 91헌마231). 하지만 96년 12월 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사건에 대해서는 전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개별 국회의원의권한쟁의심판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는 사실까지는 인정했지만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판결을 통해 기존 정치질서를 뒤집지 않은 것이다(1997. 7. 16. 96헌라2).

법률안 수정안 처리사건(2006. 2. 23. 2005헌라6), 사학법 사건(2008. 4. 24. 2006헌라2)에 대한 판결 역시 절차상 잘못은 있으나 사안을 뒤집기엔 부족하다는 마찬가지 논리로 이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판결(2004. 5. 14. 2004헌나1)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탄핵의 사유는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는 헌재의 위상과 역할로 인해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미국의 법률가이자 정치인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법원을 표현한 말처럼 “칼도 지갑도 없는”기관으로서, 헌재는 그것의 존재근거와 집행력을 외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는 정치적 갈등을 가급적 피하면서 동시에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영역을 마련하려 하게 된다. 따라서 정치적 판단에는 대세를 따르는 소극적인 역할을 이전에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디어법 판결을 바라보면, 그것이 전혀 새롭지 않은 판결임을 알 수 있다.

미디어법 사건에 대한 헌재 판결의 논리

law.jpg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판결 요지를 살펴보자. 우선 이번 판결의 대상은 2009년 7월 22일 개의된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신문법안, 방송법안의 가결을 선포한 행위였다.((각주: 판결의 대상에는 금융지주회사법안과 인터넷멀티미디어법안(IPTV)도 포함되어 있으나 재판관 전원이 유사한 판단을 내려 따져볼 만한 쟁점이 없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것이 의사절차(제안취지 및 질의토론)에 하자가 있거나 대리투표(무권투표)가 있었는가, 그래서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는가, 최종적으로는 가결의 선포행위가 무효인가를 따지는 것이었다. 우선 신문법안에 대해, 헌재는 제안취지가 비록 구두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컴퓨터를 통해 접근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의사절차에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질의 및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인들의 질의토론권이 침해되었음을6대 3으로 인정하였고, 대리투표 등으로 표결절차에 헌법적 정당성이 부족하고 따라서 청구인들의 표결권이 침해되었음을 5대 4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결론부에서, 권력분립과 국회 자율권 존중을 위해 사후의 조치는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하여 해결할 영역에 속한다는 이유로 무효확인청구는 기각되었다. 방송법안 통과과정의 경우, 우선 의사절차에서는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 5명, 하자가 있다는 입장이 4명이었다. 한편, 일사부재의(一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