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회비 강제납부를 거부한다

지원│편집위원│senor.s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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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까지 한 학기만을 남겨둔 고려대학교 학생 K씨는, 교우회비 3만원이 수업료와 함께 필수납부 항목으로 묶여 있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든다. 딱히 교우회비를 왜 내야하나 싶지만, 그렇다고 필수납부항목에 버젓이 들어있는 교우회비를 무시하자니 학기등록이 아예 안 되어 어쩔 수 없다(게다가 이미 300만원이 훌쩍 넘는 등록금에 비해 3만원이 그리 대순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K씨는 잠깐의 고민을 뒤로 한 채 교우회비가 포함된 등록금을 결제한다. K씨는 이로써 ‘자연스럽게’ 교우회비를 냈고, 교우회의 정식적인 일원이 되기를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된 것이다.

재학생이 졸업생 모임에 회비를 내야 된다구요?

현재 고려대학교를 포함한 대다수의 대학들은 동문회비를 졸업 예정학기 재학생에게 필수납부항목으로 걷고 있다. 심지어 몇몇 대학들은 동문회비 재원마련을 위해 신입생들의 등록금에 교묘하게 동문회비를 포함시키곤 했다. 이에 2006년 경기대 학생 17명은 신입생들을 상대로 동문회비를 강제징수한 것에 대하여 부당이익금반환소송을 걸었다. 당시 재판부는“동문회원 자격은 대학 졸업 후 얻는 것이므로 회원이 아닌 신입생은 동문회비를 낼 필요가 없다”며 “잡종금 명목으로 동문회비를 청구하는 것은 사실상 회비를 강제적으로 납부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결함으로써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졸업예정자와 신입생에게 동문회비를 필수납부케 하는 것은, 재학생에게 졸업생 모임의 회비를 청구하는 모순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오히려 졸업예정자들에게 교우회비를 강제징수하는 것은 졸업 후의 진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다. 학생들은 교우회비에 불만이 있더라도 그것을 내지 않으면 아예 학기 등록이 되지 않고 졸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군더더기가 붙어있는 등록금을 납부한다. 이런 상황은 학교 측에서도 한결 이용하기 편리한데, 졸업예정자는 한 학기 후 떠나므로 학내에서교우회비 강제납부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교우회비 강제납부와 관련된 운동은 2008년도에 꾸려졌던‘교우회비 강제납부 거부선언을 위한 모임’이 최초였고, 그나마도 인원이 지나치게 적었고 문제제기의 주체 대부분이 곧 졸업을 앞둔 학생이었다는 점에서 금방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런 연유로 대체로 당사자들 외에는 졸업학기에 교우회비를 필수납부해야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조차 적었기에, 이 문제는 언제나 당사자들 개인에게 스리슬쩍 다가와서 약간의 찝찝함을 남긴 후 졸업 후엔 곧 사라져왔다. 그리고 학교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모든 졸업을 앞둔 재학생들로부터 교우회비를 조용히, 잘, 걷어왔다.

소속-지지할 집단을 선택할 권리

교우회가 재학생에게 교우회비를 일괄 징수하는 것은 졸업생도 아닌 자가 졸업생들의 모임에‘회비’를 납부한다는 것 이외에도 다른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회비를 납부한다는 것은 곧 그 집단에 소속되고 해당 집단의 존재 의의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생회비는 선택 납부이다. 물론 학생회비를 내지 않아도 학생회의 일원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회비를 낸다는 것은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집단에 속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교우회 집단의 성격이 현재의 강제납부 체계를 정당화할 만큼 고려대생 모두 당연히 자연스럽게 동감할 수 있는 바인지는 의문이다. 현재 교우회는 학연으로써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부 졸업생들만의 카르텔 정도의 성격을 지닌다. 2007년 말 교우회보는 BBK문제와 관련해 도덕성 관련 의혹을 받고 있던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를 옹호하는 동문 기고문을 싣고, 타임지가 이 후보를 환경 영웅으로 선정했다는 등 그의 ‘치적’을 기리는 글을 실어 현대판‘명비어천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문제의 교우회보는 평소 발행 부수인 8만 부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약 21만 부가 제작되어 재학생과 학부모, 교우회비 미납자에게도 발송되었고, 결국 당시 교우회장과 교우회보 편집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교우회는 졸업생, 그것도 교우회의 세력을 더욱 넓고 견고하게 해줄 수 있는 일부 교우회원의 내적 이익을 수호하는 단체에 불과하다. 이런 교우회의 정치성은 일부 학생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다. 어째서 재학생은 자신이 속하지도 않은 단체에, 그것도 자신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을 수 있는 단체에 자동적으로 회비를 납부할 것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물론 그럼에도 교우회의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은 자진해서 교우회비를 납부할 권리가 있다. 동시에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납부를 거부할 권리 또한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고려대학교 재학생에게는 교우회비 강제납부로 인해 반대자들의 선택권이 박탈된 상황이다.

학생 vs 학교

교우회비 강제납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에 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학교 측의 답변은 언제나 애매모호하거나 변죽을 울릴 뿐이었다. 교우회비가 ‘재학생들을 위해서 쓰인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사용 내역은 공개될 수 없기’ 때문에 재학생들은 정확히 그것이 어떤 곳에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학교와의 직접적인 문제라면 학생이 학교에 공식적으로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 있는 통로라도 만들 수 있지만, 재학생에게 ‘외부집단’인 교우회에는 직접적으로 그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할 통로 자체가존재하지 않는다. 올 해 여름 몇몇 졸업예정자들은 재무부에 교우회비 필수납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으나 재무부로부터 “일단 내고 (교우회비를) 환불 받으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교우회 측에서는 이와 관련해 재무부가 잘못된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하며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필수납부를 하고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돌려받으라.’는 말은 애초에 학교 측에서 선택납부와 관련된 학생 측의 문제제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졸업을 하면 당연히 교우회의 일원이 될 것’이므로 좀 미리 내는 것이 어떠냐는 논리도 횡행한다. 고대생은 재학생 졸업생 할 것 없이 모두 ‘한가족’이라는 다소 낯뜨거운 단어까지 전면에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교우회는 졸업생 교우를 대상으로 연회비 선택납부를 시행하고 있다. 즉 고려대 졸업생이라 할지라도 연회비를 지속적으로 납부할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하여 교우회에의 지속적인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졸업생에게조차 회비납부가 ‘선택’인 상황에서 재학생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회비를 강제징수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 의한 것인가? 지난 2009년 하반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교우회비필수납부 거부와 관련된 문제가 기타 논의 안건으로 상정, 과반수 동의를 얻어 통과되는 등 이와 관련한 학생들의 반대가 점차 수면으로 오르고 있다. 교우회비 강제납부 거부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강제납부 대책위)가 10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에 정식적으로 이에 대한 반박문을 보냈고, 재무부에서는 이것은 재무부 관할이 아니니 학생처와 얘기해보라는 말을 했다. 이로써 교우회비 강제납부와 관련한 문제는 학생처로 그 담당이 옮겨졌다. 이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 창구를 열어주겠다는 학교 측의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그러나 강제납부 대책위의 대표인 상래 씨는“교우회와의 자리를 주선해주겠다는 학생처도 한 달이 넘어 갈 때까지 감감무소식이다.”라고 말했다.

교우회비 강제징수를 거부한다

전학대회에서 교우회비와 관련된 사안이 등장했을 때 일각에서는 ‘만약에 교우회비를 안 내면 교우회에서 장학금 안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사고이다. 회비를 납부하거나, 장학금을 주는 행위는 ‘주고받는 거래’의 개념이 아니다. 애초에 이 둘은 같은 선상에서 사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재학생이 교우회의 발전을 위해 회비가 내고 싶다면 장학금을 주건 말건 내면 되는 것이고, 교우회가 장학금을 주는 것은 말마따나‘재학생 후배들을 향한 넘치는 내리사랑’이 있다면 재학생으로부터 일괄적으로 회비를 걷거나 말거나 계속되어야 하는 일 아닌가?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교우회비를 선택적으로 납부함으로써 잃을 것에 대해 지레 짐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회비 납부를 강제당하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생각해야 한다.

고려대학교의 모든 졸업예정자들은 아무런 마땅한 이유 없이 교우회비 강제징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만약 학생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교우회비 강제징수는 계속될 것이다. 잘나가는 교우들이 모인 교우회의 세를 입고‘학교 발전’에 힘을 쓰고 있는 학교 측으로서는 아무런 말이 없는 이상, 조용하게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문제가 이슈조차 되지 못했던 이전에 비해서 올해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의 안건 상정, 통과와 반대대책위 활동 등 고무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변두리로 밀려나있었던 교우회비 강제징수와 관련된 사안은 앞으로 학생사회 내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이 운동은 단순히 졸업생들만의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졸업을 위해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납부를 강제당할 모든 학생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